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만든, 깊은 갈색의 위로
지난 주말, 양재천 아트살롱에서 작은 부스를 열어 셀러로 참여했다. 취미로 딴 퍼스널 컬러 자격증으로 친구들과 함께 세상과 소통하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사람들의 반응은 대부분 따뜻하고 사랑스러웠다. 육체적으로는 고되었지만, 마음만은 가득 채워지는 경험이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의 호응이 있었다. 바빴던 시간이 지나고 잠시 쉴 틈이 생겨 의자에 앉았다. 막 물을 마시려고 하는데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한 여자아이가 다가왔다. 진단을 너무 하고 싶은데 돈이 없다고 했다. 집에 가서 돈을 이체할 테니 진단을 해 달라고 했다. 여러 번 조르듯 보채며 말하는 아이가 이해가 잘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외면할 수는 없었다. 결국 진단을 진행했다. 진단을 마친 여학생은 내게 폰번호를 물었다. 그리곤 전화를 걸어 자신의 번호를 남겼다. 하지만 우리는 ‘집에 가서 부치겠다’는 아이의 말은 형식적인 약속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날 저녁, 예상치 못한 전화가 걸려왔다.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는 진단을 받은 학생의 어머니였다. 그녀는 다짜고짜 고성을 질러 댔다. ‘돈도 없는 애한테 왜 해 줬느냐’, ‘무슨 자격으로 진단했느냐’, ‘왜 해주고 돈도 없는 아이에게 부치라 마라 하느냐!’ 마치 우리가 돈을 갈취하려고 한 것처럼 막무가내로 호통을 쳤다.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곧 마음이 차분해졌다. ‘아, 저렇게 큰소리를 내는 건 돈을 내고 싶지 않다는 뜻이구나. 상대방 탓을 하며 죄책감을 덜기 위한 방어구나’ 그 마음이 너무도 선명하게 보여 오히려 평정심을 찾았다. 나는 조용히 말했다.
“어머님, 저희는 돈을 받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나의 말에,
“우린 돈 없어요!” 돌아온 대답이었다. 역시 하는 생각에 조금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소란이 가라앉자, 내 마음에는 묘한 감정이 자리 잡았다. 그렇게까지 큰 소리를 내야만 했을 어머니의 마음속 어려움이 느껴졌고, 그 무게를 안고 살아갈 딸에 대한 안쓰러움이 남았다. 우리의 작은 호의를 그런 방식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그녀들의 상황이 안타까웠다.
양재천에서 우리는 사람들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컬러’를 찾아주는 일을 했다. 하지만 그날 밤, 나는 돈과 자존심 사이에서 힘겨워하는 한 인간의 복잡한 내면의 색을 보았다. 그리고 그 경험을 통해, 내가 타인의 결핍을 단순히 비난할 것이 아니라 따뜻이 감싸 안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가 진단해 준 것은 표면적인 색깔이었지만, 그날 얻은 것은 인간에 대한 더 깊은 이해였다.
인생의 모든 깨달음은 오래도록 푸짐하게 잘 끓여낸 '비프스튜'와 같다. 큼직하게 썰은 고기와 야채들이 각자의 맛을 내며 오랜 시간 우러나듯, 예상치 못한 상처와 따뜻한 연민, 그리고 복잡한 인간의 심리가 한데 섞여 지금의 나를 만드는 게 아닐까. 그날의 씁쓸했던 기억은 이제 내 삶의 깊은 맛을 더하는 귀한 재료가 될 것이다. 오래 끓일수록 진해지는 남편의 비프스튜처럼.
남편이 요리를 배우기 시작한 지 두 달쯤 되던 어느 날, 내게 ‘비프스튜’ 레시피를 물었다. 겨울이면 냉장고에 넣어뒀던 나의 스튜가 생각났다고 했다. 추워지기 전에 미리 배워서 내게 끓여주고 싶다는 남편의 이 한마디는 나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는 날씨가 쌀쌀한 요즘 가끔씩 비프스튜를 끓여 냉장고에 넣어둔다. 따뜻하게 데워 후루룩 후루룩 먹으면 으슬으슬 추운 기운도 사라지고 어느새 내 몸은 훈훈한 온기로 가득 차오른다. 행복이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작은 배려와 그것을 확인하는 순간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낀다.
'비프스튜'는 누가 끓여도 맛있다고 하면 남편이 섭섭해하겠지만 그것은 사실이다. 신선한 재료를 넣고 푹 끓이기만 하면 되는 매우 쉬운 요리이다.
건강식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 비프스튜!
그래서 브런치 북의 12번째 요리로 '비프스튜'를 제의했다. 남편은 점점 추워지기 시작하는 요즘에 잘 어울리는 요리라며 흔쾌히 응했다.
자~ 이제 남편의 '비프스튜'를 소개할게요!
<재료>
소고기 2.5kg, 양파 2개, 감자 3개, 당근 3개, 셀러리 1대, 토마토 3개, 양송이버섯 6개, 큰 마늘 5개,
버터 30g, 토마토홀 통조림 2개, 물 1리터, 월계수 잎 3장, 오레가노, 파슬리, 소금, 후추 조금(각자 취양 껏)
양파, 감자, 당근을 준비한다.
양파, 감자, 당근을 굵직하게 썬다.
셀러리, 토마토, 양송이버섯, 마늘을 준비한다.
셀러리, 토마토, 양송이버섯, 마늘을 굵직하게 썬다.
키친타월로 핏물을 제거한 소고기를 준비한다.
소고기를 굵직하게 썰어 볼에 담근다.
소금, 후추로 간을 한 소고기에 밀가루를 입힌다.
버터를 준비한다.
냄비에 버터를 넣는다.
마늘과 양파를 냄비에 넣어 볶는다.
소고기를 넣고 볶는다.
당근과 감자를 넣고 볶는다.
셀러리, 토마토, 양송이버섯을 넣고 볶는다.
토마토홀을 준비한다
토마토홀을 넣고 섞는다.
물 1리터, 월계수 잎, 오레가노를 넣고 끓인다.
끓은 후 1시간 약불에서 더 끓이고, 파슬리, 소금, 후추로 간을 한다.
완성된 '비프스튜'
오랜만에 상차림 사진을 올려 봅니다. 사실 한동안 그릇을 사지 않았습니다. 요즘 트렌드인 미니멀 라이프를 위해 그릇을 나누고 그릇장을 비우던 중이었습니다. 브런치에 남편의 요리를 올리면서 작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익숙함에서 오는 안정감도 좋지만, 새로움이 주는 산뜻한 기분이 신선하게 다가와서 생활의 활력이 되었습니다. 이 작은 사치는 한동안 계속될 듯합니다. 잘 지켜봐 주세요. 오늘 여러분의 하루에도 작은 온기가 가득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