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한잔 주세요!

심리 자본을 축적하는 법

by 정태산이높다하되

회계사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마리아, 그녀는 혼자 점심을 먹고 디저트 가게를 찾았다. 찻길 쪽 야외 테라스에 자리를 잡았다. 햇볕을 받고 싶어서였다. 그녀는, 잠시 고민하다가 롱 블랙 한잔과 브라우니 한 조각을 주문하고 나서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처럼 스마트 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30살이 된 기념으로 절친중의 절친(BFF: Best Friend Forever), 스테파니가 자신의 사촌오빠를 소개한 것은 엊그제였다.

마리아가 출근한 오피스에서 커피를 타서 한 모금 마시려던 때였다. 그 남자 폴이 보낸 메시지의 도착 알람소리를 들었던 것이다. "마리아! 폴이에요. 출근 잘하셨나요? 어제는 지방 출장이 있어서 하루 종일 운전하느라 연락을 못 드렸어요. 시간 내주시죠. 또 만나고 싶어요."


블라인드 데이트를 한지 하루가 지난 다음 날에나 온 메시지에 마리아는 '어떻게 답장을 하면 좋을까'하고 생각했다. 고민하고 있는 중에 등 뒤에서 중저음의 목소리가 들렸다. 남성인지 여성인지 구별하기 힘든 목소리였다. 마리아가 목격한 것은 어느 나이 많은 백인 여성이 인도계 젊은이에게 마치 원래부터 알던 사람에게 하듯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장면이었다.


"물 한잔만 주세요."

목소리의 주인공은 핑크색 점퍼 차림에 반백의 긴 생머리를 늘어뜨린 벽안의 노파였다.

"저한테 하신 말씀이세요?"

인도계로 보이는 젊은이가 노인에게 물었다.

"물 좀 주세요. 목이 말라요."

노파의 몰골을 자세히 보니 그녀가 걸치고 있는 점퍼는 매우 낡아서 중간중간 아주 작은 구멍이 무늬처럼 뚫려 있었고, 하의는 상의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짧은 붉은색 반바지였다. 그러고 보니 차림새가 상의는 겨울, 하의는 여름이었다.

"아! 물이요. 샾 안으로 들어가면 왼쪽 모퉁이, 서비스 데크에 물통이 있어요. 그 옆에 일회용 컵도 있고요. 들어가셔서 드시면 돼요."


노파의 외모를 개의치 않는 듯 젊은이는 상냥하게 대꾸하는 것이었다. 누가 봐도 남루한 노인인, 그 노파는 샾 내부로 들어섰다. 손님들의 시선이 집중됐지만 그녀는 조용히 마치 물 흐르듯 움직이는 것이었다. 서비스 데크에 놓인 물통으로 가서, 플라스틱 일회용 컵을 꺼낸 다음, 물통의 꼭지에 대고 손잡이를 돌렸다. 물을 마신 그녀는 이내 사라졌다. 그녀의 동작 하나하나는 느렸지만 어쩐지 마리아에게는 노파의 말과 행동이 순식간에 일어난 일처럼 여겨졌다.


잠시 후, 인도계 젊은이는 샾의 내부로 들어가 매니저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마리아는 혹시 행색이 남루한 노인이 샾의 내부에 들어가 물을 마시고 갔으니 소독이라도 해야하는 것 아니냐고 말하려는 것인가 생각했다. 그런데 대화 내용은 그녀의 뜻 밖이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세드릭이라고 해요. 생각해 보니 허락을 구하지도 않고 제 마음대로 아까 그 아주머니에게 물을 마시게 했어요. 미안합니다. 제가 그 노인을 대신해 돈을 지불하겠어요." 인도계 젊은이의 말이었다.

"아니요. 어차피 돈을 받지 않고 손님들에게 제공하는 음료예요. 괜찮습니다. 당신은 친절하면서도 매너가 좋은 분이군요." 매니저는 웃으면서 대꾸하는 것이었다.


마리아의 추측대로, 세드릭이라는 젊은이는 인도 출신이었다. 그리고 의문의 노인은 백인이었다. 그녀가 그에게 물을 달라고 한 것이나 그가 그녀에게 물을 마시도록 허락한 일은 평소에 일어나기 힘든 매우 드문 해프닝이었다. 부지불식간 일은 벌어졌고, 수습을 위해 세드릭은 음료 값을 지불하겠다고 했으며, 매니저는 아무 일 아니라는 듯 괜찮다고 했다. 그리고 아무 일 없다는 듯 그들은 자신이 하던 일로 주의를 돌렸다.




마리아는 부끄러웠다. 노인이 샾의 내부로 들어가 물을 마신 일을 매우 불결하게 생각한 것이나 인도 출신 젊은이가 소독을 하게 하려는 의도로 샾의 매니저와 대화를 할 것이라고 예단한 것, 그리고 매니저가 의외의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젊은이를 칭찬한 일에 대해서 말이다. 그녀는 얼마 전 오디오로 읽었던 도리스 메르틴의 책, <아비투스> 중 심리 자본 챕터에서 소개한 에피소드를 떠올렸다.


아이스크림 가격이 아직 몇 센트였던 때, 한 어린아이가 가게에 들어왔다. "소프트 아이스크림 얼마예요?", 아이가 물었다. "25센트"라고 점원이 말했다. 아이는 주머니에서 동전 몇 개를 꺼내 헤아렸다.


"셔벗 아이스크림은 얼마예요?", "20센트! 뭘로 줄까?" 아이는 다시 동전을 헤아려 셔벗 아이스크림을 주문했다. 아이스크림과 계산서가 나왔고, 아이는 동전을 모두 탁자에 올려놓고 갔다.


점원은 계산서와 동전을 보고 울컥했다. 탁자에는 25센트가 놓여 있었다. 아이는 점원에게 팁을 주기 위해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포기했던 것이다.

- <아비투스> 본문 중에서 -


디저트를 먹고 사거리를 건너 사무실로 가려던 마리아는 눈에 익은 노인의 뒷모습을 발견했다. 긴 생머리와 핑크빛 점퍼, 그리고 붉은색 반바지의 노파는 대각선 건너편으로 보이는 침례교회의 후미진 뒤뜰을 천천히 걷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발견한 마리아는, 삼십 분쯤 전 저 노파는 목이 말라서 샾 근처를 서성였던 것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노파는 몇 마디의 대화를 통해 타인의 온기로 마음의 갈증을 채우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리고 마리아도 즉시 자신의 일에 주의를 돌렸다. 폴에게 답장을 한 것이다. "네 저 시간 낼 수 있어요. 당신은 언제가 좋은가요. 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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