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틀려진 나를 위한 환기
나는 닿았던 것만을 사랑한다. 무언가를 진심으로 좋아한다는 건, 끊지 못하는 것. 아니, 애초에 끊을 의지가 없다는 것. 그리고 잠깐 닿았던 과거에 오래 머무는 일이다.
나는 누군가를 덕질해 본 적이 없다. 진정한 팬이 되어본 적도, 특별한 인물을 열렬히 동경해 본 적도 없다.
닿을 수 없는 마음으로 쾌락을 느껴본 적도 없다. 내게 ‘좋다’는 감각은, 그저 어떤 작품을 보며 느껴지는 도파민 같은 것이었다. 누군가를 열렬히 좋아하기 위해선 반드시 내가 직접 닿을 수 있어야만 했다.
감정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웃고, 마주하고, 상처받은 끝에야 비로소 시작된다. 그리고 떠난 후에야, 진짜 열정이 시작된다. 시니컬하고 불안한 나는 언제나 그 시점에서 감정이 열린다.
술.
예전엔 술이 중요했다. 나와 비슷한 방식으로 술을 즐기는 사람이 좋았다. 사랑하는 사람과 마시는 술자리는 일주일에 한두 번이면 충분했고, 물론 나는 늘 취했다.
취하기 위해 마시는 사람이었다.
그 시간이 누군가가 내게 특별한 사람이라는 증거였고,
그와의 술은 단지 알코올이 아닌, 분위기와 말, 감정의 형식이었다.
누군가는 날 쾌락주의자라 불렀지만, 부정하지 않았다.
술은 나를 부드럽게 만들었고, 평소 꺼내지 못하던 말과 감정을 열게 했다. 물론, 과해지면 부정적인 쪽의 주사가 나왔지만 그게 나인걸 부정할 순 없으니. 내가 느낄 수 있는 가장 순도 높은 감정의 해방이었다.
그래서 나는 혼자 마시지 않았다. 쾌락은 함께일 때 완성됐고, 의미 없는 술에는 흥미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공허함을 달래기 위해 가끔 혼자 마신다.
한때 내 것이었지만 지금은 아닌 것들을 복기하며 그것들로 나를 채운다. 그게 내 방식의 해방이었다.
누군가 곁에 있을 때는 그 사람의 존재가 내 빈틈을 메웠다. 하지만 관계가 깊어질수록 그 사람만이 채울 수 있는 새로운 공허가 생겼다. 나는 불안해졌고, 결국 떠나보냈고, 떠난 뒤에야 진짜 감정이 시작되었다. 술이 잠깐의 환기를 줄 수는 있어도 결국 근본을 채우지는 못한다는 걸 안다.
그래서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의 술자리보다는, 뒤틀려 있는 나를 위한 짧은 환기를 택한다. 혼자 마신다.
이제 누군가 술 좋아하냐는 물음에 그렇다고 대답하지 못한다.
나는 쉽게 중독되지 않는다.
담배도 간헐적으로 피웠지만 중독된 적 없다.
끊겠다고 선언한 적도 없다. 지금은 피우는 상태를 선택했다.
어떤 남자가 말했다.
“난 담배 피우는 여자 싫어.”
그래서 어쩌라고. 반발심이 치밀었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 나에게 닿지 않는 무언가는 아무 의미가 없다. 내가 좋아하는 건, 직접 닿을 수 있었던 것. 그리고, 한때 내 것이었지만 지금은 과거가 된 것.
그게 지금의 나를 채우는 유일한 쾌락이다.
쉽게 빠지지 않지만, 한 번 빠지면 오래간다.
그리고 좀처럼 잊지 못한다. 한 번 닿았던 감정은 끝내 내 안에 남는다. 반복해서 꺼내보고, 되새기다 다시 쓸쓸해진다. 정말 외로운 날이면 나를 잠깐 놓아버리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그러지 않고 버틸 수 있는 이유는, 내 기준이 과거에 있고, 그 과거의 힘이 생각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겐 그저 미련처럼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쾌락을 좇는 나에게는 그 기준이 과거에 있었기에 지금까지 곧게 버틸 수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지나간 것들에서 열정을 시작하는 사람.
그래서 나는 우디 앨런의 영화가 좋다. 다 지나간 것들이라서. 그리고 지나간 것들은, 힘이 세니까. 나는 현실적인 사람이지만 감정만큼은 낭만을 좇고 싶다.
누군가는 과거를 좇는 걸 현재에 대한 부적응, 한심하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사랑했던 것에게만 낭만을 부여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낭만을 아무에게나 허락하지 않는다. 정말 사랑했던, 내 과거에만 조용히 남겨두는 낭만.
그건, 진짜 나의 것이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솔직한 감정의 충실함은, 끝내 남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