불빛 아래 그림자
그날 밤, 순이는 잠든 춘식 곁을 지키며 끝내 잠들지 못했다.
아이의 조그마한 숨결 사이로 윤석의 얼굴이 자꾸 떠올랐다.
순이의 남편이자 춘식의 아버지였던 윤석.
그가 남긴 쪽지와 찢긴 문서 조각들 그리고 알 수 없는 단서들이 그녀를 그녀의 생각을 끊임없이 깨웠고 달리게 했다.
순이는 잠든 영이의 옆에서 작은 숨을 곯았다.
어린 시절부터 순이는 늘 영이의 앞에서 단단했다.
하지만 오늘 밤은 영이의 손을 꼭 쥐고 있는 건 오히려 순이였다.
“영아.”
순이의 낮은 목소리에 영이가 눈을 떴다.
“오늘은 움직여야 해. 윤석이 남긴 일을 이제 내가 이어야 할 것 같아.”
“도현 오빠한테 연락할까?”
영이가 조심스레 물었다.
순이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직은 누구도 믿을 수 없어.
윤석이 그토록 조심했던 이유, 이제야 알겠어.”
창밖엔 서녘 불빛이 스미고 있었다.
순이는 윤석의 낡은 가방을 조심스레 꺼냈다.
그 속엔 찢긴 문서와 수첩, 그리고 오래된 사진 한 장이 들어 있었다.
사진 속 윤석은 춘식을 품에 안고 있었다.
그날 새벽, 순이는 춘식을 영이에게 맡기고 조용히 집을 나섰다.
이번만큼은 끝까지 파고들어야 했다.
순이는 그가 걸었던 길을 이제 자신이 걷기로 마음을 다잡았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의 고리들을 부여잡고 그녀는 새벽안개가 마을을 뒤덮은 시간 터벅터벅 걸음을 옮겼다.
순이는 윤석이 남긴 문서에 적혀 있던 익숙한 이름 하나를 떠 올렸다.
'백성규'
한 때 윤석과 함께 공장을 지었던 하지만 지금은 실종된 인물.
“성규 선생님은.... 아직 살아 있다면 분명 무언가를 알고 계실 거야.”
순이는 외곽의 폐교로 향했다. 그곳은 성규선생이 마지막으로 목격된 장소였다.
노쇠한 교실에 바람이 불고 먼지 낀 칠판 위로 빛이 스며들었다.
그러나 그녀를 기다리고 있던 건 성규의 행방이 아니라 덫처럼 설치된 시선이었다.
어디선가 누군가 지켜보고 있는 듯한 기척...
순이는 본능적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순이..... 여긴 당신이 올 곳이 아니야.”
낮은 목소리.... 가 들렸다.
그리고 이어서 그림자 속에서 의광회 마크가 박힌 명찰이 번뜩였다.
한편, 마을에서는
순이가 남긴 쪽지를 읽은 영이가 눈을 질끈 감았다.
“춘식을 부탁해.”
그 짧은 한마디 문장이 전부였다.
그 쪽지를 펼쳐든 영이는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혔다.
게다가 순이가 사라지던 그 새벽 순이의 방문 앞에는 누군가의 구두 발자국이 선명히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