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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태산이높다하되 Jan 06. 2023

공자 가라사대(학이~술이)

<논어를 논어로 풀다>, 이한우 저

논어를 읽게 될 줄이야. 공자는 기원전 6세기 사람이다. 지금으로부터 2600여 년 전 중국의 노나라 사람. 벼슬다운 벼슬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는 사람.


당시는 춘추전국시대였던 이 시대는 전쟁이 횡행했기에 이나라 저 나라로 도망 다니기 바빴다는 사람. 2600년 전 그 시절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 뭐 하겠느냐는 생각도 들었던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런데, <논어를 논어로 풀다>의 표지에는 이런 설명이 붙어 있다. "인간학이자 정치학, 윤리학이자 인간 경영학, 그리고 조직심리학이자 인생의 내비게이션, 논어"


요즘 내가 궁금해하던 학문들이 망라되어 있다고 하니 한번 읽어보자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학이

처음 시작은 '학이'편. '배울 학' 첫 구절은 "배우고 그 배운 것을 때때로 익히면 얼마나 기쁠까! 친구가 있어 멀리서 나를 보러 온다면 얼마나 즐거울까!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언짢아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이 군자"


'배운다'는 것은 무엇일까? 일단, 여기엔 바탕 '질'자가 등장한다. 배운다는 것은 사람의 됨됨이 즉, 바탕을 먼저 갈고닦으라는 거다. 마치 영화 <취권>에서 성룡이 스승에게 무술을 배우기 전에 청소하고 밥하고 설거지하면서 기본 체력과 인내심을 기르듯이 말이다.


부모님께 효도(효)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사회와 조직에 최선(충)을 다하고 그렇게 사람부터 되는(덕, 서) 과정을 거치면 굳이 배우지(문)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공자는 그렇게 하고 나서도 남는 힘이 있거든 공부(학문)를 하라고 말했다. 좋은 바탕(질) 위에 꾸밀 것(문)이 있다면 그렇게 하라는 거였다.

  

그리고 유붕 자원방래면 불역락호, '친구가 멀리서 나를 보러 온다면 얼마나 기쁘겠는가'하는 말의 진정한 의미는 친구를 만난다는 그 자체보다는 내가 알고 있는 배움의 정도, 정보의 진위 또는 깊이를 타 지역  지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기회라는데 있다. 정보의 교류,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인 것이다.


또,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더라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 또한 중요한 대목이다. 내가 남을 알아주어야 남도 나를 알아준다는 말인 것이다. 현대 심리학의 아버지로 일컬어지는 아들러가 "현대의 모든 스트레스는 관계에서 비롯된다"고 했다. 2600년 전에도 스트레스의 근원에 '관계'가 있었다.


덕은 무엇이고 서는 무엇인가?

덕은 '~다움'을 일컫는 말이라고 한다. 그 사람은 덕이 있다고 말했다면 '~스러운' 또는 '~다운' 구석이 있었다는 말이다. 덕이 있는 군주들이 활을 잘 쏘았다는 기록이 있는데, 화살이 과녁을 제대로 맞히는 여부를 알아보는 일종의 시험이었다. 그런데 공자가 살았던 실절엔 과녁을 짐승의 가죽으로 했던 모양이다.


힘으로 활을 쏘아 가죽을 뚫는 것을 자랑하는 사람도 있었던 거다. 그러나 진정한 활쏘기의 효용은 덕을 보이는 것이었다. 촉을 날카롭게 하지 않고도 과녁에 명중시킬 수 있는지 알아보는 시험이었던 거다.


진정한 살 수는 살을 찢고 피를 보는 것보다는 급소에 명중시켜 화살을 쏘는 자나 맞는 자가 필요 이상의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피하는 것에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덕'을 설명하면서 등장하는 '군군신신 부부자자' 즉,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한다, 아버지는 아버지다워야 하고 아들은 아들다워야 한다는 말이 사실, 고까웠다. 선대로부터 유전적으로 물려받은 자리에 권위와 정당성을 부여하는 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의 국가나 기업 같은 목적지향적 조직에 이 '덕'을 대입해 보면 좀 달라진다. 리더다운 리더에게 자리를 주어야 한다는데 반대할 사람이 있을까?


결국, 덕 있는 자가 리더의 자리에 올라야 한다는 뜻이었다. 2500년 전엔 춘추전국시대, 전쟁이나 반란으로 언제든 군주가  쫓겨나던 시대 아닌가?


'덕(다움)'이 없는 사람이 리더가 되면 예전(백성)이나 오늘날(시민, 국민)이나 참 피곤하다.

관덕정 전경, 다음출처

참고로, 제주도 상도동에 있는 유적지 '관덕정'은. '덕을 보는 정원'이라는 의미의 제주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다.

이곳이 궁술, 즉 활쏘기 대회가 열렸던 곳이라고 한다. 덕장인지 아닌지 알아보는데 활쏘기가 필요하다는 것은 정말이지 선현의 지혜가 아닌가 한다.


 리더에게는 배려와 예의, 도, 겸손, 인문학적 자질이 필요하지 않은가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강한 체력과 빼어난 순박력 또한 필수적이다. 이를 테스트하는데 활쏘기만한 과목이 있을까?   


 그렇다면 는 무엇인가? 용서할 때 그 '서'인데 그 의미는 '내가 남에게 받고 싶은데도 내가 남에게 베푸는 것'이라고 한다.


코란이나 성경에도 등장하는 말인 것으로 보아 수천 년 전부터 사피엔스들의 이기심이나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어떻게 하면 희석 또는 중화시킬 수 있을까 고민한 끝에 개발된 개념이 아닌가 한다.


그래서일까 행동으로 실천하기 가장 어려운 말이기도 하다. 난 미운 놈 떡 하나 더 주고, 한쪽 뺨을 때리면 다른 쪽 뺨을 내미는 미친 짓은 도저히 할 수가 없으니 말이다.


이밖에도 논어에는 인(어짊), 예(예의), 공경(남을 높이고 자신을 낮춤), 도(행위나 생각의 기준)와 같은 용어가 하나하나 잘 설명되어 있다. 온고이지신이라는 구절도 등장한다. 옛것에서 오늘날의 해석을 통해 새로운 것을 발견한다는 의미로 해석되는, 지금도 우리가 잘 쓰는 말이다.


<논어>의 구절들을 온고이지신 하는 마음으로 한 구절씩 읽다 보면 오늘을 사는 우리의 삶을 돌아보는데 도움이 된다. 아니 어쩌면 더 답답해질 수도 있다. 공자도 “요즘 젊은 것들이란~~”하며 혀끝을 찼다고 하지 않던가.


<논어>는 총 20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한우 선생의 <논어를 논어로 풀다>라는 책은 이 20편의 글을 해설하고 있는데 각 편을 다른 편들의 내용으로 전후좌우 맥락을 고려해 해석하느라 총 페이지 수가 1400쪽이나 된다.


그런데 재미가 난다. 나는 이제 7편 (술이)를 읽는 중이다. 1/3 쯤(467쪽)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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