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이비자 풀파티-어른들의 파라다이스 <하>
<23> 이비자 풀파티-어른들의 파라다이스 <하>(천국에서도 눈물을 흐른다.)
라커 열쇠를 잃어버려 20유로를 지불하고 라커를 여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다.
애초에 라커 키는 약간 헐렁했고, 삭은 끈으로 만들어졌는지 곧 바스라 질 것 같았다.
그렇게 흐르는 물과 음악처럼 우리의 새로운 위기는 찾아왔고, 그저 한량인 우리는
20유로를 내고 락커문을 열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그깟 열쇠는 잊고 놀아젖혔다.
위기의식 없는 우리는 잘 될 거란 마인드로 놀았다.
지상낙원에서 삐용삐용 쉬지 않고 울어댔다. 평생 울릴 미남 경보 이날 다 울렸다.
나갈 때 직원에게 얘기하고 우리 라커라고 생각한 문을 열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것은 다른 사람의 짐이었다.
쓸데없는 기억력이 좋은 나는 그 선크림과 신발을 보자마자 락커에 침을 두던 상황이 떠올랐다.
우리보다 키 큰 언니들에게 양보하고 바로 그 밑 칸을 쓰겠다고 얘기했던 게 기억이 났다.
그래서 별 걱정이 없는 나는 미남을 구경하고 튀니지 미남 모히또를 뺐어 마셨다.
직원에게 미안하다고 번호를 헷갈렸다고, 우리는 그 칸이었다고 말을 했는데
직원은 단호하게
“프라이버시 때문에 너희는 문을 열 수 없다.
너희가 확신했던 번호가 아니지 않냐너희는 영업이 끝나는 시간까지 기다려야 한다.”
고 단호하게 못을 박아두었다.
당장 밤 비행기를 타고 이비자를 떠나야 하는 우리는 몹시 당황했다.
직원의 말은 맞지만 우리 상황은 너무 급박했다.
그리고 우리 옆에선 똑같은 이유로 직원과 싸우는 분이 계셨다.
그분과 이 어이없는 상황을 욕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얘기하다 우리는 부탁하고,
그분은 싸우고는 두 가지 방법을 택했다.
그러다 직원이 매니저에게 얘기하라고 도리어 화를 냈다.
매니저가 누구냐고 프런트로 가서 얘기하겠다고 나가서 얘기하는데 매니저는 되레 화를 냈다.
갑자기 화를 내는 이 상황에 지금까지 숱한 미드, 영드로 배운 싸움 잘하는 척을 했다.
곰같이 크고 무서운 매니저와 불같이 싸우는데 매니저가
“네 친구한테나 가서 얘기해보지?! 네 친구가 마지막 기회를 날렸어! 난 분명히 기회를 줬어!”
이게 무슨 말인가 싶고, 황당해서 다시 라커로 갔다.
내 눈을 못 보는 동.
그런데 내가 매니저를 찾아다니는 사이 한 번 더 문을 열 기회를 줬는데
“이게 진짜 너희 라커가 맞아? 확신할 수 있어? 맞냐고?”
윽박지르는 통에 동이는 내가 신신당부한 번호가 아닌 다른 번호를 열어버린 것이다.
분명 나는 88번이야 동아. 만약 직원이 오면 88번 열어. 하고 갔는데…
다시 사정을 하러 갔는데 매니저는 너흰 기회를 다 날렸으니 폐장시간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단호하게 얘기했다.
여행 내내 한 번도 나오지 않던 눈물이 가장 행복하던 이 천국에서 흘렀다.
천국에서도 눈물을 흐른다. 동이는 나한테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 하고,
나는 잘 해결해본다 하고 매니저와 직원한테 사정사정하고 위태 위태롭게 시간이 흘러갔다.
그리고 지나가던 영국 언니들이 우릴 보고 매니저와 직원들과 싸워줬다.
욕을 속사포로 쏟아내며, “얘네 어떡하냐고, 여권도 이 안에 있고 얘네 비행기 시간도 있는데 어떡할 거냐고!”
언니들의 찰진 욕을 들으니 우리 편이 생긴 것 같았다.
그리고 곰같이 커다란 매니저는 마지막 기회라고 88번 맞냐고 확신해?! 압박했고,
그렇게 조여오니 ‘맞나, 아니면 어쩌지 어떡해야 하는 걸까’ 불안이 커졌다.
난 맞다고, 확신한다며 문을 열었는데…맞았다. 빨간 내 원피스와, 요상한 동이의 투피스가 있었다.
도와준 직원 한 명과, 영국 언니들한테 고맙다 하고 얼른 자리를 떴다.
몸이 부들부들 떨려서 여기서 한순간도 있기 싫다고 동이 손을 잡고 나왔다.
너무 급하게 나왔다. 밖에서 정신 차려보니 우린 옷도 안 갈아입고 비키니만 입고 있었다.
사과하는 동이를 부둥켜안고 우리 괜찮다고 잘 헤쳐 나왔다고 얘기하면서 깊게 껴안았다. 석양을 바라보며 사진도 찍고,
산 안토니오 해변을 걸었다. 그리고 우리 얼굴에 번진 눈물을 미남으로 닦았다.
그리고 우린 이비자 공항으로 갔다. 이제 모든 위기가 지나갔고 순조롭게 흘러가겠지 했는데…
공항 라커 시간이 지나니 30유로가 추가로 붙었다.
심지어 센트도, 지폐도 못 쓰고 1유로, 2유로 동전만 쓸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공항 주차장 지나 있는 코인 라커와, 공항까지 산짐승처럼 뛰어다니며 동전을 구하러 다녔다.
그 새벽 공항에 있는 가게 문도 닫아, 공항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 지폐를 혹시 1유로로 바꿔줄 수 있냐고 물어보러 다녔다.
낯가리지만 먹고사는 것에 있어서 낯 못 가리는 나는 백이면 백 내 할당량을 다 동전으로 바꿨고,
동은 다 거절당했다. 그래서 동이가 쥐고 있던 지폐를 낚아채 후딱후딱 동전으로 바꿔, 우린 어두운 주차장으로 뛰어갔다.
그러나 좌절스럽게도 우리가 지폐를 동전으로 바꾸는 사이 라커는 돈이 더 추가되었다.
그리고 지나가는 행인에게 조심스럽게 우리…이 라커에 동전이 부족해서 그러는데…구질구질하게 부탁해서 몇 유로를 얻었다.
한국에서도 안 해본 앵벌이를 여행 와서 하다니…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라 이 방법으로 부족한 몇 유로를 채웠고
짐을 찾을 수 있었다…아…스펙터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난 내 인생이 너무 재미없다고 생각했다.
영화처럼, 소설처럼 재밌고, 유쾌하게 살고 싶다고 항상 생각했는데
아마 내 장르는 시트콤이었나 보다.
내 인생을 심즈처럼 조종하고 있는 플레이어는 아마 깔깔거리는 효과음을 제일 많이 듣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