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하고 뜨거웠던 첫날밤을 보내고 새벽녘이 돼서야 잠이 들었던 찬영과 산하는 처음 잠든 모습 그대로 서로를 안은 채 잠들어 있었다.
주말 기상 시간에 맞춰 놓은 핸드폰에서 알림이 울리자 서둘러 알람을 끈 찬영은 제 품 안에 잠들어 있는 산하 얼굴을 부드럽게 쓰다듬어 보았지만, 많이 피곤한지 자신을 만지는 손길에도 세상 모르게 잠을 자는 그녀는 지난밤과는 상반되게 활짝 피어나기 직전 봉우리 진 연꽃 같이 청초하고 맑았다.
조금이라도 편히 더 잘 수 있도록 찬영은 조심스럽게 침대에서 빠져 나와 바닥에 흩어져 있는 옷 가지들을 정리해 의자에 올려놓고 안방 욕실로 향했다.
샤워를 마친 찬영은 가벼운 차림으로 주방으로 나와 커피 포트를 작동시켜 놓고 소파에 있는 서류 가방을 들고 주방 테이블에 앉아 지난밤 지석으로부터 온 메일을 확인하기 위해 노트북을 열었다.
김지석 대리는 출장 간 첫째 날 밤 전화로 사정이 여의치 않아 이틀 더 있어야겠다는 연락을 해 왔고 찬영은 그렇게 하라고 했다.
팀장 없이 실무자들만 출장을 가게 됐지만 지석이 보내온 메일은 마음에 들었다.
디테일 한 부분에서 조금씩 놓치는 것이 있기는 하지만 경력에 비해 잘 준비된 직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가 있으면 메일로 두리뭉실하게 넘어가지 않고 현장에서 바로 연락해 빠르게 해결하는 성향도 마음에 들었다. 메일을 확인하고 답장을 보낸 후 시간을 확인 한 찬영은 노트북을 덮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덟 시가 넘어 아침을 준비하려고 냉장고를 열었다. 어제 미리 장을 봐 두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려운 요리는 못하지만 기본적인 한식 정도는 할 수 있기에 간단한 아침 정도는 혼자서도 가능했다.
소고기 뭇국 간을 맞추고 있는데 도어 록 풀리는 소리가 들려 인덕션 불을 낮추고는 현관 쪽으로 나가자 산하 어머니께서 중문을 지나고 계셨다.
"안녕하셨어요"
찬영이 인사를 건네자 놀란 어머니께서 그를 바라보셨다.
"아, 네.. 산하는?"
"피곤한지 아직 자고 있어요. 들어오세요"
어머니는 거실로 안내하는 찬영에 이끌려 들어서면서 아침 일찍 딸 집에서 만나게 될 거라 예상을 못해 당황되기는 하셨지만 방문하신 용건을 잊지 않으셨다.
"일주일 동안 집을 비워서 반찬거리가 없을 거 같아 주려고 왔어요"
어머니가 손에 들린 쇼핑백을 건네받은 찬영은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반찬 통을 하나씩 꺼내 감사하다는 인사도 잊지 않았다.
"힘드셨을 텐데 감사합니다. 그리고 말씀 편하게 하세요"
딸을 대신해 감사하다고 하는 그를 보면서 표정 관리가 쉽지는 않으신지 어색하게 웃으셨다.
"말은 나중에 천천히 놓을게요. 반찬들이 입에 맞을지 모르겠네요"
"가끔 먹었는데 저한테 잘 맞았습니다"
반찬 통을 냉장고 안에 정리하면서도 어머니가 흘려 하시는 말에도 꼬박꼬박 대답을 했다.
"준서도 아직 자나 봐요?"
"아. 준서는 어제 저희 부모님 댁에 갔고 제가 어제 산하 씨랑 같이 잤습니다."
당신 딸과 밤을 보냈다는 이야기를 숨지기 않고 당당하게 말 하니 오히려 어머니께서 말을 돌리셨다.
"아침 준비하고 있었나 봐요?"
인덕션 위에 있는 김을 뿜고 있는 냄비를 보면서 말씀하셨다.
"잘하지는 못하지만 산하 씨 밥 먹이고 다시 재우려고요"
살뜰하게 당신 딸을 챙기는 말에 어머니 얼굴에 살짝 미소가 올랐다.
"전해주러 온 반찬 전했으니까 가 볼게요. 산하 일어나면 같이 잘 먹어요"
"감사합니다. 제가 모셔다 드려야 되는데 상황이 여의치가 않아서요"
"걸어서 오분 거리인데 걱정하지 말아요. 나올 필요 없이 하던 일 마저 해요"
찬영이 인사를 드리자 어머니께서는 빠르게 거실을 지나쳐 현관을 나가셨다.
어머님께서 주고 가신 반찬을 꺼내 조금씩 덜어내어 테이블에 올려놓고 산하를 깨우기 위해 안방으로 향했다. 이불을 덮고 머리만 내민 채 세상 모르고 잠들어 있는 그녀 머리를 쓸어 주면서 조용히 이름을 불렀다.
"산하 씨"
부르는 소리에도 아무런 반응 없이 좀처럼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이불 끝을 살짝 들추고는 목덜미에서부터 날개 뼈 부근까지 입술을 대고 부드럽게 입맞춤을 하고 손으로 등 허리를 천천히 만져 주었다.
"이제 일어나서 아침 먹어요. 아홉 시가 다 돼가요"
자신을 만지는 손길에 산하가 낮은 신음을 흘리면서 눈꺼풀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그녀가 눈을 뜨자 목덜미에 얼굴을 대고는 조용히 그녀를 불렀다.
"피곤하면 아침 먹고 다시 자요"
부드럽고 조용한 목소리에 그녀가 몸을 돌리자 이마와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몸은 괜찮아요?"
이불 밖으로 얼굴만 내민 그녀가 말갛게 웃으며 머리를 끄덕여 보였다.
"조금 뻐근한 거 말고는 괜찮은 거 같아요"
"다행이에요"
그가 그녀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언제 일어났어요?"
"두 시간 정도 된 거 같아요. 좀 더 재우고 싶은데 밥은 먹고 자야 될 거 같아서 깨웠어요"
"아.. 네"
산하가 이불로 자신 몸을 감싸고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제 다 봤는데 그냥 보여 줘요"
찬영이 웃으며 말하자 산하가 피식 웃으며 몸을 이불에 돌돌 만 채 침대에서 내려와 안방 욕실 앞까지 갔다.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그를 향해 해맑게 웃던 그녀는 잡고 있던 이불에서 손을 떼고는 그가 환하게 웃자 손 키스를 남기고는 욕실 안으로 사라져 버렸다.
아침부터 색다른 모습을 보여 준 그녀 때문에 평소와 다른 행복한 하루를 시작했다.
얼굴에 미소가 오른 찬영은 욕실 앞에 그녀가 흘려버린 이불을 거두고 지난밤 흔적이 남아 있는 침대 시트와 베개 커버, 이불까지 세탁실로 가지고가 세탁기에 넣고 드레스 룸에서 새로운 침구를 꺼내 안방 침대를 깨끗하게 정리했다.
욕실로 들어 선 산하는 밖에서 들리는 웃음소리에 자신도 배시시 웃었다. 지난밤 뜨거웠던 시간만큼 이곳 저곳이 뻐근하기는 하지만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아프지는 않았다.
아침부터 혼자 바빴을 그를 생각하며 빠르게 샤워를 마치고 주방으로 가니 어느새 아침 준비를 마친 그가 그녀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앉아요, 다 돼서 뜨기만 하면 돼요"
그녀가 앉을 수 있도록 의자를 빼 주고는 밥과 국을 그릇에 옮겨 담았다.
"혼자 준비하게 해서 미안해요"
"나 때문에 더 많이 피곤할 테니까 이 정도는 혼자 해야죠.
그리고 나는 국이랑 밥만 했고 반찬은 어머님이 가져다 주셨어요"
"엄마 오셨어요?"
"산하씨 자고 있을 때 왔다 가셨어요"
".. 아.."
밥과 국을 떠서 테이블에 올려놓고 그녀 옆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왜요? 나랑 같이 있는 거 어머니께서 아셔서 불편해요?"
"불편한 게 아니고 좀 민망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가 웃으면서 손가락으로 얼굴을 쓰다듬어 주었다.
"아침부터 도발하던 사람치고는 부끄러움이 많네요"
“엄마한테는 아직도 이런 모습 보이는 게 조금 민망해요”
쑥스러운 산하가 먼저 수저를 들자 나란히 앉아 그녀를 보던 찬영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어제 내가 피임 못해서 미안해요. 괜찮을까요?"
"저도 생각을 못했지만 날짜 상으로는 비가임기라 괜찮기는 할 거 같아요 "
"다음부터는 잊지 않고 잘 준비할게요. 혹시라도 특별한 일 있으면 바로 얘기해 줘요"
"그럴게요. 앞으로 피임은 제가 할게요. 준서도 있는데 찬영 씨가 하는 건 위험할 거 같아요"
"그런 시간이 결혼할 때까지 많아야 한 달에 한두 번 정도일 텐데 그것 때문에 약을 먹는 건 좋은 생각은 아닌 거 같아요. 내가 잘 처리할 테니까 약은 먹지 않았으면 해요"
"알았어요"
그의 말대로 한 달에 한 번도 쉽지 않은 상황에 약을 먹는 건 좋은 생각은 아닌 듯했다.
"찬영 씨 부모님 댁에 언제 갈 거예요?"
"아침 먹고 잠깐 다녀오려고요. 산하 씨는 조금 더 자요"
"저도 같이 가야 되는 거 아닐까요?"
"왜요?"
“찬영 씨 부모님께 준서를 맡기고도 찾아 뵙지 않는 건 예의가 아닌 거 같아서요"
밥을 먹던 찬영은 수저를 내려놓고 자신을 볼 수 있도록 그녀 얼굴을 들어 올렸다.
"아버지께서 먼저 말씀하시기도 했고 내가 부탁 드린 거니까 부모님께 감사한 것도 죄송한 것도 내가 해결하면 되요. 산하씨는 부담스럽거나 죄송하다는 생각은 하지 말아요"
불편한 제 마음을 달래주는 그의 말이 무척이나 고마웠지만, 아직 결혼도 하지도 않고 얼굴도 뵌 적 없는 분들께 나이 어린 아들이 신세를 지고 있는데 인사조차 하지 않는 것이 마음 불편한 것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 일수밖에 없다. 찬영은 그런 마음을 알고는 그녀와 눈을 마주치고는 말을 이어갔다.
"산하 씨 마음이 불편할 수밖에 없다는 건 알아요. 그런데 지금 나한테는 산하 씨가 가장 먼저고 다음이 애들이고 그 다음이 부모님이에요.
우리가 결혼을 결정하고 나면 그때 인사드리러 가면 되고 그 전까지는 내가 부모님께 잘할 테니까 마음 편히 가져요. 무엇보다도 아버지가 산하 씨랑 준서가 마음에 들어서 해 주시는 거니까 마음 편이 호의로 받아요.
나중에 결혼 더라도 매주 찾아뵙는 일은 없어요. 명절이나 기념일 같이 특별한 날에만 찾아가면 돼요"
다소 파격적인 말들에 산하는 놀란 표정으로 옆에 앉아 있는 그를 바라보았다.
자신을 바라보는 산하에게 그는 다른 말 없이 밥을 먹으라는 듯 반찬을 들어 그녀 입에 넣어 주었고 자신을 생각해서 하는 말들이기에 산하도 식사를 이어갔다.
아직 아버님을 만나보지는 못했지만 자신과 준서에게 주는 애정을 보면 아버님께 물려받은 다정한 유전자는 무척이나 강력한 듯했다.
식사를 마치고 설거지와 뒷정리는 산하가 하고 찬영은 식사 전 세탁기에 돌린 이불을 건조기에 돌리고 남겨진 이불 빨래를 세탁 기어 넣어 돌리고 안방 청소를 하고 있었다.
설거지와 뒷정리를 마친 산하는 소파 옆에 세워 둔 캐리어를 거실 바닥에 내리고는 가방을 열어 세탁을 해야 하는 빨래들은 세탁 바구니에 담아 세탁실로 옮기고, 회사로 가지고 가야 할 서류들과 전자기기 들은 잘 정리해 거실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 외 출장에 들고 갔던 자잘한 것들도 원래 있던 위치를 찾아 정리했다.
안방 청소를 마친 찬영이 커피를 담은 잔 두 개를 들고 거실로 와 산하에게 하나를 건넸다.
"산하 씨, 커피 마시고 해요"
"고마워요"
환하게 웃으며 찬영이 건네는 커피 잔을 받아 소파에 앉으며 캐리어에서 꺼낸 예쁜 쇼핑백을 건넸다.
"마지막 날 저녁 먹었던 식당 옆에 있던 샵에서 하나 구매했어요"
쇼핑백을 열자 어른 옷을 축소해서 만든 듯 무척이나 귀여운 노란색 점프 슈트가 보였다.
"진서가 한동안 이 옷만 입겠다고 하겠는데요"
"시간이 없어서 다른 건 못 샀어요"
"일하러 가서 선물까지 챙길 필요 없어요"
산하가 맑게 웃으며 진서 옷을 잘 정리해 쇼핑백에 다시 담았다.
"회사에 가지고 갈 것들은 따로 챙겨놔요. 출근할 때 들고 가기 힘드니까 내가 가지고 갈게요"
"자료는 좀 봐야 되는데.."
"저녁에 갈 때 가지고 갈 거니까 해야 될 거 있으면 그때까지 해요"
"그럴게요. 고마워요"
산하는 몸이 피곤하기는 했지만 낮잠으로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이 아쉬워 찬영과 함께 걸어서 부모님 댁으로 향했다. 찬영은 산하를 부모님 댁 입구까지 배웅해주고 자신도 부모님 댁으로 향했다.
산하가 부모님 집에 들어서자 부모님께서 거실에서 티브이를 시청하고 계셨다.
"쉬지 않고 어쩐 일이야?"
"잠깐 왔어요. 아침에 다녀갔다고 하셔서 두 분 얼굴 보려고 왔어요"
"전화했으면 됐지 뭐 하러 피곤한데 왔다 갔다 해"
"먼 거리도 아니고 가까운데 안 오면 섭섭해하실 거잖아요"
오랜만에 딸을 보게 된 아빠는 고생 많았다며 어서 앉으라고 말씀하셨다.
"남자 친구는 어떻게 하고 왔어?"
엄마한테 들으셨는지 아버지 성격대로 돌리는 거 없이 대놓고 물어 오신다.
"부모님 댁에 잠시 들른다고 해서 같이 나왔어요"
"부모님 댁이 근처야?"
"네, 멀지 않아요"
"준서가 많이 따르는 거 같던데 결혼까지 생각하고 있는 거야"
"그럴 생각이에요"
일곱 살 아들도 있고 결혼 생활도 했었지만, 남자 친구 이야기에 대해 부모님과 하는 것이 아직도 어색한 산하는 대답을 하면서도 시선은 티브이로 향해 있었다.
이 글은 제가 창작한 이야기입니다.
부족한 부분이 많이 있지만 재미있게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