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걷는 길에서 느끼는 자유의 바람
바쁜 오전 일정을 보내면 걷기 운동으로 시작하는 오후 시간이 된다. 한 달 전에는 예쁘게 피었던 벚꽃들은 모두 떨어졌지만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5월이 그렇듯이 나비도 보이고 푸른 나뭇잎들이 보이는 도로 위 가로수들은 초록 초록한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다.
시원한 바람과 햇살을 받으며 노래를 들으면서 세상에 혼자인 것처럼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면서 자연에서 느껴지는 신선함의 생명력을 온몸을 통해 발 끝까지 깊숙이 받아들이려고 노력해 본다.
아침이면 가족들이 각자의 생활을 위해 밖으로 나가고 혼자 시간을 보내며 생활을 하지만 어쩐지 집은 쉬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매일 뭔가를 특별히 해야 하는 것이 있는 건 아니지만 나에게 집은 무언가를 계속해서 해야 하는 작업 공간과도 같은 곳이다. 그래서인지 걷기 운동 시간이 자유시간처럼 생각된다.
백수가 된 후 2년 만에 진정한 백수 생활을 시작하게 되면서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으로 걷기 운동이 되었다.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이런 시간도 갖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 아닌가.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전선에 뛰어들어 직장생활을 시작함과 동시에 '나'라는 존재는 희미하게 사라져 가고 돈을 벌기 위한 일꾼으로만 존재하는 듯하다.
누가 그렇게 하라고 말하거나 시키지도 않지만 인간은 생존본능에 의해 그렇게 되어가는 것 같다.
나 역시 그런 사람 중 하나였으리라. 백수생활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도 이런 시간이 필요해서였다. 지금의 젊은 20,30대 사람들은 직장에 크게 얽매이지 않고 스스로 안식년을 주면서 긴 인생 지치지 않고 잘 갈 수 있도록 기초를 잘 다지고 있는 것 같다. 너무 자주 이런 시간을 갖는다면 문제가 될 수도 있겠지만 각자의 삶을 하나의 기준으로 보는 것보다는 개별 기준으로 보아야 하는 시대가 아닌가 한다.
나처럼 40대임에도 불구하고 현재 위치해 있는 사회적 지위를 내려놓고 안식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기성세대는 이런 안식년을 퇴직 이후라고 생각하며 살았고 지금도 그런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보면 100세 시대 평균 나이 83세 시대에 퇴직 후 30년 이상을 내리 안식년을 보낸다는 것이 어찌 보면 더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하다.
조금 젊은 나이에 쉬는 시간을 가져보면 나에게 주어진 쉬는 시간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기준이 생길 것이며, 조금 젊은 나이에 할 수 있는 활동을 통해 그 이후의 삶이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며, 조금 더 나이 들었을 때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이 달라질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지금 나도 안식년을 통해 이렇게 브런치에 글을 쓰는 예비 작가가 되었으니 이렇게 하나하나 글을 쓰게 되면 언젠가는 좋은 에세이 작가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상상을 해보기도 한다.
5월이라는 단어는 덥지도 춥지도 않고 따뜻하기는 하나 뜨겁지는 않고 선선하기는 하나 차갑지 않은 밖으로 나가 무언가를 해보기에 적당한 기간이 아닐까 한다.
세상의 모든 우울, 슬픔, 상실, 걱정, 괴로움을 불어오는 바람에 실려 보내고 내리는 따뜻한 햇살로 희망과 기대, 사랑, 기쁨을 느껴 볼 수 있을 것이며 이것들을 느끼게 되면 진정한 자유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우리들의 블루스' 내용 중 '나중에라도 사는 게 답답하면 뒤를 봐! 뒤를! 이렇게 등만 돌리면 다른 세상이 있잖아.'라는 말이 지금의 우리 모두가 들어야 할 메시지가 아닐까.
젊으나 늙으나 살아가면서 내 인생이 답답하게 느껴지는 경우는 다반사이며, 내가 누구인지, 나는 여기서 무얼 하는지... 자신에게 번아웃이 오려는 징조가 보인다면 이렇게 작은 행동 하나로도 일을 살아갈 수 있는 새로운 에너지를 얻을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