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렐레 Feb 26. 2024

가성비 있게 혼자 노는 방법

40대 여자4람, 혼자 4는 이야기

내 인생 최고의 기치는 가성비인데 어렸을 때부터 없이 살아서 그런가 절약이 몸에 배어있다.

남자친구는 이런 나를 알뜰유(내 성이 유 씨다)라고 부른다. 모든 걸 아끼는데 맥주 먹는 것만 안 아낀다고 하기도 하고.(사실이다)


무슨 일을 하든 가성비를 운운하다 보니 한번뿐인 인생을 가성비 있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도 생각해 봤는데 나의 결론은 "물건보다는 경험을 사자"는 것이다. 물론 물건도 사고 경험도 살 수 있다면 좋겠지만 사고싶은 걸 다 살 순 없으니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 경우 사고 싶은 물건을 샀을 때의 만족감보다 체험을 하거나 배우는 행위를 했을 때의 성취감이 10배는 길게 간다. 투자비용 대비 행복지속시간을 따져봤을 때 가성비가 더 좋은 셈이다. 

같은 맥락으로 여행을 좋아하는데, 여행은 가기 전 설렘, 여행지에서 낯선 것들을 접하는 순간들, 여행 후 추억을 나누는 시간들까지 두고두고 곱씹으며 행복해질 수 있으니 그야말로 인생의 갓성비이 셈이다. 

지 버릇 개 못준다고 여행 가서도 열심히 걸어 다니고 아껴서 다니는 스타일이라 고생스럽기도 하지만 지나고 나면 힘들었던 기억들조차 좋은 추억들로 자체 포장되니 역시 여행이 남는 장사다.




지난여름 우연히 여행에세이를 쓰는 모임에 들어갔었다. 내 여행기를 책으로 엮어준다니 너무 매력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직장인이 한 달 안에 책 한 권 만들어낼 분량의 글을 쓴다는 건 정말 힘든 일이었다.

20년간 배낭여행을 다니면서 기억남는 일들을 주제로 정하고 옛날 일기장을 들춰가며 틈틈이 글을 썼지만 읽을 때마다 수정하고 싶은 부분들이 계속 생기다 보니 시간이 부족했다.(그래서 나중엔 일부러 안 읽기도 했다) 


디카도 없어서 필름 카메라를 들고 간 2002년 유럽배낭여행을 시작으로 인도, 동유럽, 동남아, 남미 등 참 많이도 다녔더라. 이번에 처음 세어봤는데 지금까지 방문한 나라는 40개국이었다. 


2002년 첫여행. 교복같던 Be the Reds 티를 입고 파리에.



인도에서 매일 사기당하는 게 짜증 나서 중간에 한국 오려고 웨이팅 티켓을 끊은 일, 인도에서 버스가 전복 됐던 일, 라오스에서 산사태가 나서 버스가 산골 한복판에 내려놓고 가버린 일 등 기억나는 내용들을 엮어놓고 보니 대부분 고생한 것들이라서 책 제목을 "어느 X세대의 여행산문집 _ 사서고생기"로 정했다. 막상 책이 나오니 여기저기 선물하느라 책값이 많이 들어서 "가성비"를 추구하는 내 인생에 맞지 않긴 하지만 "재밌다고 2탄 내놓으라"는 카톡을 받을 때면 세상 이렇게 기쁠 수가 없다. 


  



※ 말 나온 김에 한번 읽어봐 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 (갑자기 존대 ㅋ)

책 구매 링크는 아래에..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2154943



그래도 하나의 목표를 위해 5시에 일어나고 주말에도 약속 안 잡고 가만히 카페에 앉아 책을 쓰며 보낸 순간들이 참 좋았다. 머릿속에 있던 장면 장면들이 마구 엉켜있다가 정리되면서 하나의 스토리로 만들어진다. 그 과정에서 공간이라는 것이 생기고 상쾌한 공기가 들어오는 느낌. 청소 같았다. 


글쓰기를 할수록 잘하고 싶다는 욕망이 샘솟아서 글 쓰는 방법에 대한 책도 많이 보고 유튜브 강의도 들어봤는데 구체적인 방법보다는 공통적으로 나오는 내용이 시간을 정해놓고 꾸준히 쓰라는 것이었다. 강제성이 있어야 쓸 것 같아서브런치 스토리를 가입했고 연재 방식을 선택했다. 10회의 연재 중에 하루 늦게 올라간 적이 한번 있긴 했지만 그래도 매주 월요일이라는 연재 시간을 지키려고 애쓰는 중이다. 미리미리 하면 좋겠지만 지금 이 글도 일요일에 쓰고 있는데 친절하게도 내일이 연재날이라고 알람이 떴다. 누가 뭐라고 하는 것도 아닌데 내일까지 올려야 한다는 생각에 벌떡 일어나 책상 앞에 앉게 된다. 





난 "이 세상에 나쁜 경험은 없다"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나쁜 경험이었어도 쓸모없는 노력들이었어도 언젠간 도움이 될 순간이 온다고 믿는다. 하물며 "내가 해봐서 아는데 이런 거 하지 마."라고 다른 사람들에게 정보라도 줄 수 있지 않나?


우연히 가입한 모임에서 책을 만들게 되고 그것이 글쓰기의 재미를 알게 해 주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내가 한 경험들이 내 인생이 된다. 갓생을 살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도전하고 경험하자. 그리고 내가 생각할 때 글쓰기는 돈 안들이면서도 내 과거를 정리하고 현재를 기록하고 미래를 계획할 수 있는 가성비 최고의 혼자 노는 방법이다.  

이전 09화 귀찮고 어렵지만 AI랑 놀아보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