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2년 2월 10일

by 지온x지피

원문

初十日辛丑。煙雨。或晴或暗。出東軒公事。○金仁問自廵營還。見廵使簡。則通事等多受賂物。誣告中朝。致有請兵之擧。非但此也。中原疑我國與日本有他志。其爲凶悖。極爲無謂。通事等已爲拿囚云。不勝駭恠痛憤。




임진년 1592년 2월 10일
오늘 하늘은 종일 흐렸다.
가랑비가 내렸다 그치기를 반복하더니, 금세 어둠이 내려앉았다.
동헌에 나가 나라의 일을 처리하고 있던 참에, 김인문이 감영에서 돌아왔다.

그가 가져온 순찰사의 문서를 펼치는 순간,
나는 숨이 멎는 듯했다.
통역관들, 나라의 말을 전하는 자들이 뇌물을 받아
명나라 조정에 거짓을 일렀다는 것이다.

우리 조정이 스스로 명에 군사를 청하게 된 일도,
모두 그들의 계략으로부터 비롯되었다 했다.
허나 그보다 더한 일은,
그 거짓으로 인해 명나라가 우리 조선을 일본과 한통속이라 여겼다는 것이다.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어찌 그리도 사악하고, 어찌 그리도 무도한가.
이는 외부의 적보다 더 두려운, 안에서의 배신이다.

통역관들이 붙잡혔다 하나,
이 마음속 통증은 가시질 않는다.
정의는 어그러지고, 나라의 체면은 땅에 떨어졌다.
분하고도, 통한스럽다.
오늘의 흐린 하늘이 이 모든 수치를 씻어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순신 장군은 1592년 2월 10일, 《난중일기》에서 통역관들이 명나라에 전한 말을 '거짓되다(誣告)'고 표현하며, "괴이하고 분통하다"는 심정을 드러냅니다. 이를 두고 우리는 두 가지 시선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첫째, 장군의 기록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시선입니다.
당시 조선은 일본과 외교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고, 명나라와는 극도로 조심스러운 조공 관계에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통역관들이 공식 절차를 무시한 채 명나라에 일본 침략설을 전한 것은, 조정의 외교 기조를 뒤흔드는 무단 행동으로 여겨졌습니다. 실제로 명나라는 이 발언을 문제 삼았고, 조선이 일본과 내통하고 있다는 오해까지 품게 됩니다. 이순신 장군이 이를 "거짓되고 흉악한 일"로 기록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둘째, 반대되는 시선도 존재합니다.
당시 일본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령 아래 조선을 거쳐 명나라로 진출하려는 정벌 계획을 세우고 있었고, 그 기운은 이미 여러 경로로 감지되고 있었습니다. 통역관들은 외교 현장에서 일본의 분위기를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체감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의 발언은 거짓이라기보다는, 위기를 먼저 감지한 이들의 선제 경고였을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그 표현이 공식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선의였더라도 결과적으로 명나라의 오해를 불러왔고, 그 외교적 파장은 결국 조선이 감당해야 했습니다.

역사는 단선적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복합성을 가집니다. 이순신의 분노도 이해되지만, 또 다른 관점에서 그들의 행위를 경고로 해석해볼 여지도 있는 것입니다.






















※ 이 글은 『난중일기』 1592년 2월 10일 기록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글입니다.
실제 사실에 기반하되, 당시의 정황과 감정을 보다 생생히 전달하기 위해
일부 문장은 상상과 창작이 더해졌습니다.

장군의 기록에 담긴 정신과 울림을 지금의 우리도 함께 느껴보기를 바라며,
그 뜻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풀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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