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라탑(스프링), 판잣집 테마존, 교각, 벽화
2005년 10월 개통한 청계천은 2023년 9월 기준 누적 방문객인 3억 명을 돌파했고, 일평균 약 4만 5천 명이 다녀가는 핫플레이스 장소다.
청계광장에 있는 조형물 작품 ‘스프링’은 미국의 작가 클레스 올덴버그와 쿠제 반 브레겐이 공동으로 만든 작품이다. 둘은 부부사이다.
‘스프링’은 약 20미터 높이에 파란색과 빨간색이 반반 섞여 멀리서도 눈에 뜨인다. 조형물 재료는 스테인리스 스틸, 알루미늄, 섬유 강화 플라스틱 등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인도양 조개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했다가, 다슬기 모양이라고 번복한 올덴버그 작가의 의도와 달리 소라, 골뱅이, 꽈배기, 용수철 등 보는 사람에 따라 해석이 다르다.
서울시설관리공단 앞에 청계천이 모습을 기억하고자 판잣집 테마존이 설치되었다. 방문객들을 위한 소개 자료와 친절한 안내가 준비되어 있다.
청계천 역사길에는 정조대왕능행반차도라는 그림을 타일로 벽화처럼 설치하였고, 활력길에는 청계천 복원을 기념하는 차원에서 시민들이 직접 참여 타일로 만든 소망의 벽이 있다.
서울이 조선의 수도로 정해지기 전 청계천은 자연상태의 하천이었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서울의 지리적 특성상 상대적으로 지대가 낮은 도성 한가운데로 물길이 모일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조선왕조가 도성 안에 있는 스로를 정비하기 전에 이미 자연스럽게 물길이 형성되어 있었다(자료: 서울시설공단).
세종 이후 개천 정비에 가장 큰 힘을 쏟은 임금은 영조이었다. 영조는 자신이 행한 준천을 은근히 중국 도개 하(夏) 나라 우(禹) 임금의 치수나 수(隨) 나라 양제(煬帝)의 운하정비와 비교하였으며, 탕평(蕩平), 균역(均役)과 함께 자신 80 평생 가장 큰 치적으로 내세울 정도였다(자료: 서울시설공단).
일제강점기 청계천은 여러 가지 면에서 이전과는 다른 변화를 겪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조선 500년 동안 불리어 오던 ‘개천’이라는 이름 대신에 ‘청계천’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청계천이라고 부리기 시작한 때는 정확하지 않지만, 1914년 일제에 의하여 조선의 하천명칭들이 정리될 때 개정된 것으로 추측된다. 당시 신문을 살펴보면 1916년경부터는 ‘개천’이라는 말은 거의 등장하지 않고, 대신 ‘청계천’이라는 이름이 등장하고 있다(자료: 서울시설공단).
1930년대 이후 일본은 청계천 정비를 위하여 여러 가지 계획을 발표하였으나 재원부족으로 실현되지 못하였다. 오히려 일본은 중일전쟁, 태평양전쟁 등에 모든 물자와 인력을 쏟아부었기 때문에 청계천 준설을 비롯한 서울의 도시정비사업은 거의 방치되었다(자료: 서울시설공단).
청계천은 도성 주변의 산과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들이 모여 도성 한가운데를 동으로 가로질러 흐르는 도심하천이었다. 조선시대에는 ‘개천(開川)’이라 불렀는데, 이것은 ‘내를 파내다’라는 뜻으로 청계천이 자연하천이 아니라 생활의 필요에 의하며 어느 정도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인공하천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자료: 서울시설공단).
조선시대 광통교를 중심으로 한 청계천 주변과 정릉동(지금의 중구 정동), 육조거리(지금의 세종로) 앞에는 책사(冊肆), 서화사(書畫肆) 등 서적과 그림을 판매하는 가게들이 즐비하였다(자료: 서울시설공단).
역사적으로 청계천이 가지는 가장 중요한 의미 중에 하나는 도심 속의 생활하수도였다는 점이다. 조선왕조 초기 청계천의 성격을 두고 풍수학상의 명당수(明堂水)이냐, 아니면 생활하천이냐 하는 논란이 있었지만, 도심 한가운데를 흐르는 청계천은 이미 태생적으로 생활하천일 수밖에 없었다(자료: 서울시설공단).
상업활동의 중심지로서, 유흥가로서 청계천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을 한 마디로 말한다면 왈짜(曰子) 들이었다. 장통교, 수표교 어름은 중촌(中村)이라고 하여 중인(中人)들이 거주하였다. 조선시대 중인이란 경아전(京衙前), 역관(譯官), 의관(醫官), 천문학관(天文學官), 화원(畫員), 사자관(寫字官) 등 기술직 관료들로 요즈음으로 말하면 외교관, 의사, 천문학자, 화가 등 전문직업인이었다(자료: 서울시설공단).
소라탑(겨울 풍경)
소라탑(여름 풍경)
소라탑(저녁 풍경)
소라탑(한낮 풍경)
소라탑(청계천 진입로 풍경)
3번째 교각 모습
두 번째와 세 번째 교각 모습
첫 번째와 두 번째 교각 모습(저녁 풍경)
판잣집 테마존(청계천에서 올려다본 뒷모습)
판잣집 테마존(눈 내리는 날, 청계천에서 본 우측 모습)
판잣집 테마존(지방부 도로에서 바라본 저녁 풍경)
청혼의 벽
정조대왕능행반차도
시민들의 손으로 만든 소망의 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