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흘러가는 시간(1)

싱글맘의 하루

by 소화록

생일날 학교 방학식이었다. 일찍 조퇴를 써서 어린이집 낮잠 시간 전에 아이 하원을 했다. "오늘은 엄마랑 여행 가는 날이야~~~" 무작정 떠나고 싶은 그런 날이다. 숙소가 시골 외진 곳에 있다는 정보만 알고 근처에 갈만한 곳이 있는지 아무 검색을 하지 않고 갔다. 아이가 심심하다고 떼를 쓰면 어쩌지? 걱정도 들었다. 나의 기우였지만!


부여로 2박 3일 촌캉스를 보냈다. 부여하면 궁남지와 부여 리조트 등만 알았지 중심지와 멀리 떨어진 깡시골에 와볼 일이 없었는데 이번 여행이 딱 그러했다. 본능적으로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하나로 마트에서 2박 3일 치 식량을 샀다. 매번 외출해서 외식할 것 같지 않았다. 숙소에 도착해서 호스트 분의 설명을 들으며 호스트의 집과 숙소 근처에 자연 방생하는 강아지 네 마리와 닭 가족들, 그리고 거위와 오리 가족들을 봤다.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자연은 아이들의 놀이터'라는 말을 이렇게 실감 나게 경험해 본 적이 없었는데 아이가 심심할 할 틈이 없었다.


호스트 분이 키우시는 야채들도 자유롭게 따서 먹으라고 하셨는데 처음에 둘러볼 땐 오이도 상추도 내 눈에는 보이지가 않았다. 내 키만큼 자란 상추 줄기대가 상추인지도 몰랐고 노랗고 팔뚝만 한 것이 오이인 줄도 몰랐다. 생각하고 있던 상추와 오이의 모습은 교과서에서 볼 수 있는 싱싱하고 전형적인 대표적 모양이었다. 그러니 앞에 상추와 오이가 있어도 그냥 지나칠 수밖에.... 현재 살고 있는 지역이 도시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는데 먹을 수 있는 야채와 식용이 아닌 풀들을 구분하지 못하는 나 자신을 보며 신기하면서도 색다른 기분이었다. 나.. 도시녀였던가?


비치해 놓은 책이 있다. 머물게 된 곳에서 만나게 된 책을 읽는 것이 좋다. 뜻밖의 글을 읽는 것도 여행의 묘미니까! 알랭 드 보통의 <나를 채우는 여행의 기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와이파이와 티브이는 없다. 산으로 둘러싸이고 통행길 2곳을 제외하면 약을 치지 않고 수풀을 깎지 않은 터라 숲 속에 와있는 것 같다. 호스트가 거위들이 사회성이 없어서 외부 사람을 보면 물려고 하니 아이랑 멀리서만 보라고 말씀해 주셨는데 과연... 계곡을 가는 길에 거위 가족을 마주쳤고, 거위가 날개를 크게 퍼덕이더니(후에 위협하는 행동이라고 들었다.) 꼿꼿했던 목을 땅과 수평으로 굽힌 후 우리에게 돌진하기 시작했다. 아이랑 소리를 지르며 줄행랑을 쳤는데 진짜 무서웠지만 어찌나 웃겼는지 모른다. 신기한 나라에 들어온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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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전 바비큐와 불멍을 한다고 추가 결제를 하고 왔는데 막상 장갑을 끼고 토치로 불을 붙이려니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이런 일들은 과거의 나에게 '남자가 하는 일'로 간주되었던 터라 이제 내 손에 들려있는 토치가 어색하기만 했다. 불을 잘 못 붙이면 연기만 풀풀 나는데 내가 딱 그랬다. 살기 위해 사방의 텐트를 돌돌 말아 고정시키는 법을 찾았다. 목과 눈이 매운데 '엄마 힘내!'라고 외치는 아이의 응원을 들으며 불을 안정적으로 피우려고 했다. 이 상황. 싫지가 않다. 배운다는 건 이런 걸까? 평소에 하지 않았던 행동을 할 수 있는 기회는 여행이 주는 선물 같다. 본능적으로 포일을 찾고 본능적으로 고기를 뒤집으며 땀이 주룩주룩 흘리는 30도 넘는 날씨에서 고기를 구웠다. 냄새를 맡고 몰려든 개들에게 일부 고기를 나눠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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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낯선 환경에서 서로의 필요를 적절하게 채우며 2박 3일을 보낼 수 있을까. 실험적인 시간이었다. 혼자서 모든 것을 다 감당하려는 마음은 없어진 지 오래다. 아이도 아이만의 몫으로 나도 내가 하고 싶은 만큼의 몫으로 서로 채워가기로 한다. 바비큐 파티로 땀 샤워를 했는데 아이는 불멍을 하자고 떼를 쓴다. 여름 내내 땀나기가 무서워 에어컨 속으로 더위를 피할 줄만 알았지 이 날씨 속에서 불멍을 할 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불멍은 추운 가을 겨울에나 하는 줄 알았지 땡볕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았다. 마시멜로가 없어도 시간이 잘도 갔다. 타닥타닥 소리와 꺼져 가는 불씨를 살리러 나뭇가지를 주우러 다니는 시간들로 아이와 또 하나의 목표 없는 놀이가 계속되었으니까.


'엄마 산책 가자!' 아이와 마을길을 걸어가는데 호스트 집에 함께 사는 콩떡이 와 구름이가 함께 한다. 콩떡이는 서열 1위 개로 직접 길을 안내하며 진두지휘를 한다. 우리가 조금 늦는 것 같으면 멈춰 서서 우리를 기다리는 는 여유도 있다. 빨간 고추 밭을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구름 색깔이 변한 것을 이야기하다가 구름이랑 콩떡이가 영역 표시 해놓은 곳들을 훑었다. 다른 집 개가 오면 우리 앞에 턱 하니 서서 으르렁대는 모습이 보통 호위무사가 아니었다. 더운데 불쾌하지가 않았다. 관광지가 없는데 모든 것이 마음에 들었고 배움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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