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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HAS Jun 03. 2022

오 월

코 끝으로 전해지는 여름의 알림 



거실 창문을 열었을 때 상쾌한 바람과 함께 실려 들어오는 아카시아 향이 느껴질 때면 5월이 왔음을 느끼게 된다. 집 뒤편 작은 산에서 넘어오는 아카시아 향은 서울 도심에서는 잘 볼 수 없는 나무이지만, 뒷산을 병풍으로 두고 있는 나의 집은 감사하게도 이런 기분 좋은 감각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여름을 제외 한 모든 계절의 바뀜은 몸의 감각을 통해 전해지는 바람의 세기와 온도에 의해서만 느껴지지만 오월에 오는 여름은 창문을 열어 코끝에 느껴지는 은은한 향기로 느낄 수 있다는 것이 흥미로운 일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사계절 중 여름을 가장 선호한다. 날이 좋은 어느 날 산책을 할 때면 뜨거운 햇살과 시원한 바람은 차가운 이성을 느끼게 하고,  어느 집 담벼락의 장미 넝쿨에서 전해오는 장미 향, 뒷산에서부터 풍겨 오는 아카시아 향은 따뜻한 감성을 자극하는 것이 두 가지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특별함 때문이다.   


오월은 봄의 끝자락에서 본격적인 여름이 오기 전 통과해야 하는 문처럼 낮 동안의 따뜻함이 사람들을 밖으로 이끌어 서로가 서로에게 애정과 사랑을 주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게 만드는 특별함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겨울의 쌀쌀함을 느끼고 싶지 않아 집안에 웅크리고 있던 사람들도 이 시기가 되면 바쁘게 약속을 잡기도, 밖이 보이는 통 창문의 커피숍에서, 햇볕 밝은 공원 등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목소리를 BGM 삼아 여유롭게 책을 읽기도 풍경을 감상하기도 한다.  


오월이 시작되면서 느껴지는 따뜻함과 싱그러움은 나에게 삶의 여유를, 무언가에 집중할 수 있는 안정감을 주기도 한다. 작은 잎사귀들만 존재했던 나무에서 화려하고 예쁜 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하면 세상도 덩달아 더 화려해지고 밝아지는 이 시간이 무척이나 마음에 든다.  


코끝으로 살랑 이는 바람과 함께 실려오는 아카시아 향을 맡으면 지금도 문득문득 일곱 살 시절의 일들이 생각난다. 그 시절 살던 집 아래에는 낮은 둔덕과 같은 돌산이 있었는데 이곳에는 아카시아 나무가 무척이나 많이 있었다. 

늘 함께 노는 동네 친구와 함께 돌산에 올라 아카시아 나뭇가지를 끊어 서로의 긴 머리카락을 나뭇가지로 꼬아 올려 웨이브 진 머리를 만들기도 하고 아카시아 꽃을 입안에 넣어 오물오물 씹으며 달콤함을 느낄 때도 있었다. 아카시아 줄기 파마는 저녁에 집에 돌아와 머리를 감으면 다 풀려버리고 말지만 잠깐 동안이라도 곱슬해진 머리를 보면서 친구랑 서로의 머리카락을 만져주던 즐거웠던 그 마음이 생각나 ‘피식’ 하곤 웃음이 흘러나오기도 한다.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어 숨쉬기조차 힘든 본격적인 여름이 오기 전 오월의 한 달은 힘든 여름을 보내기 위해 자연이 인간에게 베푸는 작은 배려의 시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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