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훌쩍 컸다고 느끼는 순간들

싱글맘의 하루

by 소화록

1.

아이의 떼씀에 한 두번은 참았던 내가 곧바로 언성을 높여 혼을 내는 경우가 반복적으로 있었다. 안되겠다 싶어서 아이에게 말했다. “00아. 엄마가 지금 마음 속에 병이 걸렸어. 나쁜 도둑 아저씨가 엄마 돈을 가져가서 엄마가 마음이 힘들고 아파. 그래서 엄마가 참지 못하고 소리지른 부분도 있거든.” 아이는 그 이후로 엄마가 마음 속이 까매진 병에 걸렸다고 생각하고 엄마가 화를 내는 건 엄마만의 이유도 있다고 여겼다. 언젠가 차분하게 훈육을 하는 내 모습을 보고 딸이 “엄마 이제 마음 병 없어져떠?” 하고 물었다. 내 상태를 가장 가까이서 관찰하는 자녀로 인해 끊임없이 거울처럼 나를 비춰보게 된다.


2.

얼마전 있었던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친선경기를 생중계로 보는데 딸이 축구 경기의 2시간을 나름 자기만의 할 일들로 잘 보냈다. 기다려 준 딸이 대견했다. 애니메이션을 보는 딸과 드라마를 보는 나와 취향의 교집합이 아직 무리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번 축구를 볼 때는 무슨 색 옷을 입은 사람이 우리나라 팀인지, 점수판 보는 법, 골기퍼의 옷 색깔이 달라서 어느쪽으로 골을 넣어야 하는지 등을 대화하며 아이와 한 영상을 보며 그것을 주제로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에 기쁨을 느꼈다. 딸은 ”엄마는 여기 응원해 알게찌? 나는 여기 응원할께!“ 하기도 하고, 티비 속에서 들리는 응원 소리를 외워서 ”오 필뜽 고릴라~ 오 필뜽 고릴라~“ 따라하기도 했다. 운동 경기는 아는 만큼 보이지 않는가? 아이에게 하나씩 알려주면서 서로 응원하는 그 시간들이 참 즐거웠다. 많이 컸구나, 우리 딸.


3.

아이가 자기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소리 지르면서 막무가내로 떼를 쓸 때가 있다. 그러다가 훈육하는 내 말투를 일부러 따라하면서 놀리기도 한다. 한번은 약이 올라서 나도 언젠가 딸의 떼부림 말들을 똑같이 따라하며 놀렸다. “나 이거 하고 싶다고!” 하길래 나도 “엄마도 이거 하고 싶다고!” 하니까 딸이 “엄마는 자전거(사이클 운동)하고 싶어서 거짓말하는거잖아!” 라고 할 때, 내가 무엇을 하고 싶고, 그것을 위해 돌려말한다는 것을 간파한 딸의 시선이 예리하다 느낄 때가 있다. 엄마로서 내 마음이 읽히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 아. 너 정말 많이 컸구나? 하고 느낀다.


4.

“오늘은 니가 씻을래? 엄마가 씻겨줄까?” 매일 씻기전 물어본다. 내가 씻겨주면 딸은 스퀴지 등의 뒷처리를 해야하고, 스스로 씻고 나온다면 뒷처리는 내 몫이 된다. 우리집 규칙이다. 아이가 어느날은 “내가 씻을래!” 하더니, 샤워공간 부스 문을 닫고 혼자서 사색에 잠긴채 샤워를 하는 모습을 보였다. 엄마인 나를 찾지도 않고, 나 역시 머리에 손을 대고 박박 긁으려는 딸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는 때가 있다. 보통 샤워할 때 이 생각 저 생각 하면서 ‘자체 묵상’의 시간을 보내는 사람 은근 많지 않은가? 딸 역시 말없이 혼자 조용히 씻는 모습에서 뭔가 생각에 잠겼구나. 싶으니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구석구석 깨끗이 거품을 닦아내는 스킬은 부족할지언정 가끔 이런 시간도 필요하다 느낀다.

keyword
이전 10화새벽에 쓴 명상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