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니 남편이 간밤에 좋은 꿈을 꾸었는지 복권을 사러 가자고 했다. 우리는 로또를 사기 위해 집을 나섰다. 기왕이면 로또 당첨이 잘 되는 가게로 길을 정했다.
예년과 다르게 따스한 겨울 햇살이 차 안을 비춘다. “올 겨울은 크게 춥지 않지?”하고 묻자 “그러게. 자기 말대로 제주도 날씨 같네.” 눈이 내리는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기대한 건 아니지만 겨울이라기보다는 이른 봄같다는 생각이 든다.
창 밖으로 풍경들이 세월처럼 흐른다. 봄에 힘차게 싹을 틔우기 위해 땅은 겨울의 여유를 마음껏 누리고 있다. 나무들은 잎을 모두 떨구고 가볍게 겨울을 나고 있다. 지난 주에 갔었던 카페를 지나 비닐하우스가 즐비한 화훼단지를 통과한다. 봄이 그리운 사람들이 많은지 화훼직판장 앞에 자동차들이 늘어서 있다. “우리도 저기 가볼까?” 남편이 선심 쓰듯이 넌지시 말을 하고 나는 “그러면 좋지!” 한다.
자동차는 산과 들을 지나고, 터널을 통과한다. 겨울풍경 속에 우리는 로또복권을 사기위해 한 시간을 달린다. “너무 멀리 왔나?” 로또를 사러 먼 곳까지 가는 게 미안한지 남편이 운을 뗀다. “괜찮아, 바람 쐬는 셈 치지 뭐!” 아무려면 어떤가 싶다. 오늘은 크리스마스니까.
수묵담채화같은 풍경을 지나니 도시의 익숙한 풍경이 눈에 담긴다. 성냥갑처럼 우뚝 선 아파트와 질주하는 자동차들, 도시의 익숙한 풍경은 크리스마스의 특별함과 대비를 이루었다. 크리스마스의 설렘과는 사뭇 다른, 일상적인 도시의 풍경이 이중주를 연주하는 느낌이다. 그 풍경 너머로 길게 줄을 선 차들이 보인다. 설마하고 눈을 의심했는데 로또를 사러 온 차의 행렬이었다.
크리스마스에 로또라니! 신의 축복이 이제는 로또로 향하는 시대인가? 로또명당이라는 자그마한 가게에는 주차 요원도 있었다. 일렬로 줄지어 서있는 차들이 순서대로 들어가고 빠져 나온다. 도로에서 대기하던 우리도 서서히 로또의 행렬에 동참한다.
가게 안에도 사람들이 줄을 지어 서있었다. 만 원짜리 한 장을 들고 일확천금을 꿈꾸는 사람들 속에 우리도 끼어든다. 이 가게에서 1등이 스물 일곱 번 나와서 평일에도 문전성시를 이룬다. 허름한 가게 안은 즉석복권을 긁는 사람들과 로또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1등에 당첨된 사람의 인터뷰가 적힌 벽면을 보자니 작은 기대감이 슬며시 피어올랐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남편은 로또 당첨 후의 삶을 꿈꾸며 한껏 들떠 있다. “30억이 당첨되면 집 한채 사고, 양가 어른들에게도 집 한채씩 사드려야지.” 그러고도 돈이 남으면 두 아들에게 3억씩 주고 형제들에게도 1억씩 준다고 구체적인 포부를 이야기한다. ‘생각만으로 뭘 못해!” 나는 속으로 코웃음을 친다.
“나에게 설마 이런 행운이!” 나는 아직도 로또를 믿지 않는다. 그럼에도 당첨되는 사람들의 행운은 부럽다. 3억이 아니라 3천이라도 당첨이 된다면? 혹시 알아, 나에게도 그런 행운이 올지. 크리스마스는, 그런 꿈을 꾸기에 충분한 날이니까. 오늘만은 나도 욕심을 내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