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맘의 하루
주말은 아이를 위해 이곳저곳 돌아다녀야 한다고 생각했다. 더 많은 것을 보게 해주고 싶은 엄마마음이랄까. 한편으로는 다소 무리하는 것이 기본값이라 가만히 쉬는 것이 어렵기도 하다. 그렇게 지역 축제를 찾아서 가면 주차장 입구 근처에도 못 갔는데 한없이 길게 늘어진 주차행렬을 마주할 때가 있다. 주차만 했는데 벌써 하루 에너지를 다 쓴 것 같다. 이날도 아이에게 나갈까? 물어보니 쉬고 싶단다. 티비를 더 보고 싶은 눈치였다. 그래. 뭔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에서 나를 놓아주고 싶었다. 미션을 클리어하듯 진정한 쉼의 시간조차 없는 것이 싫었다. 딸도 나가기 싫다고 하고 덕분에 사이클을 타며 티비를 보며 배고플 땐 냉장고 뒤적뒤적하면서 별일 없이, 특별한 외출 없이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의미 없이 보내는 시간이 싫어서 쉬는 시간에도 할 일을 만들었던 나지만 요즘은 ‘중도’의 길을 걷고 싶어서 의도적으로 ‘시간 까먹기’를 해보고 있다. 하루 종일 티비보기, 하루 종일 누워만 있기, 먹고 싶은 대로 왕창 먹기 등을 남눈치 안 보고 하고 싶은 마음이랄까? (그래. 이제껏 이런 적이 없었다. 혼자인 것도 나쁘지 않다.) 오후 4시쯤 되니 아이가 살짝 졸린 채로 나에게 산책을 가자고 조른다. 아, 이제는 내가 나가기가 싫다. 그때 느꼈다. 온 가족이 다 같이 외출한다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구나. 마음이 하나 되는 게 쉽지가 않다. 2인 가족 최소 구성원으로도 그런데 그 이상은 오죽할까. 누군가는 불퉁불퉁한 채로 내가 원하지 않는 일정에 따르는 경험도 하겠지. 소파에 온몸을 딱 붙인 채 아이에게 ‘외투 입고 바지 입고 양말 신으면 가겠다.’ 고 자꾸 미뤄본다. 아이는 졸리고 피곤하면서도 기어코 스스로 외출 채비를 마쳤다. 나는 씻지도 않고 모자만 눌러쓴 채 외투 입고 바로 나섰다. 아이가 가고 싶은 루트로 산책을 했다. 아이의 눈높이에서 가장 관심이 가는 건 풀들인가 보다. 생김새가 다른 낙엽을 이리저리 만져가며 ‘엄마 이거 머리에 꽂아줘!’라고 한다. 낙엽이 머리핀이 될 수 있는 건 어린 시절에 자연에 친숙한 아이만이 할 수 있는 놀이 같다. 놀이터에서 숨바꼭질을 하는데 내가 술래일 때 아이를 못 찾는 척 연기하기가 싫어서 바로바로 찾았다. 아이는 “엄마. 어딨 있지~? 하고 해 줘. 응?” 시간을 좀 더 끌어달랜다. 나는 싫다고 했다. 아이가 술래가 되었을 땐, 아이가 찾지 못할 곳을 찾아 한참을 숨어있었다. 엄마는 아주 신이 났다. 근처에 흙 놀이터를 갔는데 ‘고양이가 쉬 싸고 똥 싸는 곳’이라는 팻말이 붙여진 것을 봤다. 자동으로 ‘아 흙 만지지 말아야지.’ 생각을 했다. 아이는 그러거나 말거나 모래성 만들겠다고 흙을 파고 만지고 조물조물한다. 한걸음 물러가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아이가 “엄마는 흙 위에 앉는 거 싫어?”라고 물어본다. 마음은 소싯적 마음이라 ’아니? 나 흙 좋아하는데?‘ 생각했지만, 흙에 일절 손하나 안대는 나를 보며 흙을 더럽다고 생각하고 만지지 않는 ’ 성인‘이 된 내가 보였다. 흙을 입에 넣지만 않았지 누구보다 흙에서 뒹굴거리며 놀았던 내가 언제부터 흙과, 자연과 멀리하며 살았을까? 궁금했다. 매일이 동네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아파트 곳곳에서 뛰어다니며 놀던 일상이었는데 어느새부턴가 놀이와 동떨어진 채 삶을 살았다. 그리고 엄마가 된 나는 아이를 통해 다시 ‘자연’과 연결된다. 잃어버렸던 놀이를 되찾는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던 자연은 돌고 돌아 찾아온 나를 반겨준다. 아이와 나의 작은 축제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