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포아빠 전교 1등 아들 만들기
친구! ~ 가슴 설레고 아름다운 단어 아닌가? 나는 인생을 살며 얼마나 많은 좋은 친구를 만나봤고 지금 만나고 있을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친구가 필요하고 친구와 어울리며 한평생을 살다 가는 그런 동물임에는 틀림없을듯하다. 어떤 아이는 친구가 많고 어떤 아이는 친구가 별로 없다. 왜 그럴까? 나는 친구가 많은 아이는 아니었다. 인기가 많은 아이도 아니었고 활달한 성격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눈에 띄는 아이도 아니었다. 그래도 나는 많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소수에 친구들이 항상 있었다. 극히 평범한 삶을 살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부모와 자식의 유대관계가 원만하지 않던 나는 왜 그리 친구들과 있으면 재미가 있었는지 모른다. 뭔가 관심받고 싶고 얘기하고 싶고 누군가 같이 있고 싶은 마음을 친구에게 보상을 받으려 했던 거 같다. 여러 친구들과 보내던 시간들은 즐거웠고 나의 인생을 통틀어 그들과 보낸 시간들이 나의 가치관이나 지금의 내 모습에 상당히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거다 확신한다. 하지만 나는 뭔가 안타깝다. 그 많던 친구들은 다 어디에 있을까? 세월이 흘러 내가 만났던 그 좋아하던 친구들을 지금은 찾을 수도 없는 녀석들이 많다. 과연 그렇다면 선택과 집중, 박리다매식의 문어발 확장이 아닌 소수에 제대로 된 친구를 찾으려 노력을 했어야 하는지? 부모로부터 받지 못한 사랑과 관심을 친구에게 충족시키려 하였던 나의 모습들이 아쉽기만 하다. 아들도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니며 여러 친구들을 만나고 사이가 틀어져 멀어지고 또 새로운 친구를 만나기를 반복을 한다. 하지만 아들은 친구를 원하지만 집착을 하진 않는다. 아들도 친구들 과의 사이에서 갈등도 하고 고민도 하며 보내는 모습을 관찰하지만 나처럼 친구에 대한 강한 집착을 보이진 않는다. 왜 그럴까? 생각해 보면 나의 부모와 아들의 부모에 차이를 보면 알 수가 있다. 일단 아들은 부모와의 유대가 끈끈하다. 항상 자신에게 관심과 응원을 아끼지 않는 부모 밑에서 친구들 사이에서 느끼는 소외된 감정들과 우울함, 인기 많은 친구들의 부러움 등을 다는 아니겠지만 어느 정도 상쇄시킬 수 있는 버팀목을 주진 않았을까? 그래서 엄마의 갱년기가 중2의 사춘기를 만나면 줄행랑을 친다는 얘기처럼 그 힘들다던 사춘기를 버틸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반평생을 살아온 나 같은 사람들은 안다. 인생을 살며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은 친구들이 내 옆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그렇다고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저 친구는 나이 70에도 만날 수 있겠네, 저 친구는 40쯤에 날 배신하고 떠나게 되겠네를 구분 지어서 친구를 만나겠는가? 그건 각자 그 순간 선택의 문제고 내가 말하고 싶은 요지는 부모와 자식이 사이가 좋으면 좋을수록 아이는 친구에 집착을 안 한다고 생각된다. 집착을 안 한다는 거는 친구가 나에게 상처를 주었을 때 버틸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다는 말로 설명하고자 한다. 부모 때문에 인생을 망치는 사람도 있고 친구 때문에 인생을 망치는 사람들도 있다. 학교 선생님 직장동료 군대 선임, 다양한 사람들로 인해 영향을 받고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뿌리까지 썩어 문드러지게 고통받는 사람들이 존재를 한다. 나 또한 초등학교 시절 왕따 경험을 겪고 스스로 힘들었던 기억이 있는 아빠다. 어디 가서 명함을 내밀 정도에 큰 고통은 아니었기에, 여기서 세세히 밝히고 싶지는 않지만 그래도 나름 힘들었고 스스로 이겨낸 나 자신이 대견하다고 생각은 하기에, 그렇기 때문에 나는 아들에게 조금에 관심과 사랑으로 그의 아픔을 보듬어 주는 어른이 되려고 노력을 했다.
친구는 소중하고 멋진 존재다.
부모에 관심과 사랑이 그들을 능가한다면 아이는 조금 덜 친구에 대해 고민해 보고 조금 덜 상처받는 아이로 자라리라 믿는다.
가족도 원수가 되는 마당에 친구는 두말하면 잔소리다.
그래도 진정한 친구는 어딘가에 분명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