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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nikim Nov 18. 2024

내가 담은 세상들

수원화성


수원화성


수원화성은 정조가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산소를  양주 배봉산에서 수원화성으로 옮기면서 건설하였다. 수원화성은 정조의 효심과 정치적 측면과 국방에 모두 의미가 있는 성이다. 이 성은 정약용의 성화주략을 지침서로 하여 채제공의 총괄 아래 조심태의 지휘로 축성되었고 축성당시 거중기, 녹로 등을 신기술과 장비들을 사용하여 ㅊ축성하였다. 1794년에 착공하여 1796년에 완공하였다. 시설물에는 화성행궁, 중포가, 내포사, 사직단 등 많은 시설물 등이 있다. 수원은 당시 제2 신도시 같은 곳이었다. 역사적 사실을 되짚어 보면 정조께서 얼마나 수원 개발에 관심과 노력을 기울였는지를 알 수 있다. 그런데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으로 소실되고 파손된 곳이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열심히 연구하고 분석하여 현재는 많이 복원이 되어 가고 있는 중이다. 우리가 이곳을 방문했을 때에도 여기저기 공사하는 곳이 많았고 단청의 색이 아직 입혀지지 않은 곳도 많았다. 앞으로 계속 관리되고 유지된다면 우리는 그 옛날 정조 임금님이 심의를 기울여 만드신 수원화성을 오래도록 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삶의 행복의 시작은 효의 마음으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이 얘기를 다시 말하면 나의 뿌리를 바로 알고 사랑하고 감사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역사는 소중한 것이다. 지금 여기에서 우리의 역사를 바로 알고 감사하고 사랑하여야 우리가 나 자신을 사랑하고 나의 과거와 미래를 사랑하며 행복한 삶을  만들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잘 정리되어 가는 이곳의 모습에 감동을 했다. 수원화성의 둘레는 5,744m, 면적은 130ha이다. 1997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돌아보니 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는 우리의 역사의 현상이라는 생각이 들어 뿌듯하였다.




수원화성행궁


우리는 먼저 수원화성 행궁을 방문하였다. 이곳은 정조께서 아버지의 릉에 행차하실 때에 머무시던 곳이다. 화성 행궁은 그 규모가 크고 아름다운 곳이다. 행궁을 돌아보며 살펴보니 정조의 효심이 얼마나 깊었는지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얼마나 컸는지 더욱 깊이 느껴졌다. 정조대왕은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을 안고 상처와 두려움의 아픔을 가지고 성장한 임금님이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조께서는 당파싸움의 휘용돌이 속에서도 꼿꼿이 선정을 펼치신 강하고 현명한 임금님이셨다. 그는 총명하고 인품이 곧았으며 인재의 소중함을 알고 모든 분야에 바라보는 안목이 높은 임금님이심을 우리는 그분의 업적들을 통해 알 수 있다. 좋은 사람들이 모이면 훌륭한 업적들이 쌓인다. 세종대왕께서도 그리하셨고 정조대왕께서도 그리하셨다. 세종대왕께서 장영실이라는 인제를 발굴하셨다면 정조대왕께서는 다산 정약용이라는 인재를 발굴하셨다. 이 분들의 노력이 있어 이 분들의 활약으로 우리의 오늘이 빛나고 있는 것일 것이다.




1. 신풍루


신풍루는 화성행궁의 정문으로 정조 13년에 세워졌으며 건축 당시에는 진남루라고 불렀다. 정조대왕의 생모이신 혜경궁 홍 씨의 회갑연을 여기서 열면서 진남루의 이름을 신풍루라 칭하게 되었다. 여기서 잠깐 우리의 역사 속으로 들어 거 보자면 왜 정조대왕의 어머니는 생모 혜경궁 홍 씨라 불리어졌는가? 영조의 아들인 사도세자가 당파싸움에 휘말려 희생되게 되자 영조는 당시 원손이었던 이산을 효장세자의 양자로 입적하여 영조의 뒤를 이어 왕위 계승을 하게 한다. 그로 인해 당시 세자빈이었던 홍 씨는 혜경궁 자궁이라 불려졌으며 훗날 사도세자가 장조로 추대되면서 헌경 황후로 격상하게 된다. 이 분의 처음엔 세자빈이었고 사도세자가 죽은 후에는 혜빈이라는 호칭으로 불려 지다가 헌경혜빈의 시호를 받고 훗날에 추존 왕비를 거쳐 추존 황후가 되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에게는 정조 임금님이 어머니에게 내렸던 궁호인 혜경궁 홍 씨로 더 기억되어 있다. 현재는 이 문에서 입장권을 주고받는 수원 화성 행궁의 정문으로 활용되고 있다.


2, 좌익문과 중앙문


신풍루를 통과하여 지나 가면 좌익문이 나오고 그 안으로는 중앙문이 보인다. 문에 그려진 태극 문양이 인상적이다. 좌익문을 바라보며 왼편을 보면 근사한 소나무와 조선 시대 분들을 만날 수 있다. 이 포토존에서 이 분들과 함께 사진을 찍은 후 잠시 조선 시대로 들어가 본다.


3. 우화관


수원문화재단 홈페이지에 보면 "우화관은 화성유수부의 객사이다. 객사는 지방 수령이 매달 초하루와 보름에 국왕에 대한 의례를 행하는 곳이며 관아를 방문하는 관리나 사신들이 머물던 곳이다. 이를 위해 객사는 국왕을 상징하는 전패를 모시는 정청을 가운데 두고 좌우 건물은 온돌방과 마루로 되어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곳 우화관은 건립 초기에는 팔달관으로 불렸으나 승격으로 인해 우화관으로 개명되었다고 한다. 현재 이곳은 전시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4. 화영전


이곳은 화영전인 것으로 추측된다. 자료를 아무리 검색해 보아도 이에 대한 자료를 찾을 수가 없다. 한자 쓰기 어플로도 검색해 보았지만 맨 마지막 글자가 '전'이라는 거 말고는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네이버 렌즈로 검색해 글자를 번역해 보니 '전녕화'라고 나온다. 조선시대에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글을 썼으니까 이 장소의 이름은 '화녕전'일 것이고 이를 다시 두음법칙을 적용하여 읽으면 '화영전'이 된다. 그래서 화영전으로 검색해 보니 수원 화영전이라는 글자가 검색되어 나왔습니다. 하지만 구체적인 설명은 없어서 나는 이 건물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찾아내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이곳의 이름만 "화영전"일 것이라 감히 추측해 본다.


이곳에는 근사한 나무들이 있었다. 너무 인상적이어서 담장 안과 밖에서 사진을 찍었다.

이 나무들이 바로 그 나무들이다. 나무의 모습도 빛깔도 너무 준수하고 멋스럽다.


5. 향대청. 전사청


향대청은 제사에 사용하는 향을 보관하는 건물이고 전사청은 제례에 올릴 그릇이나 깔개 등 필요한 물품을 보관하고 준비하는 건물이다. 1999년 발굴 조사를 통해 건물터를 확인하고 2005년에 복원했다고 한다.


6. 행궁 뒷산 산책로


행궁 뒤쪽에 있는 산에 올라 보았다. 행궁 안을 멀리서 보니 참 운치가 있다.

산을 둘러 내려와 보니 가을 단풍이 참 아름다운 곳이다.


7. 노래당


이곳은 정조가 노년을 보내기 위해 만든 곳이다. 정조가 아버지를 얼마나 사랑하고 그리워했는가를 보여 주는 곳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그는 아버지의 묘를 수원으로 모시고 오고 또 수원화성을 축성하고 그 안에서 그의 노년과 그의 생의 마지막 시간들을 보낼 계획을 세우고 실천했다. 아버지를 향한 정조의 효의 마음이 우리의 마음에 와닿는 대목이다.



8. 유여택


유여택은 정조께서 수원 화성 행궁에 오시면 집무를 보던 곳이다. 평상시에는 화성유수의 처소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현재 유여택은 당시의 모습을 재현해 놓았다, 그래서 이곳을 둘러보면 조선 시대의 모습을 역 볼 수 있다.



9. 취병


취병은 공간을 나누어 거리를 두기 위해 만들어 놓은 곳이라고 한다멋진 조경을 만들어 보고 거니는 힐링의 장소가 되기도 하지만 취병은 건축물과 건축물 사이에 좀 더 명확한 구분을 주는 역할도 한다..



등산 시작


10. 행궁 옆 산책로


행궁 옆에 산을 오를 수 있는 산책 길리 아주 잘 꾸며져 있다, 운치 있고 실용적인 아름다운 길이다.



팔달산로에 위치한 수원 화성 내 명소들


11. 수원 팔달산 효원 약수


수원 화성 행궁 옆 산책로를 따라 걸어 올라오면 효원 약수를 만날 수 있다. 이 약수터는 1987년 6월 13일에 수원 로터리 클럽에서 2000만 원을 들여 만들었다고 한다. 수질 관리표를 보니 약수로 적합한 물로 맑고 시원한 물이다. 이 근래에는 적합 판정을 받은 약수터가 보기 드문데 이곳의 물은 적합이다.



12. 성신사


성신사는 정조가 수원화성을 위해 세운 사당이다. 정조는 수원 화성 준공 전 성신사를 설치할 것을 명하고 성신묘를 세우고 직접 축문을 지었다. 병진년인 1796년 봄에 집터를 잡고 그해  9월에 건축을 완성하였다. 해마다 음력 1월, 7월 좋은 날에 수원유수가 헌관이 되어 고유제를 지내라는 정조의 명에 따라 이곳에 신주를 봉안한 후 매년 봄가을로 수원 화성을 지키는 성신에게 제사를 올렸니다. 그리고 이후 100여 년 동안 고유제를 이곳에서 지내왔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 때 성신사가 없어지면서 고유제를 지내지 못하고 잊히게 되었다. 그 후 2002년부터 성신사가 복원되었고 성신사가 복원된 이후로는  매해 이곳에서 고유제를 지내고 있다고 한다. 의미 있는 곳이니 만큼 주변의 경관도 아름답다.



13. 팔달산로


성신사를 보고 하산하려다 우린 한 등산객을 만났다. 그분의 소개로 수원시내가 보이는 새로운 포토존과 반딧불이길을 알게 된다. 그리고는 다시 팔달산로로 올라 와 산책을 했다. 성신사에서 100여 미터를 효원약수 반대 방향으로 걷다 보면 아름다운 가을을 만날 수 있고 또 이쁜 포토 존도 만날 수 있다. 가는 길에 근사한 나무와 팔달산의 유래도 만났다.

이곳이 소개받은 그 포토존이다.


성곽 따라 정상까지


14. 성곽 따라 산책로 (팔달산로~서남암문)


포토존을 들린 우리는 성곽을 따라 펼쳐진 산책로를 만났다. 가을가을한 산책로는 운치도 있고 근사하였다. 아름다운 단풍들과 낙엽들이 풍성한 곳이었다.


15. 수원 화성 성곽 따라 (서남암문->3.1 독립운동 기념탑->서삼치->서장대관광안내소->서포루->효원의 종->서장대와 서노대)


3.1 독립운동기념탑



서3치


수원화성에는 성을 지키기 위해 쌓은 치성이 있다. 치성은 수원화성의 성곽보다 성 밖으로 튀어나오게 지어 성곽 바깥 부분을 볼 수 있도록 세워졌다. 그래서 성곽을 보호하고 적을 살피는데 유용하다. 특히 서3치는 수원 화성에 있는 치성들 중 돌출 길이가 가장 길어 적의 동태를 파악하고 전란시 성에 기어오르는 적을 막는데 유리하게 사용되었다.


서장대 관광 안내소



서포루


서포루는 수원화성 서암문과 서삼치 사이에 있는 포루이다. 포루는 치성 위에 지은 목조건물을 말한다. 이곳 서포루는 서장대를 지키기 위해 세워졌으며 수원화성에 있는 여러 치성들 중 5곳에만 포루를 설치하여 적의 동향을 파악하였는데 그 다섯 개의 포루 중 하나이다.



효원의 종각



16. 서장대와 서노대 그리고 수원 도신의 야경


서장대는 팔달산 정상에 세워진 군사 지휘소이고 서노대는 서장대를 지키기 위해 세워진 시설로 기계식 활인 노(弩)를 쏘기 위해 지어졌으며 팔각형 모형으로 높게 세워진 시설이다. 

우리가 정상에 도착하자 마치 우리를 환영이라도 하듯 여기저기 조명이 켜졌다. 환대받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팔달산의 정상은 시원하고 멋졌다. 근사한 서장대와 서노대도 보고 수원시내 야경도 보고 알록달록 예쁜 산도 보었다. 여러 가지로 힐링이 되는 시간이었다. 우리의 역사가 살아 숨 쉬고 있는 역사의 장~ 수원화성으로 종종 달려와야겠다^^


17. 반딧불이 길


우연히 알게 된 수원화성의 반딧불이 길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차분한 듯 고요한 듯 화려한 그 공간은 우리를 행복의 도가니로 끌어들였다. 레이저 광선으로 만든 인공 반딧불이지만 정말 빛의 반딧불이가 날아다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레이저 빛이기에 아무리 잡으려 해도 잡을 수가 없다. 그저 보고 담고 느끼던 그 순간이 우린 너무 좋아서 그곳에 한참을 머물렀다^^


18. 대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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