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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일은 곡선에서부터 찾아와

은하수할머니가 그리는 애틀랜타이야기/공원산책

by 동숙


해밀턴 밀의 아침은 뒷마당 숲을 흔들어대는 우렁찬 매미 울음소리로 시작해요. 하늘과 구름 사이 서늘한 바람을 마냥 기다리기엔 한국으로 돌아갈 날이 짧게 다가와 아쉬운 할미이고, 탐색해야 할 바깥세계가 너무 많아 날마다 신나서 눈을 뜨는 은하수이다 보니 어디든 나가야 했어요. 나 제대로 삐뚤어질 거야, 경고를 할 때 하준이는 미간에 주름 세 개를 보여줘요. 은하수는 숨바꼭질로 집 안을 놀이터로 만들어 시위해요. 그래서 무한긍정에너지를 장착한 무한체력의 은하수를 감당하기 위해 어디론가 나서야 했어요. 은하수처럼 산책중독인 할아버지를 위해서도 필요하긴 했지요.


게다가 아침이면 오픈하는 스카이베이커리에서 갓 구운 빵을, 점심엔 산책길에 만난 식당에서, 저녁엔 그릴에 구운 고기를 흡입 중이라 허리라인이 없는 통바지만 걸치고 있는 할미 때문에 잘못하면 비행기가 뜰라나 모르겠다면서 또 맛있게 먹는 일상이 늘어지니 이런저런 핑계가 많아져 1일 1 산책을 계획하여 시행 중인 요즘이에요.


아침부터 뜨거울 테다, 경고를 날려도 그늘 아래 서늘한 숲바람쯤이야 있지 않겠냐며 호기롭게 집에서 이십 분 거리에 있는 동네 공원 산책길 출발해요! 무모한 걸 알면서도 저지르는 게 또 사람이니까.



포트 야고 주립공원


애틀랜타 포트 야고 주립공원은 은하수 보폭에 맞춰 다람쥐와 노루와 새들도 천천히 함께해요. 하늘을 가린 키 높은 나무들 사이에서 바람길을 만나면 까르르~ 하모니를 이루는 동물들과 은하수의 노랫소리에 숲도 아르르~ 춤을 춥니다.


활엽수들이 넓게 자리 잡은 중장년 산세라선지 다래덩굴이 늘어서 있고, 나무딸기엔 붉은 딸기열매들이 다글다글 매달려있어요. 누구도 손대지 않은 붉은 열매는 저절로 익다가 떨어지고, 저마다 다른 시간을 살아온 나무들이 늘어선 숲은 들어서자마자 저절로 경건해져요. 여름 볕을 이기고 공원산책길을 나서는 사람들이 우리밖에 없어서 어딜 가든 우리 발자국만 또각또각 찍히는 산길이니 포트야고 대신 우리 숲이라고 이름을 부르는 공원입니다.


리틀멀베리파크


은하수와 가장 많이 찾았던 공원은 블루카로 십분 거리에 있는 리틀멀베리파크예요. 한여름 뜨거운 열기를 가려주는 그늘이 많아서 자주 찾기도 하고 느닷없이 동물들을 만나는 행운을 살짝 기대하며 찾는 공원이기도 해요. 커다란 호수를 사이에 두고 숲길과 하늘 향해 맨 얼굴 드러낸 들판이 딱 반반인 공원이라 여름엔 숲길을, 겨울엔 들판길을 걸으며 산책을 즐겨요.



리틀멀베리파크는 어디든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까딱까딱 움직이는 그네가 반기는 언덕길의 둥근 눈웃음, 깊이와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둥그란 호수, 여기저기 제멋대로 늘어서 햇빛샤워 즐기던 달걀형의 초록나무들, 내 뒤를 따라오던 그림자마저 동글동글해요. 뜨거운 햇볕 가리는 내 우산도 눈웃음 흘리는 반달이군요.




한여름 비 오고 난 뒤 느닷없이 만났던 커다란 뱀도 구불구불 온통 곡선이었고요, 후다닥 내 옆을 지나치던 노루의 눈도, 호수 나뭇가에 기대앉아 쉬던 거북이의 등도 그리고 은하수를 보는 내 눈도 동그란 반달이고요.


좋은 일은 곡선에서부터 찾아오더란 할미의 말을 알아듣는지 은하수도 내내 동그랗게 웃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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