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2년 2월 3일

임진년 1592년 2월 3일 맑음

by 지온x지피

오늘도 하늘은 맑았으나, 내 마음은 쉽게 개이지 않았다.
새벽녘, 우후(이몽구)가 각 포구의 부정을 조사하기 위해 배를 타고 나갔다.
백성을 위한다는 이름으로도, 부정은 단호히 다스려야 하기에,
나는 그를 믿고 조용히 배웅했다.

공무를 마친 뒤에는 활을 들었다.
며칠 새 가라앉은 마음을 다잡기 위해
나는 조용히 시위를 당겼다.
날카로운 바람 사이로 화살이 날아가며
내 속에 무거이 쌓인 근심도 잠시 멀어졌다.

그즈음, 보고가 하나 도착했다.
제주에서 여섯 자녀를 데리고 도망쳐 온 가족이 금오도(여수 남면)에 배를 대었는데, 붙잡혔다는 전갈이었다.
나는 그들을 문초했고, 정해진 절차에 따라 승평(순천)으로 압송하라고 지시했다.
그 내용을 공문으로 남겨 보내며, 나는 조용히 한숨을 삼켰다.

저녁 무렵에는 화대석 네 개를 실어 올렸다.
어두운 밤을 밝힐 불을 위해,
작은 돌 하나에도 뜻을 담아 움직인다.
내게 맡겨진 이 바다 위에서
내일도 무너지지 않도록, 준비하고 또 다짐해야 한다.

오늘도 나는 조용히,
이 모든 것을 기록으로 남긴다.
나라를 지키는 일은 늘 소리 없이 무겁다.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지키며 남는다.

– 이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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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들은 떠났을까?

그날 붙잡혀온 가족은
자녀만 여섯 명, 바다를 건너 제주에서 금오도(여수 근처)까지 도망쳐 왔다.
이순신 장군은 문초하고, 원칙에 따라 그들을 압송했지만,
그 기록의 사이엔 말하지 못한 질문 하나가 조용히 스며 있다.

“저들은 왜 바다를 건넜을까.”



살기 위해서였을까.
무거운 부역과 세금, 그 무엇도 두렵지 않았던 절박한 마음이었을까.
가난 속에서 아이들을 그냥 섬에 두고 볼 수 없었던
한 아비의 마지막 결단이었을지도 모른다.

파도가 높았을까, 바람이 찼을까.
여섯 아이를 안고 저 바다를 건넌 그 밤,
그 아버지는 두려움보다 희망을 믿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순신 장군은,
그 가족을 법대로 보냈지만
그들의 이름 없는 사연까지는
자신의 가슴에 조용히 묻었을 것이다.




※ 이 글은 『난중일기』 1592년 2월 3일 기록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글입니다.
실제 사실에 기반하되, 당시의 정황과 감정을 보다 생생히 전달하기 위해
일부 문장은 상상과 창작이 더해졌습니다.

장군의 기록에 담긴 정신과 울림을 지금의 우리도 함께 느껴보기를 바라며,
그 뜻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풀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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