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절복통-스페인 여행기20

<20>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

by 평양이디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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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데미안이 떠올랐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우리의 알은 무엇이었을까 생각했다. 나의 알은 엄마라는 평가자였다.

그림을 그리거나 과제를 하다가도 지나가며 툭 던지는 말에

내 공들이 우르르 무너져 내렸다.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큰 건지, 부정당하고 싶지 않은 욕구가 큰 건지.

늘 평가당하며 안절부절했다.


내가 엄마한테 바라는 역할은 엄마 그 자체인데 엄마는 스스로 평가자를 자처했다.

심지어 여행 사진에도 키가 작아서 별로네, 옷이 별로네 평가를 내리며

9시간의 시차를 뚫고 나를 좌지우지해왔고,

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사실 카르타헤나에 오는 버스에서 엄마에게 못된 말을 했다.

더 이상 남이랑 비교하지 말고 나를 평가하지 말아달라고.

그리고 이 말을 꺼내기까지 너무 힘들어서 버스에서 내내 속앓이 했던 것도 생각났다.

집에 돌아와서는 엄마와 통화를 했다. 거의 울 뻔했다.

그 말을 뱉고 나서 연락이 끊기고, 내 친구들에게 내가 여권이고 뭐고 다 잃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엄마를 생각하니 너무 미안해졌다.


모니카와 리카르도 집에 돌아온 우리는 우리에게 상을 줘야 한다며 한국에서 가져간 라면을 끓여먹었다.

라면을 먹는데 리카르도는 본인도 매운 음식을 좋아한다고 했고 우리는 라면은 어마 무시하게 매우니 조심하라고 했다.

그리고 내일 우리는 바르셀로나 공항으로 가서 비행기를 타고 이비자를 갈 거라고 했다.

그러자 리카르도는 깜짝 놀랐다…


"아니! 카르타헤나에서 배로 1시간이면 이비자인데 바르셀로나까지 긴 시간 버스를 타고, 거기에 비행기까지 타고 간다고??!!”


무계획 여행 중 유일하게 세운 계획이었는데 이렇게 또 엉망진창이 되었다…

리카르도 차라리 그 말을 듣지 못했다면 좋았을 거예요.

1시간 만에 갈 거리를 무계획 바보들은 11시간 만에 갔다.


-두 번째 “DONT STOP ME NOW”


새벽 6시에 짐을 챙겨 나온 우리, 어제 예약한 택시 기사 아저씨와 만나기로 한 버스터미널로 갔다.

웬걸 개미 새끼도 보이지 않았다. 어제 우리는 가진 돈 탈탈 털어 겨우겨우 무르시아 버스터미널에서 바르셀로나 가는 버스 표를 샀다.

무르시아 터미널에 갈 수 있는 유일한 교통수단 택시를 이 시간에 못 타면 우리는 7만 원짜리 버스 표는 물론,

이비자로 가는 비행기 표도 날려버릴 위기의 순간이었다. 우리 여행 하이라이트인 이비자.

도둑놈들에게 모든 것을 잃었을 때보다 더 가슴이 쿵쾅거리고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안된다 이놈들아! 우리 여행의 액기스! 육회의 노른자, 엽떡의 당면 사리 같은 이비자를 놓친다면

한 달 동안 즐거웠던 여행이 밍밍한 여행이 될 것만 같았다.

급한 마음에 버스터미널 벽에 적혀있는 콜택시에 여러 번 전화를 걸고, 우버를 찾아봤지만

역시, 스페인 사람들 새벽은 영업을 하지 않는지 받지 않았다.


그리고 자포자기하기 직전, 저기 멀리서 운명처럼 택시가 왔다.

우리는 손을 미친 듯이 흔들었고 우리 앞에 차가 섰다.

트렁크를 열어 달라 하고 우리 캐리어를 싣는데 뒤에서 택시를 기다리던 사람이 나와 동이 짐 싣는 사이에 택시에 타려 했다.

그 사람의 뻔뻔함과, 우리의 급박한 상황에 눈이 뒤집힌 나는 뒷좌석 문을 열고 먼저 앉았다.

우리가 먼저 서있었다. 순서를 지켜라 외치며 택시에 타서 드디어 출발을 하는 순간,

갑자기 라디오에서 또 한 번 우리 여행 테마곡 “DONT STOP ME NOW”가 흘러나왔다.

또 한 번 우리를 스쳐 지나간 위기에 안도의 숨을 뱉으며 서로의 손을 잡을 때,

우리 의사와 상관없이 우리 여행 위기-절정의 순간에 터져 나오는 이 노래 이제는 무서워지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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