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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HAS May 11. 2023

고백


▷▷▷


열대야가 기승을 부리는 칠월 한 여름이 되면서 사무실에서는 하루 종일 에어컨이 작동 되고 있고 추위에 약한 산하는 트웨이드 재킷을 어깨에 걸치고 노트북에 시선을 고정한 채 디자인 팀 지안 대리와 수정할 부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중이다. 


산하와 지안은 모레 있을 프레젠테이션을 위해 함께 추가 근무 중이었다.  


"지안 대리님 수정 파일은 내일 오전까지면 가능하겠죠?"

"내일 오전까지면 완성될 거예요. 완성되면 메일 보내고 바로 문자 할게요"

"출근해서 저는 대본 만들어 놓을게요. 내일 오후에 기획팀원들 앞에서 시연해야 돼요"

"문제없게 잘 준비할게요. 저는 프레젠테이션 준비하느라 일주일 빡세게 야근한게 다지만 서 대리님은 출장 이후로 매일 야근하면서 고생 많이 하셨어요”

 "네"


산하가 지친 머리를 테이블 위에 살포시 내려놓으며 피곤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프레젠테이션 끝나고 나면 다음 주에 연차 내고 하루 쉬세요. 요새 아들도 자주 못 본다면서요"

"그러게요, 아들한테도 미안하고 엄마한테도 미안하고 그러네요..."


엄마라는 단어에는 양가 어머니가 모두 포함된 말이었다. 

프로젝트가 일차 마무리 단계에 들어선 근래에는 주말을 제외하고 두 사람도 평일에는 얼굴 보는 시간이 드물었다. 찬영이 저를 대신해 주중에는 일찍 퇴근해 아이들을 챙겨 주었기에 자신이 조금 덜 불편한 마음으로 일을 할 수 있었다. 

그는 주말에도 혼자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저녁이 돼서야 집으로 와 자신이 체력적으로 힘들지 않게 최대한 배려해 주었다.


"서 대리님 얼른 가방 챙겨요. 우리 빨리 회사를 벗어나요"


지안은 산하에게 퇴근 준비를 종용을 하고는 디자인 팀으로 달려갔다. 

산하는 서둘러 회의 테이블과 책상을 정리하고 지안과 함께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일층에서부터 올라오던 엘리베이터는 십 삼층에서 멈추었고 문이 열리자 정시 퇴근을 했던 찬영이 보였다.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는 산하와 인사를 건네는 지안을 본 그는 열림 버튼을누르고 두 사람이 엘리베이터에 오르기를 기다렸다. 


"이제 퇴근하나 봐요. 얼른 타세요"


두 사람이 엘리베이터 오르자 열림 버튼에서 손을 뗀 찬영은 제 앞에 서 있는 산하 손을 살며시 잡았다.


"상무님께서도 오늘 야근하셨나 봐요?"


늦은 시간에 엘리베이터 있는 찬영을 본 지안이 물었다.


"일찍 퇴근 했다가 야근하고 있는 애인 데리러 왔습니다"


숨김없이 있는 그대로 답하는 찬영 때문에 지안은 짧은 탄식을 내뱉었고 그 말을 듣고 있던 산하는 말없이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일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지안은 서둘러 먼저 내리고 찬영은 산하와 함께 내렸다. 


"강지안 대리님은 집이 어디입니까?"

"네?"


지안이 다시 반문을 하자 찬영이 다시 물었다. 


"강지안 대리님 집이 어디입니까?"

"아, 저는 마포예요"


찬영은 근처에 있던 경비책임자에게 택시를 불러 지안을 태워 보내 주라는 당부를 하고 택시비도 건네주었다. 


"택시 부르라고 했으니까 그거 오면 타고 가요"

"감사합니다"


지안은 찬영과 산하에게 인사를 건네고 경비 책임자를 따라갔다.

찬영은 산하와 손을 잡은 채 정문 주차장에 있는 제 차로 향했다. 

두 사람이 모두 차에 오르자 산하가 찬영을 바라보았다. 


"집에서 아이들까지 보느라 피곤할 텐데 뭐 하러 다시 왔어요?"

"요즘 얼굴 보기가 너무 힘들어서 얼굴 좀 보려고요"


주차장 입구에서 잠시 대기하고 있던 그는 택시가 도착해 지안이 출발하는 것을 확인 한 후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요새 많이 힘든 가 봐요 얼굴 살이 좀 빠진 거 같아요"  

"안 힘들다고 하면 거짓말인 거 티 나겠죠? 엘리베이터 기다릴 때까지도 피곤해서 쓰러질 거 같았는데 찬영 씨 얼굴을 보니까 괜찮아진 거 같아요" 


피곤한 얼굴이지만 밝은 표정으로 말하자 그의 입 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에어컨 바람 싫을 거 같아서 창문 열었는데 괜찮아요?"

"네, 하루 종일 에어컨 바람을 쐬었더니 더워도 바깥공기가 좋아요"

"오늘 데리러 온 보람이 있어서 다행이에요. 가는 동안 눈 좀 붙여요"

"잠들면 못 일어날 거 같기도 하고 찬영씨 얼굴 보는 것도 오랜만이니까 그냥 가려구요"


올라가져 있는 입 꼬리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계속 올려지면서 찬영 얼굴에는 미소가 지워지지가 않았다. 

밤 열 시가 넘은 시간이어서 그런지 두 사람 탄 차는 신호에도 걸리지 않고 도로를 막힘 없이 달리고 있었다. 


"준서 부모님 댁에서 자고 있어요"

"요즘 찬영씨 부모님 댁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서 두 분께 죄송해요"

"아버지 친구분이 고기를 보냈나 봐요. 아이들 먹이고 싶다고 부르신 거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산하가 작게 한숨을 쉬니 찬영이 그녀의 손을 잡고 손등에 입맞춤을 해주었다. 이야기하는 동안 찬영 차는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도착했다. 오랜만에 얼굴을 보게 된 두 사람은 함께 자기로 하고 집으로 향했다. 


찬영 손에는 오늘도 슈츠 케이스가 들려 있었다. 

산하가 씻는 동안 찬영은 들고 온 슈츠를 드레스 룸에 걸어 두고, 집안 문단속까지 마치고는 와인 한 잔을 따라 안방으로 가 침대 옆 테이블 위에 올려 놓았다. 

핸드폰을 보고 있었던 찬영은 샤워를 마친 산하가 욕실에서 나오자 덮고 있던 이불을 옆으로 걷어내고는 그녀가 앉을 수 있게 자리를 만들어 주고는 와인이 든 잔을 건넸다.


"피곤하니까 한잔 마시고 푹 자요"


잔을 건네 받은 산하는  천천히  한숨에 마시고는 빈 잔을 건넸다.


"한잔 더 할래요?"

"아니요. 오랜만에 마시니까 술 기운이 도는 거 같아요"


찬영은 머리를 끄덕이고는 빈 잔을 테이블에 올려 놓고 산하와 함께 누워 품에 안고는 에어컨 바람에 춥지 않도록 이불을 덮어 주었다.


"자다 더우면 팔이나 다리 쪽 이불만 걷어요. 에어컨 틀어서 이불 안 덮으면 추울 거예요"


고개를 끄덕인 산하는 제 얼굴을 그의 목덜미에 비비적대면서 긴 호흡을 내뱉고 눈을 감았다. 


"찬영 씨가 옆에 있어서 너무 좋아요. 나 대신 준서 많이 아껴주고 잘해 줘서 고마워요"


낮고 조용한 목소리로 속삭이듯 고백을 한 그녀는 술 때문인지 몸이 피곤한 탓인지 야심한 밤중에 제 품에 안겨 사랑스러운 고백을 하고는 바로 잠이 들었다. 잠든 그녀를 바라보는 찬영 얼굴은 자연스럽게 미소가 흘렀고 그녀 이마에 짧은 입맞춤을 했다. 


첫날밤을 보낸 후 다행스럽게도 특별한 일은 생기지 않았다. 

평일에는 함께 밤을 보내는 날이 거의 없었지만 주말에는 진서, 준서와 함께 산하 집에서 저녁을 같이 먹고 함께 잠도 자지만 잦은 야근으로 몸이 힘든 그녀를 위해  스킨십을 하더라도 많은 체력을 필요로 하는 잠자리를 갖지는 않고 있었다


▷▷▷ 


출근하는 산하를 지하철역에 내려 준 찬영은 조찬 모임으로 일찍 출근하신 아버지 대신해 준서를 유치원에 등교 시킨 후 출근했다. 준서가 찬영 부모님 집에서 자는 날이면 아버지께서 유치원 등교를 시키시지만 가끔 모임 같은 일이 있으면 찬영이 등교를 시켰다. 


기획팀 미팅 룸에서 산하는 지안과 함께 발표자료 최종 파일을 확인하면서 작성한 오전에 제가 작성한 대본과 맞춰보고 있었다. 프레젠테이션 화면을 보면서 발표를 듣는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간결한 메시지가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고심하고 고심해서 단어를 선정했다.


두 시간 만에 최종 대본을 완성한 산하는 지안과 함께 발표 연습을 마친 후 오후 업무가 시작되면서 김지은 실장과 팀원들을 미팅 룸으로 불러 발표 시연을 진행했다. 

산하와 지안이 함께 발표를 해야 하는 만큼 중간에 발표자가 바뀌게 되더라도 이질감 느껴지지 않도록 목소리 톤이나 말하는 속도 등을 최대한 비슷하게 맞추었다.  

발표 시연이 끝난 후 지은은 수정이 필요 없다는 말로 칭찬을 대신했다. 


"준비하느라고 고생 많이 했네. 빽 데이터가 풍성한 게 출장 가서 발 품 판 효과가 있네"

"실장님께서 좋게 봐 주신 거예요. 내일 발표에 실장님도 참석 하시는 거죠?"


내일 프레젠테이션에 참석하는 인원이 얼마나 되는지 궁금한 산하가 물었다. 


"팀장 이상은 모두 참석하라는 대표님 지시가 있었대. 대표님도 참석할 거라는 얘기도 있던데"

"생각보다 규모가 크네요. 저희는 관련 팀장님들이랑 상무님 정도 참석하신다고 생각했는데"


예상보다 많은 인원이 참석한다는 말에 지안이 놀랐다.


"윤찬영 상무 총괄로 처음 진행하는 발표니까 얼마나 잘 준비했나 다들 궁금하겠지"

"일 차 프레젠테이션인데 대표님까지 오신다고 하니 부담스러워지네요"


김지은 실장이 웃으며 산하 어깨를 살짝 두드려 주고는 오늘 자신들에게 보여준 그대로만 하면 된다는 말을 해주었다. 팀원들과 산하, 지안은 미팅 룸을 정리하고 자리로 돌아가 각자 업무를 처리했다. 


내일 있을 프레젠테이션 준비를 마친 산하는 최종 파일을 김지은 실장과 김선호 차장 메일로 발송을 하고는 리뉴얼 상품 진행 현황을 체크하기 위해 지석과 함께 업체로 외근을 나갔다. 리뉴얼 상품을 맡게 된 업체는 두 군데로 각각 세 개의 디자인을 나누어 진행을 하고 있었다. 


가을 신상품 출시 일정에 맞추어 판매를 시작하기 위해 늦게 시작된 만큼 생산을 서둘러 진행해야 했기에 소재도 산하가 직접 찾아 연결해 주었고 진행 현황도 일주일에 두 번씩 꼭 현장 직접 찾아 확인하고 있었다. 

본사와 오랫동안 합을 마쳐 온 업체이기에 문제없이 잘 진행이 되었고 무엇보다 담당자인 산하가 자주 찾아와 많이 도와주는 것이 고마워 업체 사장님들이 적극적으로 작업을 해 주고 계셨다. 


김지석 대리와 업체 방문을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와 오랜만에 정시 퇴근 준비를 하던 산하는 찬영과 지하 주차장에서 만나기로 하고 팀원들과 함께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김선호 차장에게 내일 진행 될 프레젠테이션 최종 파일을 전달받은 찬영은 파일을 살펴 보면서 만족한 웃음을 지었다. 두 달이라는 기간 동안 중요한 프로젝트를 이끌어 가는 담당자로서 회의 때 나왔던 중요한 사항들을 소홀히 다루지 않고 방대한 내용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잘 정리했다. 

해외 출장에서 찾아 낸 다양한 자료들을 빽 데이터로 활용해 발표 할 내용이 다소 길었지만 볼거리가 충분해 지루하지 않았다. 


퇴근 시간이 되자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직원들이 많았고 그 속에는 고연희 과장도 있었다. 

팀장들 입 단속으로 사람들이 대놓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연희는 식당에서 찬영에게 제대로 경고를 받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보았기 때문에 웬만하면 많은 직원들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하지만, 근무하는 십 삼층까지 걸어 다니지 않는 이상 엘리베이터는 이용해야 하기에 사람들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고 지하 일층에 도착하자 서둘러 먼저 내리고는 제 차가 주차되어 있는 곳으로 빠르게 사라졌다. 


퇴근하는 직원들과 인사를 나눈 후 사람들이 빠져나간 주차장에서 산하는 찬영 차를 찾아 운전석으로 올랐다. 산하가 야근으로 늦은 시간에 택시를 타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찬영은 자신이 지하철로 퇴근을 하는 대신 그녀가 편히 퇴근 할 수 있도록 차 키를 하나 건네 주었다.

 

프레젠테이션 파일을 확인 하느라 조금 늦게 주차장에 도착한 찬영은 자동차에 불이 들어온 것을 보고는 보조석 문을 열고 차에 올랐다. 오늘은 오랜만에 일찍 퇴근하는 산하와 오붓하게 저녁을 함께 먹기로 했다.


퇴근 시간이 지난 저녁이지만 길어진 하지가 지나면서 일몰 시간이 늦어지는 만큼이나 후끈한 열감이 느껴지기는 높은 온도가 느껴졌지만 이런 바람을 마시는 것조차 좋을 만큼 큰 일이 마무리된 것이 행복했다. 


두 사람이 처음 함께했던 일식당 안으로 들어서니 매니저가 반갑게 맞으면 조용한 룸으로 안내했다. 디너 타임 시간이기는 했지만 먹기에 부담 없는 정식으로 주문을 하고는 더운 날씨에 어울리는 차가운 사케도 주문했다. 내일 있을 발표를 위해 반만 마시고 나머지는 보관하기로 했다. 


오늘도 나란히 마주 보고 앉아 식사를 하는 찬영과 산하는 진득한 눈 맞춤을 하면서 서로에게 시선을 떼지 않았다. 찬영은 자신이 주는 음식을 받아먹는 입술이 예쁘다며 그녀에게 입맞춤을 했고, 자신은 그녀가 주는 음식들을 받아 먹었다. 함께 식사를 할 때면 매번 한 사람이 주로 먹여 주다 보니 일반적인 식사 시간에 비해 시간이 더 많이 필요했다. 


바쁘고 중요한 일과 돌봐야 하는 아이들이 있기에 시간을 내어 일반적이고 평범한 연인들처럼 달달한 연애를 하지는 못하지만, 가끔씩 이렇게 함께하는 시간들이 생길 때면 서로에게 제 마음과 애정을 전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 글은 제가 창작한 이야기입니다. 

부족한 부분이 많이 있지만 재미있게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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