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소외되고 버려진 사람들.

by 서온

툭-

엄마는 비닐봉지 네 개를 두 손에 가득 쥐고 현관문을

밀고 들어왔다.

엄마는 오늘도 많은 걸 사 왔다는

표정이었다.

얼굴은 지쳐 있었지만, 그 속엔 뭔가

기이하게 들뜬 공기 같은 게 섞여 있었다.

식탁 위에 올려놓은 봉투 안에는

할인된 냉동 닭강정, 두 팩에 1+1 떡갈비,

누가 봐도 당장 필요 없는 어린이 전용 요구루트,

그리고 어김없이 새로 산 신발 상자 하나.

신발장에는 아빠,나,오빠의 신발은 몇켤레 되지 않았지만,

엄마의 신발만큼은 넘쳐 났다.

그럼에도 엄마는 자신의 신발을 사는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런 엄마의 신발만 봐도, 신물이 나고, 나는 토가 올라왔다.


나와 할머니는 소파에 앉아 있었고, 오빠는 방 안에 컴퓨터 게임에

빠져 있었다.

그리고 아빠가 돌아오면 곧 "그 시간" 이 온다는 걸 나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엄마는 쪼그려 앉아 냉동실 문을 열었다.

문짝은 이미 무거워 보였고,

안에선 다른 포장들이 눌린 튀김의 비닐이

부풀어 터질 듯 햇다.


"아 진짜 좀 비켜 줘야지, 얘는..."


엄마는 그 안에 있는 것들을 꺼내지도 않은

채 새로 산 것들을 위에 억지로 쑤셔 넣었다.

라면 냉동피자 튀김류...

그건 마치 자신의 욕망과 부족함이 교차가 되어

아무거나 집어넣어서 덮으려는 몸짓처럼 보였다.




오후 9시가 되서야, 아빠는 퇴근 했고, 그날따라 아빠는 평상시

보다 더 굳은 표정을 하고 현관을 들어섰다.

손에 들려 있던 건 평소보다 두꺼운 고지서 봉투였다.

엄마는 부엌에서 뭘 데우고 있었고,

아빠는 그 봉투를 식탁에 탁, 내리쳤다.


"뭐야 이거, 지난달보다 또 30만원이 늘었잖아!"


엄마는 대꾸 없이 전자레인지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며

김이 모락모락 나는 떡갈비를 접시에 옮겼다.


"애들 먹일 거 좀 샀어. 그리고 당신 친척분들 한달에 한번씩 꼭 오니까.

친척들 해줄 먹을거리도 좀 사고.."

"뭐? 애들 음식? 친척?" 아빠는 기가 찬다는 듯이 웃었다. 그리고 다시

말을 이었다.

"웃기시네.. 신발이 음식이냐? 여기 떡하니 00구두점 이라고 적혀 있는거

안보여?"


엄마는 아빠를 보던 시선에서 부엌 쪽으로 시선을 돌렸고, 아무말 하지 않고,

눈물을 흘렸다.

왜 울었을까..? 나는 그 울음이.. 정말 역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아빠는 발소리를 크게 내며 쿵쿵! 엄마에게로 다가오더니,

손을 힘껏들고, 엄마의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

딱-

집은 좁았지만, 아빠가 엄마의 뺨을 때린 소리는 마치 집을 텅빈 공간으로

크게 만들었다.

그 순간, 정적이 퍼지고, 모두의 숨을 멎게 했다.


오빠의 방 안에서는 게임 소리가 여전히 흘러나왔고, 내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게임의 소리는 더 커졌다.

그리고 아빠의 귀에 그 게임소리가 거슬렸는지, 아빠는 오빠의

방을 향해 소리쳤다.

"야!!! 한태수!!! 소리 안줄여?"


그리고 게임 소리는 사라졌고, 다시 찾아온 정적은 더 무겁게 내려앉았다.

태수 오빠는 불안이라는 폭력을 게임으로 회피했다.

태수 오빠는 초등학교때 곧잘 공부를 잘했지만, 엄마와 아빠의

싸움이 반복이 되고,

아빠가 엄마를 향한 잦은 폭력으로 중학생이 된 오빠는 게임 중독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나는 공포에 짓눌렸고,

멍하니 앉은 할머니를 일으키고 내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할머니는 위로 따위 원래 알지 못했던 사람처럼

나에게 말했다.

"썩을년, 내 아들 돈을 그렇게 써대더니, 잘됬다.

다 니 엄마 잘못이여~ 잘못한 년들은 맞아야 혀~"


그리고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거실에서는 그릇깨지는 소리..

아빠의 폭력의 소리로 가득했다..

밖은 고요하고 평온했고, 내가 있는 곳은 전쟁 속이였다.

나는 어떤것으로 위안을 해야했을까.


모두가 잠들기를 기달렸다가, 나는 책상 서랍을

열었다. 커터칼을 손에 움켜쥐었다.

드르륵- 쓰윽!

나는 아프지 않았다. 내 마음에 긁힌 소리들과 아우성이

더 아팠다.


그제서야 나는 잠을 잘 수 있었다.


그날 이후, 내 불면증은 날로 심해졌고

불면이 심해질 때마다,

나는 그 장면을 몇 번이고 되풀이 했다.


내 안에서 터져 나오는 핏물이

겉으로 들어나는 고통보다 덜

아프다는 걸,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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