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이렇게 먹어도, 상처가 되는 일들이 있다. 상처에 나이가 어디있고 관계에 정도가 어디 있으며 마음에 표준이 어디 있겠냐마는. 그래도 어느정도 나이가 먹으면 담담해지거나 무뎌지거나 아니면 그저 황폐해져서 마음을 뒤흔드는 모든일이 어느정도는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지 않을까 기대했다. 그 어느정도의 나이에 도달하지 않은 건 줄 알았는데, 가만히 주변 사람들을 살펴보니 그런 나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사람은 어디까지 연약한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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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무심코 기사들을 클릭하다가 사람은 죽어도 뇌가 끝까지 활동해 자기 죽음을 인지하고 세상을 떠난다는 연구 결과 기사를 봤다. 죽음 직전에 자신의 죽음을 인지한 뇌는 마지막 순간에 충격과 경악에 휩쌓일까 아니면 안도할까.
우리집 7세는 벌써 죽음에 대한 공포감을 드러낸다. 요즘 나의 가장 큰 걱정거리다.
안그래도 겁이 많은 스타일인데 자기 신변에 조금만 변화가 생겨도 극도로 두려움을 표출하면서, 엄마 나 혹시 죽는건 아니겠지?!라고 한다. 초코우유를 마시다가 엄마 나 설마 당뇨가 온 건 아니겠지? 티비를 보다가 엄마 눈이 나빠지면 눈이 멀게 되나 ? 급기야는 위인전을 보다가도, 엄마 두창이 뭐야?! 이거 걸리면 죽어? 하고 질병명과 종류에 집착하고 있다. 할머니와 지내는 시간이 많다보니, 유난 스러운 할머니의 건강염려증이 옮은 듯 하다.
아이가 어떤 사람으로 자랐으면 좋겠냐는 질문에 딱 하나만 답해야 한다면 나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담대한 사람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일희일비 하지 않고, 조금 대담하고 담대하게 마음 먹은 일을 망설이지 않고 할 수 있는 사람이였으면 좋겠다. 작은 걱정 속에 파묻혀서 일어나지도 않은 불길한 가능성을 헤아리느라 현재를 놓치는 사람으로 키우고 싶지 않다. 나의 엄마는 아주 심각한 수준의 건강염려증 같은 게 있고 심지어 해외로 나가서 부딪힐지 모를 낯선 위험이 두려워 여행을 앞두면 취소하고 싶단 말을 가기 전날 까지 하는 스타일이다.( 최근엔 아예 두려워서 해외여행은 안가겠다 선언했다) 밥을 먹을 때면, 고기를 입에 넣는 걸 보면 고기가 얼마나 해로운지 계속해서 말해줘야하고, 채소를 먹기 직전엔 상추를 왜 잘씻어야 하는지를, 아이의 일거수 일투족을 살펴보며 살짝 뛰기만 해도 무릎이 깨질 위험성을 경고해줘야 직성이 풀리는 타입이다. 그게 날이 갈 수록 점점 심해지더니 지금은 좀 심각한 수준에 이른 것 같다.
초등학교 때 , 사소한 이유로 질질 짜고 있는나한테 아빠가 진짜 너무 속상한 표정으로 "나는 너가 담대한 사람이면 좋겠다. 진짜 너가 세상을 살 때 늘 담대했으면 좋겠다" 라고 했었던게 기억이 난다. 그 표정이 어찌나 절실하고 속상해보였던 지 그 장면이 아직도 마음속에 남아서, 담대한 사람이 되는게 내 일생의 목표였다. 그건 엄마의 불안이라는 껍질을 깨고 나가 내 세상으로 걸어 나가는 일이였고, 어릴 때부터 담대하지 못하게 키워진 나는 여전히 그게 일생의 도전이자 숙제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양육을 할 때도, 절대로 불안감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사사건건 아이의 길을 염려하지 않으려고 , 그래서 나도 아이도 담대할 수 있기를 염원하며 아이를 키우는데, 아이가 벌써 건강염려증에 걸렸다.
물론 나와 있는 시간만큼이나 할머니 할아버지와 많은 시간을 보내므로 당연히 그런 걱정과 염려에 피폭될거라는 생각을 못한 것은 아니지만, 내가 어렸을 때 그랬던 것처럼 할아버지가 완충제가 되어 주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젊었던 나의 아빠는 이제 나이가 들었고, 그때보다 겁이 많아졌고, 손자는 자식보다 더 작고 여린 존재라 무서운 세상에 내놓기가 더 불안해진 것 같다.
매일매일 커져가는 아이의 불안을 목격할 때마다 어떤 식으로 반응해야 하는 지 잘 모르겠다. 당뇨 아니야 괜찮아. 아니야 그정도로 죽지 않아. 아니야 고혈압같은건 어린이들이 걸리지 않아. 아니야 그런걸론 안죽어. 이런 말들보다 좀 더 대담하고 안심이 되면서도 우아한 말은 없는걸까.
예전에 어떤 책에서, (아마도 그 불안사회? 뭔사회더라 우울사회? 그런 책이였던 거 같은데 ), 진정한 삶의 지향점이 사라지고 생의 스토리텔링이 사라지게 된 사회에서는 생존으로서의 건강만이 신의 자리를 대신한다( 정확하진 않다. 대충 이런식의 내용이였던 것 같은데) 라는 뉘앙스의 분석이 있었던 것 같다. 글쎄 아무리 세상이 바뀌고, 개인은 시대의 산물이라 하더라도 영혼을 가진 인간의 삶이 존엄하기 위해서는 그저 생존에 매몰되어서는 안되는 것 같다. 생존은 중요하고 건강이 없다면 삶의 모든 것이 사라지지만, 건강을 위한 건강, 생존만을 위한 생존이라면, 그 건강이 우리의 삶을 어떻게 구원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내 아이가, 염려에 사로잡힌 채 150년을 건강하게 살다 가는 것보다, 온전히 만끽할 수 있는 삶을, 본인 나름의 의미로 꽉 채울 수 있는 사람으로 살았으면 좋겠다.
그러니까 이걸, 어떻게 해야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