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인정해야 할

사랑이 아니었던 우리

by 유은



이제 인정하려 해. 넌 아마 나보다 훨씬 먼저 알고 있었겠지. 나는 네가 감정을 숨기지 못하던 순간들, 평소 같으면 절대 하지 않았을 말들을 쏟아내며 흔들리던 모습을 보며 그게 진심이고, 우리가 지독한 사랑을 하고 있다고 믿었어.


“널 위해 대신 죽을 수 있다”는 말이 단순한 과장이 아니라 서로 통하는 감정의 크기라고, 뻔한 말이 아니라 깊은 사랑의 증거라고 여겼으니까.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우리는 서로를 위해 진짜로 양보한 적이 없었던 것 같아. 나는 허벅지를 꼬집으며 너를 참았지만 결국 네가 원하는 행동은 하지 못했고, 너는 내가 원하는 눈빛 하나 없이 나를 바꾸기 위해 네 감정을 쏟아냈지. 서로의 방식대로 애쓴다고 말하면서도, 결국 내가 더 많이 주고 있다는 생각에 억울해했고, 손해 보기 싫어했어.


그리고 이제는 확실히 알아. 우리는 꽤 오랫동안 단지 불행했을 뿐이야. 그게 사랑이라고 착각했지만, 사실은 아니었어. 아마 너는 나보다 훨씬 더 오래전부터 불행했을 거야. 그 사실을 떠올리면 마음이 아프고, 그래서 묻게 돼. 넌 왜 더 일찍 나를 놓지 않았을까. 너는 나와 함께 있는 게 점점 더 힘들어졌고, 결국 그 힘듦의 끝에서 나를 떠났지. 네가 없는 지금이 더 고통스러운 나와는 다르게, 너는 나를 떠나는 게 너 자신을 살리는 길이라고 믿었을 테니까. 간절히 바란다. 너는 그게 사랑이 아니었다는 걸 금방 알아차렸기를. 모든 걸 훌훌 털어내고, 나처럼 오래 아프지 않았기를.


솔직히 아직 화도 나.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너의 말투, 눈빛, 나를 대하던 태도들이 얼마나 일방적이었는지, 얼마나 지치게 했는지 명확히 보였거든. 그런데도 나는 끝까지 널 사랑했어. 내게 불만을 몇 시간씩 쏟아내던 그 순간조차, 지금보다는 덜 외로웠던 것 같아. 그래도 이제는 확실히 말할 수 있어. 이건 아니었어. 널 너무 사랑하면서 무방비해졌던 내가, 결국은 모든 걸 망쳤던 것 같아.


나는 너에게 내 가장 취약한 부분까지 내어줬고, 그게 상처가 된 뒤에서야 사람을 보는 눈이 생겼어. 덕분에 나는 진심으로 좋은 사람을 만날 준비가 되었고, 그 사람이 나를 알아보고 사랑해 줄 수 있도록 나 자신도 더 단단해졌어.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뭔지, 내게 정말 필요한 게 뭔지 정확히 알 수 있게 됐고, 그걸 알게 된 계기가 너였다는 게 지금은 다행이야.


아직 너의 익숙함에서 완전히 빠져나오는 데는 시간이 좀 걸리지만, 그건 네 존재가 커서가 아니라, 내 처음이 너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려 해. 너를 보고 싶진 않지만 여전히 꿈에 나타나고, 아무렇지 않다가 무너지는 순간이 있고, 다른 사람에게서 자꾸 너를 찾긴 하지만 그래도.. 이제 널 사랑하지는 않아서 진심으로 다행이야.


마침내 감정보다 이성이 먼저인 상황까지는 오게 됐으니까. 이제 네가 처음 나한테 끝을 말할 때의 마음과 비슷해진 것 같아. 그래도 가끔 무너지는 건 어쩔 수 없잖아. 이건 사랑과는 별개의 일이니까.


그래서 그렇다고, 다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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