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댁 주방이 더 편하다.

by 최지안

"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군."

시엄마는 나의 예상을 벗어나는 법이 없다.



올 설명절에도 음식준비는 아무것도 안 하셨다.

설거지만 가득 쌓인 주방. 내가 와서 같이 하면 되지 않냐고?

음식을 하는 것 자체를 안 좋아하신다. 아니 못하신다.

애당초 어떤 음식을 할지 어떤 음식을 해갈지 물어보지 않고

눈치껏 음식을 준비해 간다. 다행히 친정엄마가 잘 챙겨주셔서

육전이며 잡채며 각종 밑반찬까지 마련해 가지고 갔다.




방 두 칸 화장실 하나인 집에서 우리는 함께 살았었다.

시부모님, 시누이, 우리 부부 성인 5명이

19평 남짓한 아파트에서 살았다.

그게 나의 첫 신혼의 시작이었고

3년째 신혼생활까지 쭉 이어져갔다.



그래서 나는 잘 안다. 우리 시엄마를.

장점과 단점이 아주 명확하신 분이라는 것을



어쩌면 그런 점은 나와 비슷하다.

살림을 못하는 점도 나와 비슷하고

호불호가 명확하며

자기 주관이 확실한? 그런 점도 비슷하다.

살림 솜씨 모자란 점은

솔직히 시엄마의 정도가 훨씬 심하다.

이건 앞담화로도 했던 얘기다.



얼마 전 우리 집에 바나나를 사 갖고 오셔서는

냉장고에 넣고 가셔서 짜증이 확 났다.

" 바나나를 냉장고에 넣는 엄마도 있나? "





친정에 가서는 설거지를 해놔도 구박 듣기 일쑤다.

" 네가 해봐야 내가 다시 해야 돼 그냥 하지 마. "

엄마는 늘 내가 해놓은 설거지가 못마땅해서 다시 씻고 정리하신다.

엄마만의 설거지 방식이 있다. 워낙 깔끔하게 살림을 잘하시니

내가 어디 명함을 내밀지 못한다. 요새는 확실히 나이가 드셨는지

간을 잘 못 맞추시기는 하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음식점을 해라"

"인터넷에 팔아라" 원성이 자자했다.



시엄마는 딱 반대이다.

그래서 시엄마의 주방이 더 편하기도 하다.

내 맘대로 설거지를 해놔도 되니까. 그래도 좋아하시니까

설거지를 해놔도 만족스럽다.

" 내가 뭔가 할 일을 했군" 이런 뿌듯한 마음도 든다.



오늘은 냉동실에서 고기를 한팩 꺼내놓으시는 걸

보니 떡국을 끓여주실 모양새다. 재료는 떡, 만두, 계란 끝!

시엄마의 떡국에는 사골육수라든지

그 흔한 비비고 사골국 하나 들어가는 법이 없다.

양파나 파와 같은 채소나 고명도 일절 들어가지 않는다.

그나마 떡을 불려서 넣어주시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생수에 고기 넣고 떡 넣고 마지막으로 계란만 풀어주면 끝~

맛은 있다. 정말 희한하게 우리 엄마가 그렇게 정성스럽게 끓인

떡국보다 시엄마 떡국이 더 맛있다.

3년 같이 살았다고 입맛이 비슷해진 걸까?

아니면 그런 털털한 스타일이 나랑 맞아서 그런 걸까?

간을 세게 하셔서 그런가?

집에서 가져온 전과 반찬 그리고 시엄마의

떡국으로 한 끼가 완성되었다.




우리 엄마랑 시엄마랑 반반 섞어놓고

우리 아빠랑 시아빠랑 반반 섞었으면 좋겠다.

선량하고 남의 부탁 거절하지 못하는 마음 여린 부분에서는

양가 모두 비슷하시지만 성격에 있어서는 완전 반대다.



울 엄마는 너무 깔끔하고 장까지 담가서

모든 음식을 다 만들어 먹으려 하니 문제

시엄마는 너무 살림에 관심이 없고 음식은 아예 안 하려 하니 문제

울 아빠는 너무 무뚝뚝하고 잔정이 없어서 문제

시아빠는 너무 세심하고 다정해서 상처 잘 받으시니 문제

좀 섞였으면 좋겠는데 각자의 색깔이 워낙 분명하시고

나이가 있으시니 이제는 그러려니 하는 것이다.





시집에 살 당시 주방에서 아주 통쾌한 일이 있었다.

그날따라 시엄마가 간식을 만들어주신 다며

가래떡을 팬에 굽고 계셨다.

역시나 기름 한 방울 두르지 않고 냉동실에 있는 가래떡을

냅다 프라이팬에 내동댕이 치고

가장 센 불로 지지고 계셨더랬다.



아직도 그 장면이 눈에 생생하다.

뒷짐을 지고 지긋이 다가와 프라이팬을 바라보시던 시아빠.

정말 온화하고 화를 안 내시는 분인데

이건 정말 못 참겠다 하시는 표정으로

인상을 확 찌푸리시며 한 마디 하셨다.

" 당신은 뭐 하나 성의 있게 하는 게 없어.

이게 뭐야 다 타서 어디 먹겠냐고."

낮지만 강력한 어조로 말씀하셨다.



브라보! 내 마음속에는 아주 큰 팡파르가 울렸다.


보살 같은 시아빠와 함께 살면서 룰루랄라 자기 편한 대로 살림해 온

시엄마에게 오래간만에 제대로 꽂힌 일침이었다.

정곡을 찔린 시엄마는 제대로 얻어맞은 멧돼지처럼

소리를 꽥~~ 지르며 신경질을 내셨다.

내가 뭐! 내가 뭘 어쨌다고 그러냐고!!



시아빠 정말 잘하셨어요. 진작에 그렇게 혼내주셨어야죠!

제발 자주 일침을 날려주세요..

난 정말 간절히 바랐었다.





시엄마의 주방에서 난 무슨 짓을 해도 칭찬을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였다. 그래서 시댁 주방이 더 편한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 뒤치다꺼리를 다 해야 했지만.



오늘은 설거지를 하면서 왠지 모르게 시엄마의 마음이 느껴진다.

미안해하고 계시는구나. 민망해하고 계시는구나.

" 너희들이 와도 뭐 형편이 이러니 제대로 못 해준다."

이런 말씀을 자주 하신다. 못해준다. 못해준다.

워낙에 어려운 형편이셨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아마 요리를 해 먹는다기 보다

먹고사는 음식을 하셨을 것이다.

밥이랑 생성 한토막 김치

밥이랑 찌개하나

이렇게 먹을 수밖에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신랑이 먹었던 음식들을 들어보면 대략이 그렇다.



어릴 때 소풍 가서 가장 창피했던 기억 중 하나가

양반김에다가 맨밥을 돌돌 말아서 싸간 김밥이라고 했다.

말 그대로 김이랑 밥이랑 돌돌 만 김밥



단무지랑 소시지랑 살 돈이 없어서 그렇게 싸주신 게 아닐까?

형편이 어렵다 보니 요리를 할 생각을 못하고

요리를 안 하다 보니 습관이 되신 건 아닌지 생각해 본다.

자식을 낳아 키워보니 그렇다. 하나라도 더 이해하게 되고

왜 저럴까? 가 아닌 왜 저렇게 되셨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서로를 이해해 가는 만큼 서로의 공간이 조금은 더 편해진다.



시엄마의 살림살이가 하나씩 이해되면서

난 이 주방이 더 편해진 걸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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