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러나는 진실
“이곳은… 당신이 있을 곳이 아니야.”
뒷걸음치던 순이는 어둠 속에서 울려 나온 그 목소리에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왠지 익숙하면서도 낯선 목소리에 순이는 긴장하였다.
의광회의 일원으로 보이는 그는 조용히 순이를 응시하고 있었다.
잠시 후 달빛이 안으로 드리워졌다.
"무... 진.... 무진... 무진 오빠?"
그는 어린 시절, 윤석의 친구였으며 순이와 영이 그리고 윤석과 함께 한 동네에서 자랐고 과거 윤석과 마음을 함께 움직이던 동지였다. 하지만 어느 날 행방불명 되어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던 인물이었다.
“무진… 당신이 여긴 왜…”
무진은 말없이 한쪽 어깨에 기대어 서 있었다.
창문 틈 사이로 들어온 희미한 달빛이 그의 얼굴을 스쳤다.
그의 눈빛은 고뇌의 긴 시간을 지나온 자의 것,
그리고 말 못 할 진실을 감추고 있는 자의 것이었다.
그때, 그 적막함 속에서 섬칫하고 조용한 움직임이 감지되었다.
무진은 빠르게 순이를 데리고 안으로 깊이 들어갔다. 무진의 손에 이끌려 이동을 하던 순이는 교실 바닥 쪽에서 불어오는 찬 바람을 느꼈다. 곧 이들은 찬바람이 불어오던 바닥 아래쪽 비밀 통로를 통과하였다.
“당신을 미행하고 있는 자들이 있었어.
아마도 이미 당신의 집에서부터 그 감시는 시작되었을 것이고 이쯤 해서 처치를 할 생각이었겠지..."
"왜 나를....?"
"당신은 윤석의 상속자이니까...
당신이 윤석의 죽음을 쫒고 있으니까...."
"윤석의 상속자? 왜죠? 무엇이 있기에...
우리는 수저하나도 남김없이 다 뺏기고 집에서 쫓겨났는걸요...."
"그게 다가 아니니까...."
"그게 다가 어니면 그럼~뭐가 더 있다는 건가요?"
"그건 차츰 얘기 나누기로 하고...."
"그나저나~우리 꼬맹이 많이 컸네....."
"역시 맞군요. 무진 오빠~
긴가민가 했어요."
"유~~ 이게 얼마만이야~"
"그러게요. 그간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무진은 싱겁게 웃으며 말했다.
"쉿!! 알면 다칩니다."
"이렇게 오빠를 만나다니 꿈만 같아요."
"그나저나 넌 왜 이리 힘든 길을 가려하는 거니?"
"윤석 씨의 억울한 죽음을 모른 채 할 수가 없어서요."
"음... 그렇지만 이 일은 네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위험한 일이야."
"알아요. 하지만..."
"물론 윤석이의 억울한 죽음을 안 이상 그냥 있기 쉽지 않았을 거야. 하지만 이 일은 우리에게 맡기고 기다려 주면 안 될까?"
"하지만 이건 윤석 씨의 일인걸요..."
"알아... 그렇지만 윤석이의 일은 너 혼자만의 일이 아니야. 우리도 충분히 이를 위해 노력하고 있어."
"알고 있는 게 있군요? 뭐죠? 내게도 말해 줘요."
"그전에... 두렵지 않나?"
"이미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막상 이 상황과 마주하니 두렵네요."
"이야기를 다시 원점으로 돌려서...
저들이 이곳에 나타났다는 건
너의 위험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우리 의광회에 까지 손을 뻗고 있다는 뜻이기도 해."
"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그러니 더 위험해지기 전에 이쯤 해서 너는 이 일에서 손을 떼야한다."
"아니~아니~
이미 늦었어. 순이 씨는 이미 저들의 제거 대상이야~ 차라리 우리가 보호하는 것이 더 안전할 거야"
"누구시죠?"
"절 찾으셨다고 들었습니다만...."
"아~ 백성규 선생님?"
"맞습니다. 내가 바로 백성규 올습니다.
언젠가 뵈온 적이 있지요?"
" 예. 맞아요. 이리 천천히 뵈니 그때 그 모습이 남아 있으십니다."
"정말 오랜만이네요."
"네. 그렇지요?"
"예..."
"저... 그런데 무슨 일로 윤석 씨를 떠나신 건가요?"
"떠나다니요? 그런 거 아닙니다. 단지 뒤에서 조력하기 위해 몸을 숨긴 겁니다. 독립운동을 위해 준비하던 큰일이 있었기에....."
"큰 일이라니.... 요?
무슨 일인지 여쭈어도 될까요?"
"윤석이 그 친구가 독립군 기지를 위해 큰 공장을 세웠습니다. 공장 지하에는 숨겨진 비밀 기지가 만들어져 있고요. 그런데 이번에 그 공장에 대한 정보가 밀정을 통해 일본에게 새어 들어갔고 그 공장의 존재를 지키려다가 윤석이 죽음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 밀정이라는 사람이 혹시 지만 씨인가요?"
"맞습니다. 지만이 그 친구가 우리를 배신했습니다."
"믿어지지 않아요. 윤석 씨가 얼마나 믿었던 사람인데....."
"그가 벌리고 싶어 하던 사업을 위해 지만이 그 사람이 윤석에게 일본과 손 잡을 것을 제안했던 모양입니다. 물론 윤석이는 이를 거절했고요...."
"그 공장은...."
"아직은 윤석이 명의로 되어 있는 공장인데....
잠시 후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 지난번에 주셨던 문서입니다."
아니... 여긴 어떻게....?"
"영이 씨에게 연락받았습니다. 혹시나 싶어 와 보았는데 역시 이곳에 계셨네요. 영이 씨가 걱정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다 알고 있었네요. 도현 씨는...."
"다는 아닙니다. 우린 아직 석지만 사장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순이는 도현이 내민 찢긴 공장 문서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이 문서가 아직 유효한 문서일까요?"
"아마도 이 문서만이 유효한 유일한 문서일 겁니다. 물론 저들은 문서를 위조해 놓았겠지만...."
"서로 이 문서를 찾아 차지하려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아님 없애거나...."
"그런데 찢긴 문서도 인정이 됩니까?"
"그 일부를 찾는다면요....."
"이 일부는 어디에 있을까요?"
"글쎄...."
"우리도 지금 그 일부를 찾고 있어."
순이는 성규를 응시하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나저나....
앞으로는......
누가 널 죽이려 하는지..., 누구를 믿어야 하는지... 누가 너의 동지인지....
더 혼란스러워질 거야."
무진은 문서의 이야기가 더 깊어지지 않게 말머리를 틀었다.
그런 무진의 목소리에 순이는 생각을 깨고 나왔다.
"그러게... 혼란스럽네."
생각을 깨고 나온 순이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이 중에도 밀정이 있구나....'
순이는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그 마음으로 진실에 점점 더 다가가고 있었다. 하지만 더 두려운 것은 그 두려운 진실을 그녀가 마주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순이의 마음은 점점 무거워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