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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호랑이 Feb 22. 2021

7. 47살 파란호랑이

2) 엄마

“엄마, 어릴 적엔 뭐하고 놀았어?”
내 질문에 엄마가 픽하고 웃으셨다.
“나물 캐고 밥 하고, 농사 지며 놀았지.”
“피, 그게 무슨 놀이야?”
하지만 어려웠던 시절 엄마의 추억은, 외할머니와 나물 캐고, 밥하고 농사짓는 일들이다. 일은 고되지만, 외할머니와 같이 라서 참 좋았다고 하셨다. 시집가는 대신 엄마랑 살고 싶으셨다던 엄마는, 고된 시집살이에 외할머니의 임종조차 지키지 못하셨다.
엄마하면 나는 6.25가 떠오른다. 폭격을 피해 뒷산에 숨었던 이야기, 몇날 며칠 굶었던 이야기, 밤에 몰래 식량을 구하려 마을에 내려갔다가 팔에 총을 맞으셨던 외할머니 이야기이다. 마침 의사이셨던 고모부를 만나, 그 상처를 치료했으나 의료장비 등이 없어 그냥 총알을 빼고 천으로 그 구멍 난 팔의 상처를 막았다고 한다. 끝도 없이 들어가던 천 뭉치가 엄마에겐 악몽 같았고, 혹여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실까봐 겁도 나셨다고 한다.
 
10대 시절 전쟁을 겪었던 엄마의 이야기는 그저 재미있고 흥미진진했다. 그래서 박완서님의 전쟁 관련 책들을 읽으면 더 공감도 가고 재미있었다. 그러다 내가 그 또래 10대를 키우면서, 막막함을 느꼈다.
그 공포와 두려움을 아직 애기 같은 나이에 겪었다니, 그리고 그렇게 덤덤하게 말씀하시지만, 10대 시절 무서웠을 엄마의 마음이 느껴졌다. 엄마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 시절 10대의 엄마를 안아주고 싶다.
 
남은 밥 아깝다며 먹는 엄마를, 떨어진 양말 기워 신는 엄마를 매번 궁상맞다 생각했다. 미장원에서 드라이 한 머리에 멋지게 양장을 차려 입고, 굽 있는 구두를 신은 젊은 엄마들을 부러워했다.
하지만 이젠 안다. 툭 툭 터진 엄마의 손마디와 굽은 허리, 억척스런 모습 속엔, 10대의 두려웠고 수줍던 소녀도 20대의 곱던 처녀도 있다는 것을.
그 모든 것 우리에게 내어주고, 햇빛 쐬며 앉아계신, 쪼그만 우리 엄마를 보면 눈물이 난다. 고맙고 또 고맙다. 그리고 자꾸만 작아지셔서 어느 순간 사라지실까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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