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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연두 Mar 01. 2024

[도서리뷰] 장소, 그 곳

[ 2024.03.01] 조해진 단순한 진심/줌파라히리 내가있는곳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작은 전시회'의 아이디어는 조해진의 장편소설 "단순한 진심"과 줌파라히리의 "내가 있는 곳"에서 비롯 되었다.



1. 조해진 장편소설, 단순한 진심



조해진 작가는 1976년 서울 출생으로, 2004년 "문예중앙" 신인 문학상으로 등단했다. 소설집 "천사들의 도시", "목요일에 만나요", "빛의 호위", 장편소설 "한없이 멋진 꿈에", "로기완을 만났다", "아무도 보지 못한 숲", "여름을 지나가다."등이 있다. 신동엽 문학상, 이효성 문학상, 김용익소설문학상, 백신애 문학상, 형평문학상을 수상했다.


이 소설의 제목 '단순한 진심'은 제10회 여성인권영화제의 표제에서 가져 왔다. 작가가 작품을 쓰면서는 "백만명의 살아있는 유령들- 구조적 폭력, 사회적 죽음 그리고 한국의 해외입양(<<여/성이론>>2010 여름호)을 수없이 봤다고 전한다. 또한 김동령 감독과 박경태 감독이 공동으로 연출한 다큐멘터리 영화 "거미의 땅"과 우니 르콩트 감독의 자전적인 영화 "여행자"에도 영향 받았다고 말한다. 입양이라는 제도를 둘러싼 문제들을 고민하고 기지촌의 역사를 되짚는 기록물과 기사, 논문들을 참고했다. 이 소설은 작가의 세 번째 소설집이었던 "빛의 호위"에 실린 단편 <문주>에서 시작되었다. 


주인공 나나가 병원에서 헤어진 남자친구 사이에서 생겨난 아이를 임신했다는 사실로 시작한다. 아이의 이름은 "우주(woo-joo)" 다.  우주가 내게 찾아왔다는 걸 알게 된 그날, 서영이라는 한국인 여성에게 또 한 통의 이메일이 도착해 있었다. 그녀가 보낸 첫 이메일에는 영화를 전공할 때부터 친구들과 수차례 독립 영화를 제작해 온 스물아홉 살의 여성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뒤, 프랑스로 입양된 한국계이면서 연극 배우이자 극작가로 활동하는 나를 주인공으로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화를 구상 중에 있다는 것이다.


 나나가 프랑스로 입양되기 전까지 한국에서 머물렀던 공간들과 그곳에서 접촉했던 사람들을 찾아 다니다가 최종적으로는 나나의 오래 전 이름인 '문주'의 의미를 알아내는 과정 자체를 영화로 그리고 싶다고 말이다. 나나는 서영의 두 번째 이메일에서 "이름"이 우리의 정체성이랄지 존재감이 거주하는 집이라고 선택한 단어에 마음이 갔다. 서영의 영화를 통해서 자신을 철로에서 구해준 기관사나 그의 어머니를 찾게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그 기대감이 "문주"의 의미를 알게 되어 나의 기원이 확실해질 수 있는 가능성으로 나나는 한국행 비행기로 타기로 결심했다. 


시인 '김현'은 진심이라는 말처럼 매우 흔하나 그 실체를 알 리 없는 말도 없다고 한다. 조해진은 진심이라는 관념의 공간을 느리게 거닐면서 그 지명에 담긴 의미를 구체적으로 밝힌다. 우리 모두의 이름은 언젠가 한 존재가 타인을 위해 진심을 담아 건넨 최초의 말이라는 것을 이름을 부르는 것은 인간이 타인을 껴안는 첫 번째 방법이라고 말한다. 


 이 소설에서 감독인 서영이  "이름"이 우리의 정체성이랄지 존재감이 거주하는 집이라고 이야기 하듯이 이름과 지명에 담긴 의미와 역사를 많이 담고 있다.


가령, 서영'이란 이름이 "새벽의 수정"이며 '소율'이란 이름이 "작은 밤나무를 닮은 사람"이라는 것,  "문주"라는 이름이 문 기둥 외에 '먼지'라는 의미도 있고,  복희란 이름이 모두 복이 있다는 뜻, 럭키한 사람이라는 뜻이며, 문경은 '햇살의 무늬', 휘경인 남동생은 '빛나는 햇살'이라고. 추연희는 그리워할 수 있어서 행복했던 사람, 문주가 "우주의 무늬"라는 것 까지.   


  영화에 등장하는 장소의 이름도 다음과 같은 의미가 있음을 알려준다. 

용산은 땅의 모양이 용을 닮아서 용산이고, 이태원은 첫째, 역원이 큰 배 밭이 있어서 이태원이라는 것, 둘째 조선이 전쟁을 겪을 때 마다 겁탈 당한 여자들이 이 동네에서 아이를 낳고 모여 살았는데 사람들이 그들을 이타인으로 불렀고 그 이타인에서 이태원이 유래됐다는 것이다. 

합정에는 조개가 유독 많이 서식하던 큰 우물이 있었는데 조개를 의미하는 '합'이 식민지 시대를 거쳐 비교적 쉬운 한자인 합으로 바뀌면서 지금의 합정이 된 거라고 했다. 한 가지 특이한 건 천주교 신자를 처형하는 칼을 갈고 씻기 위해 인위적으로 판 우물이었다는 점이다.

아현은 최근에 고급 아파트촌으로 재개발된 곳이다. 오래전 애고개로 불렸다가 지명이 한자화되면서 비슷한 발음인 아현으로 바뀐 경우라고 한다. 조선에서는 시체가 생기면 무조건 사대문 밖으로 내보냈는데 애고개, 그러니까 아현은 주로 아이들을 묻었던 매립지라고 설명되어 있다. (나나는 아현, 애기 무덤이 즐비했던 곳에서 1년 동안 '문주'로 살아왔다.)  강원도 영월은 '편하게 넘다'는 뜻으로 높은 산과 물살이 센 강이 많다에서 유래됐다.


이렇게 소설 속 영화는 청량리역 철로에서 시작해서 이태원과 인천, 아현과 합정과, 영월을 지나 인천공항에서 끝나는 정문주였고, 박에스더였으며 나나이기도 한 주인공을 비롯해서 젬마 수녀, 정문경과 박수자 그리고 백복희가 출연한다.  해외 입양(인)의 문제와 '노파'로 알 수 있는 기지촌이라는 소외,배제된 역사를 우리 앞에 "이름"을 통해 정체성을 찾아가는 나나를 비롯한 여성들의 이야기로 들려준다. 조해진 작가가 '포옹은 누군가를 안으며 동시에 나를 안는 것'이라고 말하듯이, 우리의 단순한 진심이 누군가에게 암흑에서 밝은 빛이 되어 주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2. 줌파 라히리(이승수 옮김)  " 내가 있는 곳"


줌파 라히리는 1967년 영국 런던의 벵골 출신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곧 미국으로 이민하여 로드아일랜드에서 성장했다. 인도계 미국인이다. 바너드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보스턴대학교 문예창작과 대학원에서 재학하면서 단편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같은 대학에서 르네상스 문화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내가 있는 곳"은 줌파 라히리가 산문집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와 "책이 입은 옷"에 이어 이탈리아어로 쓴 첫 번째 소설이다. 


작가는 "장소를 옮길 때마다 나는 너무나 큰 슬픔을 느낀다. 이동 자체가 날 흔든다"라는 이탈로 스베보의 말로 소설을 시작한다. 주인공은 사십대 초반, 어느 한적한 바닷가 도시에 사는 여인으로 미혼 교수로서 다른 사람들과 관계 맺기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다. 

소설은 46개의 짧은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 아래의 장소를 참조)


보도에서/ 길에서/ 사무실에서/ 식당에서/ 봄에/ 광장에서/ 대기실에서/ 서점에서/ 마음속에서/ 박물관에서/

심리상담사의 집에서/ 발코니에서/ 수영장에서/ 길에서/ 뷰티숍에서/ 호텔에서/ 매표소에서/ 햇살 좋은 날에/

나의 집에서 / 나의 집에서 / 8월에/ 계산대에서 / 마음속에서/ 저녁 식사에서/ 휴가지에서/ 슈퍼마켓에서/

바다에서/ 카페에서/ 빌라에서/ 시골에서/침대에서/전화통화에서/그늘에서/겨울에/문구점에서/새벽에/

마음속에서/그의집에서/카페에서/잠에서 깨어/ 엄마의 집에서/ 역에서/ 거울에서/ 묘소에서/ 산책 길에서/

아무데서도/ 기차에서 


"내가 있는 곳"은 지리적,물리적 공간일 뿐 아니라 내면의 공간이다. 저자는 "내가 어디에 있는가?"를 끊임없이 생각하고 묻는다. 아버지와 어머니와의 관계에서도, 친구 관계, 이성 관계에서도 결핍과 불안을 느낀다. 


삶이 계속 변화하듯 존재의 자리도 계속 변한다. 우리의 삶과 존재는 변화하는 불안한 것이기에 이동 자체가 우리를 흔든다.  (옮긴이, 이승수)

모어에서 외국어로, 집에서 길로, 길에서 다시 마음으로 돌아오는 여행의 이야기  (소설가 최은영)


줌파 라히리가 외국어로 쓴 첫 번째 소설 "내가 있는 곳"은 전체적으로 읽었을 때 에세이 같은 소설이란 느낌이 들었다. 그의 '이동의 기억'을 따라 다니다 보면, 우리 삶의 작은 순간들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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