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전, 첫 직장에 취직한 후 친구들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제 취직도 했으니 차 먼저 뽑아라!
그래야 여자를 만나고 결혼도 한다.”
그들은 내게 차를 가지면 좋은 점에 대해
구구절절 나열하기 시작했다.
차를 사면 기동력이 생겨서,
여행 가고 싶을 때, 언제든 갈 수 있고
애인이 생기면 애인과 드라이브를 하면서
데이트도 할 수 있다.
차가 없으면 불편해서 여자들이 싫어한다.
여자들은 힘든 거 싫어하고 편한 걸 좋아하니
자동차 없는 남자는 만나지 않으려 한다. 등등
이제 막 직장 생활을 시작한 나에게
덮어놓고 차부터 뽑으라고 조언하던
그 친구들은 현재 단 한 명도 내 곁에 남아있지 않다.
그들이 지금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지도 않다.
당시에 난 그들의 충고와 조언이 너무 불편했고,
그들의 말에 조목조목 반박을 했었다.
차가 있어야 애인이 생긴다는
너희들 말은 주객이 전도된 거다.
사랑하는 사람이 먼저 생기고
그 사람을 조금 더 편안하게 해 주기 위해서
차를 사는 거라면 괜찮지만,
아직 애인도 없는 상태에서 차부터 사라는 말은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다.
한국처럼 대기오염이 심하고,
교통체증도 심하고 교통사고 발생 비율이 높은 나라에서
너도 나도 다 차를 사는 건 세상에 민폐를 끼치는 일이다.
내가 하는 일이 당장 기동력이 필요한 일도 아니고,
상당한 기술력을 가진 한국의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일상생활을 하는 데 아무런 불편도 없다.
여행은 편하게 가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여행은 일상의 편리함 속에서 타성에 젖은 자신을 깨뜨리고
새로움을 경험하기 위해 떠나는 것이니까 편하기보다는 오히려 불편해야 좋은 거다.
차가 없어서 나를 만나지 못하겠다는
여자와는 나도 연애를 하고 싶지 않다.
그런 사람은 ‘나’라는 인간 자체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내가 가진 ‘조건’을 더 좋아하는 것이기에
험난한 인생살이 동안 나에게 불행한 일이 생겨서
내가 더 이상 그런 조건을 갖추지 못하게 되면
반드시 나를 버리고 떠나게 되어있다.
한국은 미국처럼 자동차가 꼭 있어야 하는 나라가 아니다.
이 좁은 나라에서 대중교통으로 가지 못할 곳이 없고, 해외로 나갈 때는 비행기나 배를 타지 자동차를 타고 나가지 않는다.
진지한 대화를 할 장소가 자동차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걷는 걸 좋아하고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단 한 걸음도 걷기 싫어하는
게으른 여자와는 만나고 싶지 않다.
소유가 많아지면 그와 함께 번뇌도 늘어난다.
등등.
친구들은 나의 반박에 할 말이 없었는지
그들이 늘 내게 하는 말로 대충 얼버무리고 넘어갔다.
[하여튼, 특이한 새끼야.. 세상을 좀 더 경험해 봐라, 네가 아직 세상을 잘 몰라서 그런 소리를 하는 거다]
그 이후, 15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나는 여전히 자동차가 없다. 앞으로 차를 살 마음도 없다.
차가 없어도 연애는 했다.
차 없는 나를 좋아해 주는 여성도 있었다.
내 동생은 지금까지 자동차 없이 살지만,
착하고 좋은 여자 만나서 결혼하고
아이 셋을 낳아서 잘 살고 있으며
나도 자동차 없이 밥벌이 잘하며 잘 살고 있다.
기동력 따위 없어도 직장생활을 하거나
직장을 구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난 통근 거리가 먼 직장을 구했을 경우,
직장 근처로 이사를 한다.
몇 년마다 장소를 옮겨가며 사는 것도
나름 신선한 재미가 있다.
혹자는 내게 이동시간이 아깝다 했다. 이동 시간에 관하여 촌각을 아끼며 살아가는 그 사람은 쓸데없는 사교모임에는 자신의 시간을 물 쓰듯 쓴다.
출퇴근 시간 동안 음악 감상을 해도 되고, 책을 봐도 되며 자신의 생각을 간단하게 메모하며 혼자만의 휴식을 가질 수도 있다. 그 시간이 왜 아무 의미 없이 버려지는 시간일까?
자가용으로 출퇴근하는 경우, 좁은 도로에서 교통체증에 시달리며, 운전예절이 없는 인간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으며, 단 한순간도 마음의 여유를 가지지 못하고 전방을 주시해야 할 건데, 그 짓을 왜 해야 하는 걸까?
서울에 산다면 문제가 달라지겠지만, 부산에서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하는 건 그리 못 견딜만한 경험은 아니다. 특히 나의 경우는, 평범한 직장인들의 출퇴근 시간을 한참 벗어난 시간대에 출퇴근을 하기 때문에 버스와 지하철은 마치 내 전용 운전기사가 운전해 주는 자가용을 타는 것처럼 쾌적하고 편안하다.
이 좁은 나라에, 지나치게 자가용 자동차가 많다.
한국인의 급한 성미와, 무한경쟁의 치열한 사회 분위기 그리고 대도시의 교통 인프라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자동차의 수. 이것들이 결합하여 만들어 낸 결과가 높은 교통사고 사망률 아닐까?
각종 암의 발생원인들 중에서
하나로 지목되는 건 대기오염이다.
사람들은 이러한 사실을 잘 모른다.
미세먼지와 담배 등이 주된 발암물질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잘 모르는 사실이 있다. 각종 암과 질병의 원인 되는 건 대기오염이고, 그 대기오염의 발생원인 중 80% 이상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자동차 배기가스다.
사람들은 미세먼지를 뿜어내는 중국과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우는 흡연자들에게는 눈살을 찌푸리고 질시와 비난을 쏟아내지만, 정작 엄청난 배기가스를 뿜어내는 자동차들에 대해서는 어떠한 문제의식도 가지지 못한다.
내 판단이 옳았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나의 판단은 옳은 것이 될 가능성이 높다.
사회생활을 하며 만난 사람들 중에서 과거의 그 친구들 말고도 내게 자동차를 사라고 강권하던 인간들이 몇몇 더 있었다.
그들은 무언가를 가지는 것이 더 큰 번뇌를 가지고 온다는 사실을 잘 모르는 것 같다.
스페인에서 돌아온 후, 영업일을 시작했던 아버지는 허름한 중고차를 구입했었다. ‘엑셀’이라는 차인데 지금은 더 이상 생산되지 않는 자동차이다. 해가 갈수록 집안 사정이 안 좋아져서 자동차세를 내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당연히 보험료도 내지 못할 형편이었다. 아버지는 자동차를 주차요원들의 단속을 피할 수 있는 고지대의 인적이 드문 곳에 주차해 놓곤 했는데, 가끔씩 운이 나쁘면 견인이 되어 상당한 액수의 돈을 내야만 했다. 번호판을 뜯기는 경우도 많았고, 아버지의 차를 타고 가는 일이 있을 때면 혹시나 단속에 걸리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곤 했다. 동네 뒷산 꼭대기에 자동차를 주차해 놓아도 불안했던 어머니는, 나에게 고물차가 무사히 잘 주차되어 있는지 보고 오라는 말을 자주 했었다. 나는 그 고물차가 견인되지 않았는지, 번호판도 뜯기지 않았는지 확인하기 위해 동네 뒷산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오곤 했다.
아.. 그 번뇌..
추운 겨울 한밤중에 동네 뒷산에 올라갔다 내려오며,
소유가 번뇌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정말 온몸으로 실감했다.
어쩌다가 자동차가 견인되었거나
번호판이 뜯겨나가는 일이 벌어지면,
그날은 한바탕 심한 부부싸움이 벌어졌다.
그 고물차가 대체 뭐라고..
그 꼴을 지켜보는 것도 무척 힘든 일이었다.
시간이 흘러, 더 이상 불안과 초조 그리고 스트레스를 견딜 수 없었던 부모님은 결국 자동차를 폐차하기로 마음먹고 비용을 지불하고 그 차를 마침내 폐차하게 되었다.
그 이후
부부싸움의 빌미가 하나 줄어들게 되었다.
그들은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나는 자신의 분수에 맞지 않는 소유가 얼마나
큰 번뇌가 될 수 있는지 깨달았다.
그리고 소유한 것이 많아질수록 반드시
그에 따른 번뇌도 함께 증가한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소유란,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수단을 갖추는 일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많이 가질수록 자유로워 보이는 건,
아마 사람들이 자신들이 보고 싶은 것만 보기 때문일 것이다.
과연 소유가 많아질수록 더 자유로워질까?
생존을 위해 필요한 소유는 사실 얼마 되지 않는다.
사람은 자신보다 수명이 짧은 것만 소유할 수 있을 뿐이다.
자신의 수명보다 긴 것들을 과연 인간은 소유할 수 있을까?
현대의 인간들은 고대, 중세, 근대의 인간들보다
분명 훨씬 많은 것들을 소유하고 있다
현대의 인간들은 과거의 인간들보다 분명 훨씬 더 편리하고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세상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현대의 인간들이 과거의 인간들보다
삶을 더 잘 살고 있는지 묻는다면
어떤 사람도 당당하게 ‘그렇다’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수명은 길어졌지만 인품은 훨씬 짧아졌고
문명은 발달했지만 정신은 왜소해졌으며
소유는 많아졌지만 사랑은 줄어들었다.
물질은 풍요롭지만 자연은 파괴되었으며
제도는 발전했지만 인간은 피폐해졌다.
살아있는 동안, 내 작은 육신을 뉘일 공간, 추운 겨울에 바람을 막아줄 공간, 항온동물인 내 육체를 유지해 줄 옷가지들, 그리고 음식, 식기, 요리도구,
과거의 내 노동을 저장해 둔 약간의 저축(이건 어차피 나중에 더 이상 노동을 할 수 없는 시기가 오면 자연스럽게 까먹게 될 것이다.)
이것들 말고 내가 더 이상 소유할 수 있는 것들이 더 있을까?
운지 좋아 지금보다 돈을 더 많이 벌게 된다고 해도,
내가 그것들을 모두 다 짊어지고 저승으로 떠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