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딩보다 못 그리는 그림일기
울진 금강소나무숲길로 가는 길이었다.
금강소나무숲길은 산림 보호를 위해 미리 예약 하고 해설사와 함께 이동해야하는 곳이라 정해진 시각인 9시 40분 까지 도착해야 했다.
전날 우리가 묵은 숙소에서 1시간 정도 가야하는 길이었기에 7시에 일어나서 씻고 전날 대게 사다 먹고 남은 게 아까워서 게살 볶음밥해서 아침으로 먹고 설거지하고 분리수거하고 짐싸고 8시 반에 체크아웃을 했다.
어제 여행왔다고 과음을 하기도 했고 아침엔 정신이 하나도 없어서 화장실 갈 시간 조차 없었기에 배에서 싸르르르 신호가 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국도 길이라 화장실은 보이지 않았고 제시간에 맞춰서 가려면 지체할수 없었기에 초인적인 힘으로 참았다. 어서 도착하기만을 바라며.
야속하게도 금강소나무 숲길은 '깊은 산속 옹달샘'에 있는 건지 꼬불탕꼬불탕한 길을 가도가도 끝도 없었다. 길을 제대로 가고 있는게 맞나 싶을 정도로 차는 보이지 않았고 거기다 비까지 내리기 시작해서 가뜩이나 키높은 나무로 가려진 하늘이 더욱 어두컴컴 해지며 무섭기 까지 했다. 남친이 옆에 앉아 있었지만 여인의 자존감이고 뭐고 차 세우고 길바닥에서 해결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며 식은 땀이 날 즈음 9시 37분에 갑자기 탁트인 공간이 나타나며 목적지에 도착했다. 난 그즉시 차를 버리고 화장실로 뛰었다.
우르르르 쾅쾅쾅. 휴..
세상이 아름다워보인다. 다행히 비도 그쳐서 무사히 2시간 산행을 마치고 내려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나무들이 만들어 주는 울창한 터널을 감탄하면서 지나갔다.
온통 초록으로 덮인 공간 사이로 문득문득 보여주는 파란 하늘
나무 사이 들어오는 햇빛으로 반짝이는 나뭇잎들
옆에서 흐르는 계곡물 소리
너무 상쾌하다.
아침에 올때 음침하고 어두웠던 그길이랑 다른길로 오는 건가 싶어서 네비를 확인했지만 외길이었다.
'진짜 어쩜 이렇게 다르게 느껴질수 있지? 진짜 신기하다.'
상황과 기분에 따라 이렇게까지 차이가 날 수 있다는 걸 실감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