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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 후, 서울 살이를 되돌아보니

스스로 주는 당근과 채찍

by 마켓허

당근과 채찍


서울로 상경할 때의 부푼 기대와는 달리 나의 서울 생활은 꽤나 고단했다.

하루 중 지친 나를 돌볼 수 있는 시간과 기회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대전에 살 때보다 보증금은 2.5배, 면적은 1/3배가 된 내 작고 소중한 방에서 눈을 뜬다.

2호선을 타고 강남을 지나 삼성역에 출근하며 지옥철에서 지치고

회사에서는 오가는 날 선 말들, 나와 맞지 않는 상황과 사람들에 지치고

이르면 7시, 보통 8-9시, 늦으면 다음날이 되서야 퇴근 하는 일도 있었다.

그런 하루를 보내고 오면 나는 지친 나를 달래줄수 있는 시간은 없었고, 적어도 내일의 안위를 위해 1분이라도 더 빨리 침대에 눕기 위한 나만의 결투가 시작된다.


서울에 올라올 때 나에게 많은 변화들이 있었다.

되돌아보면 20대 중반까지는 오롯이 내가 선택하는 일들이 적은 것 같다.

어렸을 때 부터 나는 자기주도적인 사람으로 키워졌었고, 그런 사람이었기에 학업, 대학, 취직 모두 부모님의 의견보다는 나의 의견으로 선택했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상황이기도 했지만 난 그렇게 커온 내가 좋고 자랑스럽기도 했다.

그래도 대학, 취업 등은 ‘보통 하는 것’이었고 그 안에서 어떤 '방향'을 선택할거냐의 결정을 하면 되는 것이었다. 김밥은 먹어야 하는 거라면, 참치김밥을 먹을지 치즈김밥을 먹을지 정도의 선택이랄까나.


하지만 서울에 올라올 때는 ‘보통 하는 것’이어서 선택한 것이기 보단 안해도 되지만 내가 선택한 것이었다.

도보 10분 거리에 잘 다니던 회사를 더 확장된 성장을 이유로 퇴사했고,

나의 인적 네트워크가 잘 형성됐던 지역을 떠나 서울로 이사했고,

7년 동안 만난 남자친구와의 이별을 선택했다.


그렇게 나는 서울에 와서 회사에 들어갔지만

지난 직장과는 많이 다른 분위기에 어색했고, 높은 업무 강도에 지쳤으며, 지옥철 속에서는 인간 혐오를 가지게 되고, 오랜기간 나의 지친 마음을 달래줬었던 든든한 친구도 없어진 상황이었다.

혼자 놓여진 기분과, 앞으로도 이걸 해결해 나갈 방법이 없을것 같은 혹은 외로이 혼자 고군분투 해야만 하는 그 기분은 꽤 힘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나에게 주는 당근과 채찍, 두가지의 카드가 있었다.

'이것도 못견디면 어떡해', '지옥철 타고 출근하는 서울의 직장인들이 얼마나 많은데. 다들 견디고 사는거야.' 라는 채찍

'남들보다 사회생활 일찍 시작했잖아, 대리 중에서는 내가 제일 나이가 어리니 1-2년 조금 쉬어도 괜찮아' 라는 당근, 그러면 그 끝에는 '그 쉬는 동안 밥은 어떻게 먹고 살건데, 이 서울이라는 고물가 지역에서.' 라는 채찍이 다시 오곤 한다

사실 채찍이 나에게 더 아프게 느껴졌기에 참고 견디며 출퇴근을 하고, '아 이제 좀 적응 한것같기도해' 라고 자기 최면을 걸기도 했던것 같다


그러는 사이 나는 내가 좋아했던 나의 모습들을, 나의 색깔들을 잃어가는 것 만 같았다.

자기 주도적으로 일을 하는 걸 좋아했던 나는, 그냥 상사의 의견에 따라주는 걸 선택하기도 한다.

무던하고 스트레스에 대한 회복탄력성이 좋았던 나는, 자꾸만 예민해지고 길거리에 지나치는 사람들마저 미워할 때가 생긴다.

뭐든지 해나갈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오늘을 열심히 살던 나는, 가슴 한켠이 답답하고 뭘 위해 이렇게 매일 쳇바퀴 돌 듯 살아야 하는걸까 생각을 하곤 한다.


이런 시작점이 서울로 이사오고 나서 생겼기 때문에, 나는 서울을 좋아하지 않는다.

언제든 떠나고 싶어하지만, 떠나지 못하고 있고 내가 힘든 핑계에 대한걸 괜히 살기 빡빡한 도시라는 별명을 붙여본다. 그런 나 조차도 속이지 못하는 알량한 핑계를 댄다.


내 모습이 좋아보이지 않는 순간을 더 이상 지속할 수 없었다.

아무리 모든 사람에게 다 하나씩은 배울게 있다고 위안을 삼아봐도, 그 상사 밑에 계속 있다가 똑같은 모습으로 닮아갈까봐 무섭기도 했다.


그렇게 퇴사를 결정했고,

우리 팀에서 동반 퇴사하는 분이 계셨는데 출근 마지막 날 나에게 이렇게 말하셨다.

"대리님, 이렇게 밝게 웃는거 2년동안 처음 봐요."

회사에서 내가 색을 잃어가고 있었던걸 다시금 깨닫게 된 말이었다.


퇴사 후, 나에게 당근이었던 카드는 다시 채찍이 되고 있다.

'그냥 좀 쉬어도 되지만, 말했잖아 밥은 어떻게 먹고 살건데?'

밥은 어떻게든 먹고 산다.

내가 나로서 발광하지 못하고 있는데 어떤 밥을 먹을지가 뭐가 문제일까.

아직 혼자고, 나 하나만 책임지면 되는 이 때에 뭐라도 해보면 어떤 밥이라도 먹겠지.


예전에 이직을 위해 사람인에 올려 놓았던 자기소개서와 경력기술서를

퇴사 후 오랜만에 업데이트하고 나니까, 3월이라 그런지 헤드헌터의 제안이 조금씩 오지만

당분간은 내가 자기주도적으로 일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환경이라고 생각한 프리랜서의 삶을 한번 도전해보려고 한다.


지금 도전하고 있는 것은,

1. 회사에서 배웠던 오프라인 마케팅, 브랜드 마케팅 경험을 살려 프리랜서로 일하기

2. 재미있어 했던 영상 편집 꾸준히 하면서, 편집 외주도 진행해보기

3. 서울을 벗어나 내가 편해지는 공간을 찾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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