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도, 다른사람들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
중학교에서 매년 열심히 공부하고, 학교외에 다양한 활동도 만들어서 하고, 방학기간에는 계속 학원에서 살고, 나서 운이좋았다!
내가 과학고에 합격한건 순전히 운이좋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채 운이 좋길 바랬다기 보다 학교의 교육과정을 성실히 따르고 과학고에 보내는 아이들을 찍어내는 공장같은 학원에서 조차 성실했다.
하지만, 과학고의 교육과정을 아는 몇몇의 선생님과 사교육 선생님들은 내가 과학고에 가는건 어쩌면 힘들지도, 간다 하더라도 하위에 속할 것이라는 것을 대략 짐작하셨다.
나는, 세상의 모든 경쟁률은 2대 1이라고 생각한다. 과학고 씩이나 졸업한 사람이 통계적인 사고가 없는게 아니라, 경쟁률이 낮든, 높든 순전히 이기적인 나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이루냐, 이루지 못하냐, 되냐, 되지 못하냐의 이분법적인 접근이 바람직 하지 않냐는게 내 생각이다.
근데 과학고를 가기 위한 과정들이 정말 즐겁고 유의미 했을까? 를 생각하면 그것은 아닌것 같다.
당시의 나는 무엇에 홀렸던걸까? 정말로 과학고에 가기를 원했다기 보다 부모님의 기대와 압박, 주변의 분위기 등에 나를 맞추고 나의 주변을 실망시키지 않고자 하는 마음이 컸던것 같다.
즉, 스스로 생각하고 내린 자유의지에 의한 결정이라기 보다 외부에서 주입된 내 인생이였던 것이다.
한 가지 후회가 되는 일은, 초등학생때는 그러지 않았는데 본격적으로 과학고입시를 준비하던 중학생 시절 굉장히 편협하고 위험한 사고방식에 갇혀 있었던 것이다. 이 부분에서 두명의 친구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다.
첫번째 친구는 교회에서 통기타를 배워와서 학교에 굳이 통기타를 들고와서 기타를 치던 친구다.
이름을 '통기'라고 부르겠다.
통기의 가정환경이나 그런 부분들은 잘 모르겠지만 긍정적이지만 눈빛에는 어떤 열망이 늘 사려있는 친구였다. 공부에는 그닥 관심이 없어보였는데 수업중간중간 쉬는시간이면 내 근처에 와서 겨우겨우 코드를 짚으며 기타치는 모습을 보여주곤 했다. 나는 내심 속으로, '통기는 커서 뭐먹고살려고 기타나 치지, 한심하다.'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해서 통기를 싫어하거나 그 친구와의 관계가 안좋거나 그러진 않았다. 통기는 성격이 좋았고, 공부에 스트레스를 받는 나를 기타로 늘 즐겁게 해주었다. 통기의 에너지를 보면 묘하게 순수해지고 기분이 좋아지는 매력이 있었다. 그 매력을 십분 발휘해 통기는 지금 기타로 먹고살고 있다. SNS를 통해 올라오는 모습을 보면 소소하게 기타수업을 하다가 학교에 출강을 나가고, 계속 기타를 치면서 본인의 곡도 쓰면서 인생의 코드를 꽤나 정확하게 짚어가고 있다. 솔직히 통기의 통장잔고가 나의 그것보다 형편이 좋을것 같다는 본능적인 느낌까지 들 정도니, 통기는 공부를 하지 않아도 잘먹고 잘사는 케이스 1번으로 공부 이외에도 먹고 살 길이 있음을 보여주어 내가 편협한 생각을 하고 있었음을 알게해준 친구다.
두번째 친구는 중학생때 나에게 뺨을 맞은 '스메쉬'다.
이 친구에 관한 이야기를 쓰는것은 다소 망설여 지기도 한다. 반장을 하던 나는 친구들을 통제하는 효과적인 방법이 '무언의 압박과 소정의 폭력' 이라는 괴팍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왜 그런진 아직까지 잘 모르겠고 그런 기질이 나에게 여전히 남아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수련회를 가서 인원을 파악하기 위해 앞줄부터 두명씩 앉으면서 번호를 매기는데 스메쉬는 앉지 않고 번호를 부르지도 않고 까불거렸다. 나는 빨리 앉아서 인원을 파악하고(지금 생각해보니 철저히 통제에 기반으로한 군대나 일제식 수련회같은 느낌이 든다.)다음 장소로 이동을 하던지 해야했다. 그런 나에게 그 친구는 '친구'나 '인간'이라기 보다 그냥 하나의 박스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사람이 아닌, 하나의 객체나 사물로 친구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손을 우하방에서 좌상단, 45도의 각도로 올리며 뺨을 쳤다...라기 보다 손바닥으로 턱을 돌렸다 라는 표현이 바람직할 것 같다. 그때의 장면이 10년도 넘은 지금까지 아주아주 생생하게, 그친구의 글썽거리는 눈망울 까지 기억이 난다. 큰 틀에서 스메쉬는 과학고를 가기 위한 일환으로 '반장'의 타이틀을 효과,효율적으로 취득해야 하는 나에게 있어 걸림돌이 될 뿐이였다.
과정과 결과를 모두 챙겨야 하는데, 과학고를 가기 위한 시절의 나는 과정에 100퍼센트 몰입해 있었다. 그 몰입의 근원이 즐겁고 내가 온전히 원하는 종류의 것 이였다면 더할나위 없이 좋았겠지만 그러지 못했음에 아쉬움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