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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이 뭐지

by 기묘염

매 순간, 나는 기다리는 사람이다.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저녁에 눈을 감는 순간까지 기다린다. 아마도 태어나 눈을 뜬 순간부터, 죽어 눈을 감는 순간까지 인생은 늘 기다림으로 요약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살면서는 무언가를 위해. 무언가를 이루거나 되거나, 적당한 시기에 삶의 궤도를 간간히 맞추기 위해 기다렸다. 도장을 깨는 것처럼, 하나를 꺠고 나면 또 다른 기다림이, 그 이후에는 또 다른 기다림으로 연결되는 긴 터널은 언제까지나 끝나지 않을 것만 같다. 잠들기 전에는 내일이 오기를 기다리고 눈을 뜨는 순간부터 또 내일이 오기를 기다린다. 출근시간이 되기를, 출근하고 나면 점심시간을 점심을 먹고 나면 퇴근을. 막상 퇴근하고 나면 아이가 잠들기를, 아이가 잠들고 나면 잘 시간이 오기를. 기다린다.

나의 직업에 대해 얘기하자면 나의 일은 본질적으로 손님을 기다리는 일이다. 내가 아무리 필요한 사람이 나에게 찾아와 일을 보는 거라고 정신승리를 해도, 조직의 입장에선 , 찾아오는 손님을 기다리는 것이 나의 일이다. 조직의 입장은 중요하다. 조직이 규정하는 일을 하기 위해 고용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기다리며 돈을 벌지만, 기다림이 많이 성사되지 않은 하루가 더 행복하다.



둘 이상이 모이면, 필연적으로 관계에 우위가 생기기 마련이다. 대부분 기다리는 쪽이 약자고 기다리게 하는 쪽이 강자다. 나에게 아무 의미 없는 관계에서 나는 주로 우위를 차지하고, 나에게 소중한 관계에서 나는 대부분 약자다. 그것은 애정의 속성이다. 좋은 싫든 더 소중할수록 약자가 된다.


나의 삶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나는 삶에 소중한 것이 많아 자꾸만 약자가 되는 걸까?

아니면 약자이기 때문에 기다리게 되고 기다리기 때문에 소중해지는 것이 많아지는 걸까?


뭣도 모르겠다.

때론 기다리는 일이 한없이 서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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