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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호랑이 Feb 09. 2021

6.40대 쓰고 싶은 이야기

5)악몽


  고2 겨울이었다. 유난히 무서웠던 화학 선생님, 그래서 화학시간이면 잔뜩 긴장이 됐다. 선생님이 문제를 하나 내셨고, 주변을 왔다 갔다 하시더니 내 앞에 멈추셨다. 쉬운 문제다. 어제도 풀었던 문제. 그런데 선생님이 앞에 서니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작대기로 나를 찌르며 칠판 앞에서 풀란다. 칠판 앞에서 나는 백지가 되었다.      

  그리고 시작된 매질, 차라리 종아리를 맞았다면, 차라리 손바닥을 맞았더라면. 나는 내팽겨 쳐졌다. 칠판에 머리를 박았고 교탁위로 내동댕이쳐졌다. 너 같은 건 죽어야 한다며 그렇게 칠판으로 교탁위로 내동댕이쳐졌다. 발길질을 당하고, 머리채를 잡고 이리 저리 내동댕이쳐지던 그 시간이 내겐 절망이고 끝이었다. 내 세상은 끝이다.      

   다시 또 불려갔다. 나는 화학 성적이 나쁘지 않았다. 사실 좋은 편이었다. 너 같은 게 이런 성적일 리 없다며 커닝한 사실을 실토하라고 했다. 수많은 선생님이 가득 한 교무실에서, 나를 좋아해 주셨던 선생님들의 외면 속에서 나는 화학 선생님의 모멸을 받아내야 했다.      

  나는 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람이 아니니 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온 몸이 아팠다. 퉁퉁 부었다. 어떤 날은 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 어떤 날은 떼굴떼굴 구르며 배가 아팠다. 어떤 날은 팔 다리가 아파 걸을 수도 없었다. 병명도 없는 통증들, 누군가는 꾀병이라고 했고 누군가는 고3 스트레스라고도 했다.      

  그 때부터였다. 글자들이 섞였다. 멀쩡하다가도 문제를 보면, 시험지를 보면 글자들이 섞여서 보였다. 밤새 한 숨도 자지 못했다. 편두통에 악몽 같은 밤을 보냈다.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머리를 감고, 교복을 입었다. 학교에 간다는 인사를 하고 도시락을 들고 집을 나왔다.

  옥상에서 떨어지든 아니면 육교에서 떨어지든 오늘은 해결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통증과 아픔은, 그리고 잠깐씩 잠 들 때마다 밀려오는 그 날의 악몽은 죽음조차 무섭지 않았다. 아니 사실은 무서웠다. 병원에서도 알 수 없는 병을 나는 알고 있었다. 죽어야 끝나는 병.

  교복치마가 헐렁해져서 두 번을 접어 올려도 흘러내렸다. 그렇지만 우리 가족은 아무도 몰랐다. 말라가고 수척해 가도 그저 다시 예전처럼 아무 문제도 일으키지 않고 별 탈 없던 그 때의 나로 돌아가길 바랐다.      

  나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아무도 모르던 그 때, 가족들은 내 눈도 내 모습도 보지 않았다. 내 등 뒤에서 아픈 말을 쏟아 내거나, 어찌 할 바를 몰라 힘들어 하는 모습들뿐.

  그렇지만 난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 아무 것도 아닌 것일 수도 있고, 한심하게 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 나이의 나에겐 너무나 아팠다.

  지금도 난 악몽을 꾼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힘들었던 이야기를 할 때면, 내가 가르치던 아이 중에 누군가가 우울증으로 힘들어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어김없이 그 날의 그 모습이 악몽으로 다가온다.    

그 사람은 알고 있을까. 그 날 무슨 기분 나쁜 일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사랑의 매가 아니라 화풀이 같았던 그 폭력으로 나이 오십이 다 되도록 악몽을 꾼다는 것을 알까.

  나는 지금도 아이들에게 거절을 못 한다. 혹여 상처를 받을까봐 밤에 카톡이 와도 새벽에 문자가 와도,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내가 거절을 한다면 그게 나비효과가 되어 커다란 상처가 되어 버릴까봐.      

그리고 매번 결심한다. 누군가를 죽고 싶게 만들고 싶진 않겠다고. 아무에게도 상처를 주고 싶지 않다고. 살아가면서 언제나 가슴에 품은 말,

누구에게도 악몽이 되진 않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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