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기억의 향기
“엄마, 뭐해요?”
“미역국 끓이고 있어. 오늘 생일이잖아.”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는 가을날, 아침 햇살이 창문을 통해 부드럽게 들어왔다. 한적한 주방에는 조용히 물이 끓고 있었다. 은빛 냄비 안에서 미역이 서서히 불어나고 미역국의 진한 향이 집안 가득 퍼지며 마음을 따뜻하게 감쌌다. 딸은 어릴 적부터 미역국을 좋아했다. 유치원에 다니던 시절부터 매년 생일에 미역국을 끓여주었다. 수업을 마치고 온 딸은 식탁에 앉아 “향이 좋은데요.” “오늘 너를 위해 준비했어. 건강하게 잘 자라줘서 고마워.” 미역국의 향기를 맡으며 딸은 여러 가지 생각에 잠겼다.
“언제부터 미역국을 끓이기 시작했어요?”
“네가 태어나기 전에. 외할머니가 나에게 가르쳐 주신 거야. 미역을 적당히 불린 다음, 참기름에 살짝 볶아서 향을 내고, 소고기 다진 마늘을 넣어 함께 끓이는 거야. 마지막에 국 간장을 조금 넣으면 풍미를 더 살아나지.”
“그래서 엄마 미역국이 맛있구나.”
시간이 흘러 엄마에게 배운 대로 미역국을 끓였다. 미역국이 끓는 동안, 지난 추억을 떠올렸다. 엄마는 어릴 적 생일마다 미역국을 끓여주셨다. 그때의 따뜻한 국물 맛은 잊을 수 없다. 미역국은 언제나 최고였다. 결혼해서 첫 아이를 낳았을 때 내 몸 건사하기도 힘든 시기에 엄마는 구세주처럼 오셔서 도와주셨다. 산후조리 하는 동안 매일 미역국을 정성껏 끓여주셨다. 엄마가 출산 전에 사둔 완도 미역은 신선했다. 미리 불린 미역을 잘게 썰어서 냄비에 넣고 참기름에 살짝 볶아주면 금세 노릇노릇해졌다. 소고기가 익을 무렵 다진 마늘, 국 간장을 조금씩 넣어 간을 맞추었다. 끓어오르는 국물 속에서 미역이 춤을 추듯 점점 완성되어 갔다. 한두 달을 매일 같이 잘 먹었으면, 질리기도 할 텐데. 한 번도 물리지 않았다. 덕분에 수유도 하고 몸에 노폐물이 다 빠져나간 듯 부기가 다 빠져 몸이 가벼웠다. 그 시절 주방 한쪽에 자리한 냄비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 냄비에는 여전히 따뜻한 온기가 남아 있었다. 엄마의 사랑이 고스란히 담긴 것처럼. 진심으로 감사했다. 엄마의 미소와 함께 떠오르는 따뜻한 향기, 그 속에 담긴 사랑이 내 안에 스며들었다.
그날 저녁, 가족은 함께 식탁에 둘러앉아 웃음꽃을 피웠다.
“생일 축하해.” 딸에게 한 그릇 가득 미역국을 떠주었다.
“고마워요. 나중에 엄마에게 미역국을 끓여주고 싶어요.”
“그럼, 물론이지. 배운 대로 끓이면 될 거야.” 딸의 손을 꼭 잡았다.
미역국 한 그릇에 정성을 담아 따뜻한 마음을 전했다. 그 순간, 알아차렸다. 가족의 사랑과 기억을 담은 미역국은 가족을 이어주는 소중한 연결고리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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