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화창한 오후
짱구가 다니는 유치원에 수지라는 여자아이가 전학을 왔다.
5살이라는 어린 나이에도 히메컷을 한 예쁜 얼굴에, 흑곰이라는 경호원까지 대동한, 그야말로 다이아몬드 수저의 끝판왕이었다.
유치원에 발을 들이자마자 모든 아이들의 시선을 휩쓸었다.
아이들은 너도나도 수지 옆에 있고 싶어 했다.
하지만 단 한 사람. 짱구의 친구 유리만은 수지를 못마땅해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질투와 열등감이었다.
예쁘고, 부자고, 인기 많은 수지를 향한 유리의 감정은 조금씩 독처럼 번져갔다.
사소한 말과 행동에도 태클을 걸고, 꼬투리를 잡으며 속으로는 "내가 더 나아!" 하고 외쳤다.
그런데... 그 ‘나은’ 기준은 도대체 어디서 온 걸까? 절대 대중교통을 타고 온 건 아니었을 텐데.
사실 나 역시 유리와 다를 바 없었다.
돌이켜보면 나도 이런 감정들을 수도 없이 느꼈다.
“내가 더 돋보이고 싶어.”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내가 최고가 되고 싶어.“
하지만 그런 감정들의 뿌리는 결국 결핍이었다.
그리고 그 결핍 아래엔 조용히 웅크린 한 감정이 있었는데.
‘사랑받지 못할까 봐.‘
하는 불안, 공포, 두려움. 그걸 감추려고 더 잘나고, 더 대단한 사람이 되려고 애썼다.
사랑받고 싶어서 그랬다.
어떤 작가님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예쁜 옷에 집중한 나머지, 그 안의 상처는 보지 못했다. 그때까진 아픔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 내 몸에 난 상처를 마주하고 나니, 그제야 통증이 찾아왔다.”
나는 울고 있는 내 안의 아이를 내팽개쳐 둔 채 밖에서 뭔가에 몰입하고 있었다.
잘난 척. 인정욕. 비교. 과시.
그게 날 지켜줄 거라 믿었다. 하지만 결국엔 더 외로워졌다.
상처는 부끄러운 게 아니었는데.
호킨스 박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진짜 위대함이란, 두려움을 마주할 수 있는 용기다.”
지금 우리는 그 위대함의 길 위에 서 있는지도 모른다.
마치 ‘위대한 항로’를 항해하는 해적들처럼.
보물은 따로 있지 않았다.
그 여정 자체가, 그리고 자기 자신을 마주하는 용기 그 자체가 보물일지 모른다.
물론 호킨스 박사님은 그걸 듣고 이렇게 말씀하실지도.
“마주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그럼 매일 정박한 배 위에서 파티나 하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