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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위시 1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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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설 Oct 02. 2024

 3일의 휴가

   에세이

3일의 휴가




  지난 겨울 가족과 함께 강원도에 여행 갔다. 터널을 지나 굽이굽이 골짜기를 지나서 산 중턱에는 전날 내린 눈이 소복이 내려앉아 하얀 목도리처럼 신비롭게 자태를 뽐내었다. 도로는 비교적 한산했다. 그날 저녁, 숙소에 들러 짐을 풀고 해가 저물어가는 해변 길을 따라 작은 식당으로 향했다. 창밖으로 차가운 바람이 매섭게 불더니 길가에 즐비하게 서 있는 가로수 나뭇가지에 눈꽃 송이가 내려앉았다. 주차하고 내리자, 놀이터에서 100m 거리에  해물탕 글자가 선명하게 보였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아늑한 분위기가 우리를 맞이했다. 나무 테이블과 의자, 그리고 벽에 걸린 그림을 보니 마치 시간 여행을 하는 듯했다.


  “여기 분위기 참 좋다. 왠지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 같아.” 

  “맞아. 이런 곳에서 먹는 음식은 왠지 더 맛있을 것 같아.”

  우리는 창가 쪽 자리에 앉았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노을이 식당 내부를 따뜻하게 물들였다. 메뉴판을 보고 푸짐한 해물탕을 주문했다. 주방 이모는 환하게 웃으며 “조금만 기다리세요. 금방 준비해 드릴게요.” 하고는 주방으로 사라졌다. 기다리는 동안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자연스럽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잠시 후,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해물탕이 나왔다. 깊고 진한 국물의 향이 코끝을 자극했다. 해물탕 안에는 신선한 해산물과 각종 채소가 듬뿍 들어있었다.

  “이제 한번 먹어볼까?” 국자를 들어 국물을 한 입 떠먹었다. 얼큰한 국물이 입안 가득 퍼지며 몸을 따뜻하게 감싸안았다. 해물탕은 부드럽고 담백했다. 그 맛은 어린 시절 엄마가 끓여주던 국물의 맛을 떠올리게 했다. 

  “정말 맛있다. 국물이 시원하네.” 고개를 끄덕이며

  “맞아. 여긴 정말 숨은 맛집이네.”하고는 활짝 웃었다. 잠시 시간이 멈춘 듯 타임머신을 탄 것처럼 지난 시절 기억이 스쳐 갔다.  


  “오늘 해물탕 만들어 줄게.”

  초겨울이었다. 따뜻한 햇살 아래, 창밖 커튼 사이로 눈꽃 송이가 내렸다. 추운 겨울에 먹는 해물탕은 다양한 해산물과 야채가 어우러져 매콤하고 국물 맛이 시원하다. 엄마는 냉장고에서 꺼낸 해산물을 정성스럽게 손질하셨다. 조개류는 미리 소금물에 담가 모래를 뺀 후 씻었다. 새우와 대하는 내장을 제거하고 오징어는 몸통과 다리를 분리하여 깨끗이 씻고 적당한 크기로 준비했다. 무는 얇게 썰고, 양파는 채 썰기, 대파와 고추는 어슷하게 썰고, 마늘과 생강은 얇게 썰었다. 큰 냄비에 멸치육수를 붓고 무를 먼저 넣어 끓였다. 냄비에 물이 부어지는 소리는 마치 오케스트라 음악과도 같았다. 무가 반쯤 익으면 준비된 해산물을 모두 넣고 약간 약한 불에서 끓였다. 별도의 그릇에 고춧가루, 고추장, 간장, 마늘, 생강을 넣고 해산물이 끓기 시작하면 준비한 양념장을 넣고 잘 섞어주었다. 이때 소금과 후추로 간을 맞추고 양파, 대파, 청양고추, 홍고추를 넣고 5분 정도 더 끓였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행복감에 젖어 들었다. 


  “어떻게 그렇게 맛있을 수 있지. 나도 나중에 엄마처럼 해물탕을 만들 수 있을까.”

  “물론이지. 맛있게 만들 수 있어.”

  엄마가 새우랑 오징어를 맛보라며 입안에 한 숟가락 넣어주셨다. 혀끝에 맴도는 따뜻하고 얼큰한 국물의 맛, 신선한 양파, 팽이버섯의 부드러움이 한데 어우러져 풍미를 더했다. 해물탕은 해산물의 신선함과 콩나물의 아삭함, 매콤한 국물의 조화가 일품이었다. 추운 날씨에 먹는 엄마의 따뜻한 사랑이었다.


  “다음에 같이 오자.” 

  “그래, 다시 오자.”

  시간이 흘러 냄비에 바닥이 보일 때쯤 바깥은 이미 어둠이 내려앉았지만, 마음만은 따뜻하고 포근했다. 가족과 함께한 그 시간은 단순히 한 끼의 식사가 아니라, 서로의 마음을 나누고 공감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식사를 마친 후, 우리는 식당을 나섰다. 식당의 불빛이 점점 멀어지며, 길가에 가로등 불빛 사이로 눈꽃 송이가 소리 없이 흩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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