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흘러가는 시간(2)

싱글맘의 하루

by 소화록

눈 뜨자마자 산책을 갔다. 아이는 일어나기 무섭게 '엄마 나가자!'를 외쳤다. 새로운 세상을 어서 더 경험해보고 싶다는 말로 들렸다. 갔다 와서 빈둥빈둥 놀다가 호스트 분께 신청했던 목공-원예 프로그램을 하러 목공실로 갔다. 가는 길에 거위를 만나서 또 한 번 긴장을 해야 했지만.. 나는 나무 화분을 망치로 뚝딱대며 만들고 아이는 화분을 아크릴 물감으로 꾸몄다. 화분이 얼마간 마른 뒤 흙을 넣고 식물을 심었다. 호스트와 자연스럽게 대화를 할 시간이 만들어졌다. 호스트분은 원래 교사였는데 부여로 귀농한 지 8년이 되었다고 한다. 어떻게 교사를 그만두게 되었냐고 하니 자신을 세월호 사고를 당한 학교의 교사라고 말씀하셨다. 국가적 재난이었던 세월호 세 글자를 호스트를 통해 듣게 될 줄은 몰랐다. 호스트는 영어 교사였는데 세월호 이후 출근하려고 하는데 공황장애가 왔고 이후로 말도 못 한 고통을 안고 사셨던 것 같다. 실례가 될까 봐 자세히 물어보지는 못했다. 함께 교사였던 남편과 교사를 그만두고 귀농을 결심하고 내려왔고 호스트님은 고통의 시간들 이후 임상심리 공부를 했고 숙소를 운영하면서 원예 프로그램도 함께 하신다고 했다. 또 이곳에서 초등학교 아이들 과학을 가르치며 다시 강단에 서고도 계신다. 자연스레 나도 나의 지난 아픔들을 이야기하며 인생의 가장 밑바닥에 내려갔을 때 기도조차 나올 수 없는 침묵의 시간을 겪는다는 것을 함께 공유했다. 분명 고통은 우리를 또 다른 곳으로 안내한다. 2년 넘게 상담을 받으면서 느꼈던 것은 사람이 겉으로 사지육신 멀쩡해도 마음이 지옥인 사람이 있다는 것. 마음이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를 살리려고 상담을 받고 약을 타먹고 마음공부를 하면서 자연스레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향해 시선이 가게 되고 심리와 치료를 좀 더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필연적인 생각으로 흘렀다. 그 길을 먼저 걷고 있는 호스트님과의 대화는 그래서 정말 뜻깊은 시간이었다. 내가 이곳에 온 것도 그냥 우연이 아닌 삶이 나를 이곳에 인도해 준 것처럼 기뻤다. 예기치 않은 생일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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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엄마는 생일이었던 어제 한 번의 연락이 없었다. 받는 것은 당연하고 주는 것은 생색냈던 우리 엄마는 엄마라는 상징성과 다르게 자신을 지독히 사랑했고 연민했던 사람이었다. (심리상담 쪽 어휘를 빌리자면 우리 엄마를 나르시시스트이자 경계성 장애를 앓고 있다고 보고 있다.) 자신에게 안부 연락 한 번 없는 딸의 생일은 챙겨줄 필요가 없다고 느낀 걸까. 마음이 불편했지만 그토록 받고 싶었던 조건 없는 사랑을 엄마에게 받을 수 없다면 이제 내가 나에게 주면 되니까. 아쉬운 마음을 달래개 된다. 알랭 드 보통의 책 <나를 채우는 여행의 기술>에는 여행을 통해 장소가 바뀌지만 과거로부터 쭉 살아왔던 나 자신은 그대로 이기에 이 변수를 여행사에서는 간과하고 여행이 곧 행복을 향한 여정인 양 완성된 기쁨인양 홍보한다고 한다. 관광지가 모든 것을 대신할 수 없는 이유는 그곳에 있는 나는 변함없이 나이기 때문이라고. 그래서 그런가. 엄마를 생각하니 찬란했던 자연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마음에 먹구름이 낀 것 같았다. 낮잠이 필요하다. 아이는 이층을 올라가다가 계단에서 살짝 굴러서 울면서 내 품으로 들어온다. 아이를 토닥이며 함께 낮잠에 들었다. 꿈속에서 나는 엄마에게 부당한 대우를 항의하고 표현했다. 엄마가 나로 인해 돈을 더 많이 받게 되는 어떤 상황이 있었는데 내가 그중 일부를 나에게도 줘야 할 권리가 있다고 당당히 요구했다. 돈이 세상의 전부인 엄마를 꿈속에서 만났고, 나는 따졌다. 나에게 전혀 관심이 없는 엄마를 향해 내가 궁금하지 않냐고 물었다. 꿈에서 깨니 실제로 엄마한테 연락을 한 건지 꿈을 꾼 건지 고민하느라 잠시 멍하니 있었다. 실제로 연락해서 마음을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이제는 내가 나를 지키고 보호하는 마음으로 나 자신을 대변하고 있구나,를 꿈을 통해 경험한 것 같아서 진정 내가 묵고 있는 이 숙소 이름이 <치유농장>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의 이름으로 어떻게든 나를 만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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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는 아이와 수영복으로 환복을 하고 미니 풀장에서 또 풀밭에서 물총놀이를 하며 놀았다. 큰 수건을 가져올 필요가 없었던 게 잠깐 의자에 앉아있음 마를 정도로 햇살이 강렬했다. 한바탕 놀다가 캠핑의자에 앉아 모든 것이 그대로인 자연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콩떡이 개가 아끼는 공을 멀리 던지며 받아오는 놀이도 한다. 뒷 발 중 한쪽 다리가 절단된 콩떡이는 산에서 덫에 걸려 3일간 집에 돌아오지 않았는데 호스트님의 꿈에 콩떡이가 다리 한쪽을 잃은 채 자신에게 왔다고 했다. 그 뒤 실제로 콩떡이는 잘린 다리를 대롱대롱 매단 채 집으로 찾아왔다고.. 지금은 누구보다 씩씩하게 세발로도 잘 달리는 콩떡 이를 보며 '너도 이곳에서 치유의 시간을 보냈구나.'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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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여기가 우리 집이어서 너무 좋다!'

'엄마 여기에 오래오래 있어서 좋다!'

말하는 딸과 느릿느릿 2박 3일을 보냈다. 근처 맛집이나 관광지 하나 가지 않은 채 차 이동 한번 없이 이 숲 속에서 보냈던 시간들은 자연이 누구보다 자연스럽게 나를 위로하고 감싸줬던 시간들로 기억될 것 같다. 친정이라고 생각하고 언제든 따로 연락하고 놀러 오라던 호스트님과의 만남도 잊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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