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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마지막 날이 밝았다

by 소금별

어제와 오늘로 시간을 가르는 것은 무엇일까? 끝없이 펼쳐진 시간의 지평선 위에서 한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마지막 날이 밝았다. 헤어질 준비를 미처 하지 못한 채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는 것처럼 미련이 남는 시간이지만 이제 그만 보내야 한다.


분분하게 떨어지는 벚꽃처럼 2024년과 찬연하게 이별할 시간이 되었다. 지나간 365일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친다. 가족과 함께 한 여행, 내 배움의 흔적과 사춘기 아이들과의 힘겨운 대치 등이 남의 일처럼 느껴진다. 삶이란 이렇게 한바탕의 꿈같은 것일까?


한 해를 정리하며 거실 귀퉁이에 붙여놓은 메모지를 떼어낸다. 이 메모지에는 2024 위시리스트가 적혀있다. 책 읽기 80권, 에세이 20편 쓰기, 미술관 10곳 가기, 자격증 1개 취득이 쓰여져 있다. 뭐든 보이면 이루게 되는 모양이다. 이룰 수 없는 목표라고 나 자신조차 확신하지 못했던 계획인데 올해 난 이 목표를 다 이뤘으니 말이다.


올해 나는 84권의 책을 읽었다. 그중에는 2024, "평택 책을 택하다" 독서 모임에서 함께 읽은 8권도 포함되어 있다. 소설, 에세이 등 다양한 책들이 책 읽기 목록에 차곡차곡 기록되었다. 2016년부터 책 목록을 적기 시작했으니, 올해까지 읽은 책이 664권에 달한다. 책장이 두꺼워질수록 나도 모르게 쌓아온 시간이 새삼 실감이 난다.


어느 작가는 1000권의 책을 읽고 나니 글이 술술 써졌고, 작가로 데뷔했다고 했다. 5년쯤 더 이런 시간을 보낸다면 나도 그런 경지에 이를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은 곧 꿈으로 이어지고, 그 꿈은 오늘도 나를 설레게 하고 있다.


도서관 글쓰기 수업을 들으면서 엔진이 가동되듯 글쓰기를 시작했고 브런치스토리 작가 승인이 되면서 글쓰기 목표도 이루었다. 에세이 출간이 목표지만 섣부른 출간보다는 글이 숙성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언제라도 늦지는 않겠지. 글이라는 끈을 꼭 붙들고 간다면 언젠가는 책 출간이라는 결과물도 내 눈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올해부터 미술관 기록도 꾸준히 하고 있다. 미술관에서 가져온 다양한 팜플렛도 버리지 않고 모으기 시작했다. 제주도 현대미술관에서 변시진 화가의 ‘황금빛 고독, 폭풍의 바다’ 전시회를 본 기록이 있다. 제주도에서 김창열 미술관에도 다녀왔고 대구미술관에서 17세기의 화가라고 불리는 렘브란트의 색다른 그림들도 감상했었다.


배우이자 화가이기도 한 박신양의 기획 초대전인 ‘제4의 벽’ 기록도 있다. 그의 당나귀 그림이 인상적이어서 ‘당나귀’ 그림도 오려서 붙혀두었다. 파주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에서 안두진 개인전도 감상했다. 고 이건희 회장의 ‘어느 수집가의 초대’까지 볼 수 있었으니 올해 미술관 관람 목표는 성공적이다.


자격증은 민간 자격증 3개와 함께 국가 자격증 2개를 취득했다. 유기농업기능사와 도시농업전문가 자격증을 취득해서 지금까지 30개가 넘는 자격증을 보유하게 되었다. 지금에서야 이 자격증을 어디에 쓸 수 있을거라는 생각은 안하지만 내 인생의 기록이니 이대로 소중하게 기억해야지.


2024년 마지막 날이 밝았다. 겸허하게 하루를 보내고 새롭게 밝아올 한 해를 맞아야 하는 날이다. 오늘같은 날에는 밤에 자면 눈썹이 하얗게 샌다고 하지만 여느 때와 똑같은 오늘, 일찍 잠자리에 들 것 같다. 내년에는 활력있는 하루를 위해 내 인생을 괴롭게 할 메기 몇 마리쯤 풀면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또 살아봐야지. 산다는 건 신의 축복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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