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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HAS May 11. 2023

점잖은 늑대




산하를 부모님 댁까지 데려다 주고 제 부모님 집 거실로 들어서자 바닥에 앉아 작은 레고들을 가지고 정성스럽게 성을 만들고 있는 준서와 진서를 마주했다. 어느 대회에 출품을 하려고 하는지 진지한 표정으로 세심하게 신경 써서 만들고 있었다.


"준서야, 진서야 아빠 왔는데”

"안녕하세요. 아침 먹고 나서부터 지금까지 만든 거니까 조심해 주세요!"


조심하라는 눈빛을 보이며 찬영에게 말했다. 


"하하하 알았어 조심할게. 진서는 인사 안 해?"

"응, 안녕하세요"


오빠는 따라 하지만 영혼 없는 인사에 찬영이 웃으며 할머니, 할아버지가 어디 계신지 물었다. 


"할머니는 약속 있으셔서 나가셨고 할아버지는 전화 받으러 서재에 가셨어요"


찬영은 준서에게 고맙다고는 인사를 하고 서재로 향했다. 노크를 하고 문을 열자 아버지께서 아직 통화를 하고 계셔서 가벼운 목례로 인사만 건네고 주방으로 향했다. 


어머니께서 안 계시지만 최 여사는 아이들이 먹을 간식과 점심 준비로 바빴다.


"어머니는 늦게 들어 오신데요?"

"아니요. 애들이 있어서 점심 전에 들어오신다고 하셨어요"

"네. 며칠 애들 때문에 힘드셨겠어요"

"준서가 진서를 잘 봐줘서 오히려 어머니랑 내가 편했어요. 오빠가 진서를 잘 봐줘요"


준서를 칭찬하는 최 여사 말에 기분이 좋아진 찬영은 심각하게 대화를 하며 조심스럽게 레고 쌓는 아이들을 보면서 소파 위에 앉았다.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는데 통화를 마치신 아버지께서 거실로 나와 찬영 건너편 자리에 앉으셨다. 


"어떻게 왔어?"

"잠깐 들렀어요. 애들도 궁금하고 두 분도 괜찮은지 걱정도 되고"

"흠.. 여자 생기더니 갑자기 다정해진 거야? 뭘 우리까지 생각하고 그래"

"원래부터 두 분 건강은 챙겼어요. 왜 불효자식을 만들고 그러세요"

"나이가 많은 것도 아니고 나나 네 엄마나 아직 젊으니까 걱정하지 마"

"그렇게 젊은 나이 아니세요. 내일모레면 칠순인데 그리고 가는 건 순서 없다는 옛말 있잖아요"


돌려 말하는 것 없이 대놓고 팩트를 말하는 아들에게 아버지께서 눈을 흘기시면서 물었다. 


"설마, 준서 엄마한테도 그러는 건 아니지?"


찬영이 피식 웃으며 걱정하지 마시라고 대답했다. 


"아버지 닮아서 제 여자한테는 잘하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그리고 호칭은 준서 엄마 말고 이름으로 해 주세요" 


제 여자 호칭까지 챙기는 아들 요구에 아버지는 헛웃음을 흘리시고는 그러겠노라 답하셨다. 

찬영은 산하가 선물한 진서 옷을 최여사에게 건네면서 손빨래로 빨아 달라고 부탁했다. 


오랜만에 모임이 있어 외출했던 찬영 어머니는 집에서 혼자 아이들을 보고 있을 제 남편과 아이들이 걱정되어 점심 전에 집으로 돌아오셨다. 

외출했던 어머니께서 돌아오시고 식사 시간이 되자 찬영은 아이들이 밥을 먹는 동안 테이블에 같이 앉아 식사를 챙겨 주었다. 부모님과 아이들 식사가 어느 정도 진행이 되자 저녁에 데리러 온다는 이야기를 하고 산하와 만나기 위해 집을 나섰다. 


산하와 만난 찬영은 집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제법 뜨거워진 햇볕에 잠시간 산책을 즐기고 집으로 향했다. 소파 위에 나란히 누웠지만 체격이 큰 찬영이 산하를 제 몸 위에 올려놓은 듯한 모습이었다. 


산하를 품에 안고 체향 맡는 것을 좋아하는 찬영은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품에서 놓지 않고 함께 누워 책을 읽으면서 둘 만의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었다. 

잊을 수 없을 만큼 황홀한 첫날밤을 보낸 후로 산하를 보고만 있어도 몸에서 반응이 강하게 일어나고 있었지만 시도 때도 없이 달려드는 굶주린 승냥이보다 힘들지만 점잖은 늑대가 되기 위해 인내심을 발휘하고 있었다.   


여유로운 오후 시간을 보낸 찬영은 출장으로 일주일간 엄마를 보지 못했던 준서를 데리러 부모님 집에 들렀다가 잠깐이라도 산하와 시간을 보낼 수 있게 진서도 같이 데려왔다.

 

일주일 만에 엄마를 만났지만 준서는 저보다 어린 진서가 엄마와 오랜만에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찬영 서재에서 함께 고른 별자리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네 사람 별자리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찬영은 진서가 산하를 만날 때마다 준서가 매번 엄마를 양보하는 모습을 보았다. 진서도 어리기는 하지만 준서도 어리광을 피울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어린 나이였음에도 한 번도 그런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기에 진서로 인해 준서가 외롭거나 슬픈 감정을 느끼지 않도록 해 신경 쓰는 마음이 더 컸다. 


오빠의 양보로 진서는 산하와 시간을 보내면서 지난번처럼 매달리거나 안기지는 않았지만 다리 옆에 꼭 붙어 앉아 전화로 약속했던 것들에 대해 종알종알 이야기했다.

찬영은 준서를 준서는 진서를 내리 사랑하는 마음으로 감싸 주었고, 산하는 준서와 진서를 자신이 사랑할 수 있는 만큼 마음으로 보듬어 주면서 네 사람은 가족이 되어가고 있었다. 

네 사람은 특별한 장소로 여행을 가거나 이벤트를 하지는 않았지만 일상 시간을 함께 하면서 작지만 소소한 추억들을 함께 만들면서 자신들이 꾸려가는 가족이라는 틀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찬영과 진서는 저녁을 먹고 제 집으로 돌아가고 일주일 만에 엄마와 단 둘이 오붓한 시간을 같게 된 준서는 함께 엄마랑 함께 자려고 안방 침대에 누웠다. 


“아저씨한테 준서가 전화한 거야?”

“응, 엄마가 없으니까 아저씨도 집에 안 와서 궁금했어”

“아저씨도 일이 많아서 매일 야근했다고 그랬어"

"응, 아저씨랑 고기 먹고 아이스크림 가게에도 갔었어”

“두 가지 다 준서가 좋아하는 거였네”

“먹고 싶은 거 물어봐서 내가 좋아하는 거 말했어.”


자신을 행복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아들 얼굴을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면서 산하는 참새처럼 조잘거리는 작은 목소리로 하는 이야기를 모두 들어주었다. 

찬영과 침대에서 같이 잠도 자고, 어린이 가구점에서 자기 침대와 이불을 사고, 동네 마트에서 같이 장 봤던 이야기를 하는 준서는 찬영과 부모님들께 애정 깊은 관심과 사랑을 받아서인지 얼굴 표정도 목소리도 밝아졌고 말수도 훨씬 많아진 듯했다. 


산하는 밝은 얼굴로 이야기하는 준서 이마에 짧은 입맞춤을 하면서 찬영 부모님에게 감사 한 마음도 들었지만, 바쁜 자신을 대신해 준서가 외롭지 않도록 진실한 마음으로 신경 써주는 찬영에게는 말할 수 없을 만큼 고마운 마음이 컸다.  


준서는 찬영과 있었던 일들은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조잘조잘 이야기했지만 침대 위에서 단 둘이 나누었던 비밀스러운 이야기만은 하지 않았다. 


이렇게 준서와 찬영은 엄마가 모르는 둘만의 비밀이 또 하나 생겼다.  


▷▷▷


출장으로 일주일간 자리를 비웠던 산하와 희수, 지석이 출근을 하자 기획팀 직원들은 세 사람을 반갑게 맞았다. 지석은 일요일 오후에 도착했지만 시차가 없어 컨디션이 괜찮다며 바로 출근했다. 

출장 기간 동안 일일 업무를 메일로 전달하기는 했지만 찬영이 해준 피드백이 포함된 최종 내용을 모든 팀원들이 공유하기 위해 보고서로 만들어야 했다. 

세 사람 모두 출장으로 처리해야 될 밀린 업무가 많았지만 각자 맡은 자료를 정리해 출장 보고서 먼저 작성해 김지은 실장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오전 업무회의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온 김지은 실장은 기획, 생산, 디자인 팀 출장보고서를 확인한 후 희수에게 김선호 차장에게 보고서 전달하고 오라며 서류철을 건네주었다. 


*****

점심시간이 끝나고 찬영은 사내 메신저를 통해 김지은 실장과 산하, 지석, 김선호 차장을 제 사무실로 불렀다. 다섯 명이 모이자 찬영은 전략팀 직원들에게 회의하는 동안 팀원 외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도록 당부한 후 회의를 시작했다.


“지난주에 전략 팀에서 국내 생산 업체 현장 조사해서 등급별로 구분했습니다. 

올해 계약 만료 시 종료해야 될 업체들을 정리했는데, 기획팀 확인이 필요해서 여러분을 불렀습니다. 

여기 있는 다섯 명을 제외하고 재계약 때까지는 아무도 알아서는 안 될 사항이니까 각별히 주의해 주세요”


김선호 차장이 정리된 리스트를 기획팀 세 사람에게 전달하자 모두 파일을 열어 확인했다. 


“연장 계약하지 않는 업체들 중에서 디자인 이관이 필요한 상품이 있을까요?”


찬영이 리스트를 확인하면서 질문을 했다. 


“C 업체 이 번 상품은 이관이 필요한 상품이고 나머지 상품들은 올해 시즌 끝나면 그대로 종료해도 될 상품들입니다”


산하가 리스트에 있는 상품들을 확인하면서 대답을 했다.


“한 상품 제외하고는 없다는 이야기인가요?”

“네, 해당 업체 모두 캐리 오버해야 될 상품은 더 이상 없습니다. 

몇 가지 괜찮은 디자인이 있는데 완성도가 낮아서인지 고객 평가가 좋지 않아서 이런 상품들은 리뉴얼 버전으로 새로 출시하는 게 더 났다는 생각입니다”


“그런 디자인이 몇 가지나 되나요?”

“A 업체 일, 사 번 / B 업체 이 번  / C 업체 일, 삼, 사 번 이렇게 여섯 가지입니다”


찬영, 지은, 선호, 지석은 산하가 부르는 번호들에 있는 사진을 확인하면서 비고란에 체크를 했다.


“사진으로 볼 때 모두 시즌 리스 상품들인데 현재 남아 있는 재고량은 얼마나 되나요?”

“지금 여름 시즌이라 판매량이 소폭 하락한 상태이기는 하지만 큰 변동 없이 꾸준히 판매가 되고 있어 물류에 남아 있는 물량은 가을 시즌 시작할 때쯤이면 대부분 소진될 거 같습니다”


노트북으로 판매량과 재고 수량을 확인한 지석이 남은 잔량 예상 소진일을 답했다. 


“디자인은 괜찮은데 상품 완성도가 낮아 판매율이 낮은 거라면 회사 입장에서는 손해가 크네요. 

샘플 바로 진행하면 가을 시즌 시작할 때 출시 가능할까요?”

“국내에서 진행했던 상품이니까 가능할 것 같습니다. 리뉴얼은 제가 직접 해도 될까요?”


현재도 하고 있는 일이 많은데 선뜻 자신이 하겠다고 산하가 말하자 김지은 실장이 걱정스러운 마음에 말을 했다. 


“지금 일도 많은데 괜찮겠어?”

“신규 아니고 리뉴얼하는 거라 하루 정도 시간 쓰면 될 거 같아요. 

디자인 팀에서 작업하면 업체에서도 바로 알게 될 텐데 그러면 안 되잖아요” 

“일이 자꾸 쌓이게 돼서 미안하지만, 이 건은 서 대리한테 일임하겠습니다. 

김지은 실장이 어시 해주시고 김지석 대리가 조용히 진행 가능한 공장 컨택해서 알려 주세요”

“알겠습니다”

“김지은 실장은 중간에 진행 사항만 김선호 차장한테 따로 얘기해 주세요”

“네”


기획팀 사무실로 돌아온 산하는 지석과 업무 우선순위를 정리한 후 리뉴얼해야 하는 최종 샘플과 기존 작업지시서 등 자료들을 요청하고 자신은 디자인 팀과 제작팀에 들러 사용 가능한 소재 책자들을 챙겨 자리로 돌아왔다.

기획팀 사무실은 타 부서 직원들이 수시로 드나들기 때문에 보안이 필요한 리뉴얼 작업은 근무 시간에 할 수가 없어 퇴근 시간 이후에나 작업이 가능했다


산하는 작업지시서와 최종 샘플을 지석에게 전달받은 후에 지석이 제가 하는 작업 방식을 볼 수 있도록 같이 야근을 하면서 수정해야 될 부분을 빠르게 체크하고는 새로운 작업지시서 작성에 들어갔다. 

하루 정도 시간을 투자하면 가능하다고 했던 그녀는 추가 근무 시간만을 이용해 이틀 만에 여섯 가지 작업지시서를 완성했다. 


수정된 작업지시서를 확인한 지은은 아쉬웠던 부분을 정확히 파악해 업그레이드 디자인으로 만든 산하에게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김지은 실장이 확인한 상품들은 김지석 대리가 섭외해 놓은 업체 대표님 도움으로 야간에 조용히 샘플 작업을 진행했다. 





 






이 글은 제가 창작한 이야기입니다. 

부족한 부분이 많이 있지만 재미있게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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