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우리에겐 엄하기만 했지만 어릴 적 나이와 상관없이 양가 7남매와 9남매의 모임을 주도하던 대가족의 큰어른 같은 존재로, 누구든 고민이 있으면 아빠에게 상담을 요청해왔다. 어린 눈에 그게 좀 멋있어 보였던 것 같다. 진중하고, 과묵하고, 해결사 같고, 대소사에 허락을 구해야 할 마음 속 진짜 어른.
그 당시의 진짜 아빠의 모습을 나는 어려서 알 수 없었으니 모르지만, 지금 같은 성정이라면 그 모습이 얼마나 포장되었던 것인지 새삼 우스워지려 한다. 아니면 정말 삶의 고단함이 사람 하나를 저렇게 만들었단 말인가. 그건 아닐 것이다. 저런 사고방식은 쉽게 나오지 않는다. 나쁜 쪽으로 더 강화된 것인지는 몰라도 아빠도 할머니도 집으로부터 물려받은 지랄맞은 성질머리라고 했다. 해결사는, 멋진 가장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살고 있었다.
대학원에 다니면서 꽤 많은 날을 아빠가 태워다 주었다. 아침마다 대화 15분. 결코 적은 시간이 아니다. 스무살 이후 다시 한 번 아빠와 더 좋아질 기회가 생긴건가. 아니, 나는 그 차를 타지 말았어야 했다. 더 이상 대화하지 말았어야 했다. 적어도 싫어지기 시작했을 때 피해야했다.
일상적으로 온갖 하소연이 내 귀에 억지로 와 박힐 때, 나는 좋은 대처방법을 찾지 못했다. 사회생활하다 만났다면 나를 깊은 구렁텅이로 자꾸만 몰아가는 저런 사람은 무조건 피해야 상책인 사람이었다. 모든 부정적인 언사의 대상이 우리가 공유하는 주변인이라는 것은 더더욱 못견딜 일이었다. 나더러 그 사람들을 대체 어찌하라는 말인가. 대화할 때 말끝은 가벼워졌어도 아빠는 나에게 여전히 제일 무서운 사람이었고 말 한 마디에 저 눈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것이었다. 서로 다른 의견으로 목소리만 조금 커져도 나는 그저 입을 다물었다. 말을 하지 않는 것은 동의가 아니었는데, 아빠는 누군가 들어주니 신이 났는지 계속 얘길 했다.
아빠는 모든 것을 남 탓만 했다. 엄마 탓만 했다. 주변에 싫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젊을 때에야 사업 벌인다고 이사람 저사람 인간관계 유지했지만 피로감도 너무 심하고 다 끊어버리겠다 했다. 모르긴 몰라도 나는 그런 인간관계에 아빠 탓이 없진 않을 것이라 확신했다.
아빠가 입을 열면 열수록 나는 아빠라는 인간에게 실망해갔다. 그 동안 저런 생각을 가지고 살았다고? 대화가 없을 때가 나았다. 그 때라면 무섭지만 인격적으로는 존경할 수 있는 아빠였다. 입을 열면 열수록 존경에서는 멀어져갔다. 아빠는 말 한마디마다 천냥 빚을 지고 있었다. 나는 점점 대꾸해주는 데도 지쳐갔다.
대학원 졸업 후 나는 또 직장을 찾아 집을 떠났다. 이번엔 홀가분했다. 복잡한 수도권은 싫었지만 공원이 많은 주변환경이 좋았고, 제법 인정을 받아 일도 잘만 풀려가는 듯 했다. 하지만 떨어져 있어도 쌓여있던 말 못하는 이 마음과, 그 사이 몇 번 동생과 엄마에게 있었던 아빠의 막말, 엄마의 홧병이 어우러져 나는 매일같이 잠 못 자는 지경에 이르렀고, 머리 좀 뒤늦게 큰 나는 참다참다 못해 아빠를 들이받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