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광고들을 보면, 대체로 연예인을 내세워 이미지 블렌딩을 한다. 놀라웠던 것은,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이 광고한 치킨이나 제품들을 접했을 때, 나도 모르는 사이 그 광고의 의도에 프로그래밍되어, 어떤 특정 브랜드나 물건에 이미지가 입혀지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시각적인 이미지의 효과는 내게 있어 놀라움 그 자체였다. 영어로 하면 ‘Amaze’라고 하는데, 그 감정이 꽤나 선명하게 남아 있다.
내가 대략 일곱 살 즈음이었던 일이다. 씻지도 않은 것 같은 삐쭉삐쭉한 머리에, 투박하고 큰 안경을 쓴 채 갓 태어난 망아지처럼 위태롭게 서 있었던, 딱 봐도 고집 세고 엄마 말 안 들을 것 같은, 그 시절 내 또래로 보이는 꼬마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태권도복을 입은 채, 동네 분식집 앞에서 컵 떡볶이를 먹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이미지 블렌딩을 하고 있었다. 떡볶이는 ‘저런 아이들이나 먹는 음식’이라는 이미지가 내 안에 각인되어버린 것이다.
그 이후로 나는 떡볶이를 거의 입에도 대지 않았다. 이유도 모른 채, 무의식 속에서 거부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러다 성인이 된 후, 여성분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그들의 입맛에 맞추다 보니 조금씩 떡볶이를 먹게 되었다.
놀라웠던 건, 그렇게 함께 나눠 먹은 떡볶이가 정말 맛있었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행복하기까지 했다.
그때부터 나는 떡볶이를 다시 보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다시 먹게 되었다. 참 단순한 인간이었다.
생각해보면, 그때도 나는 떡볶이에 새로운 이미지를 입혔는지도 모른다.
‘떡볶이는 예쁜 여성분들이 먹는 음식’이라는 입력값이 내 전두엽을 거쳐 무의식에 저장된 것 같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것이다. 나는 마침내, 무려 18년 동안 갇혀 있던 떡볶이에 대한 부정적인 느낌과 감정을 놓아주게 되었다는 것.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듯 떡볶이는 그저 떡볶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