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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하루의 기록, 부모의 무게감

by 소금별


엄마는 우리 두 아들이 매일 이렇게 함박 웃는 일만 가득하기를 바란단다.

우애있게, 건강하게, 씩씩하게 잘 자라렴.



연년생 두 아들이 중학생이 되면서 본의아니게 대치하는 날들이 잦아지고 있다. 갱년기 엄마와 사춘기 아이가 싸우면 갱년기 엄마가 이긴다는 말이 있지만 내 경우에는 아니었다. 언제나 지는 것은 많이 사랑하는 쪽이다. 폭격기처럼 한바탕 퍼붓고 나면 마음이 아팠다. 이불을 뒤집어 쓰고 누워 있으면 눈물이 흘렀다. 결국 일어나서 아이 방으로 간다. “엄마가 화를 내서 미안해.” 나보다 키가 커서 위에서 엄마를 멀뚱하게 쳐다보는 아들을 안아주고 토닥여줬다.


아이랑 대치하는 것은 늘 성적 때문이었다. “그 까짓 것 공부 좀 못하면 어때!” 싶지만 결과보다는 과정의 중요성을 알기를 원했다. 초등때는 그래도 엄마의 학습방법대로 잘 따라줬던 아이들이었는데 중학생이 되니 엄마 뜻대로 되지 않았다.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맞다는 건 인정하지만 스스로 공부해주길 바랐었나 보다. 그래도 이만큼은 해주었으면 하는 엄마의 욕심이 나와 아이들을 상처내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 마음을 버리지 못했다.


중2병이 무섭다는데 큰 아들과 이런저런 일들로 갈등을 겪고 나니 작은 아들이 어느새 형을 닮아가고 있었다. 딸처럼 애교있고 싹싹했던 아이가 갑자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낯선 아이로 변했다. 사춘기가 오면 내 아이는 어디가고 다른 아이가 있다는 말을 하는데 내 아이가 그랬다. 귀여워서 엄마, 아빠의 사랑을 샘물처럼 샘솟게 했던 아이들은 어디로 가고 밤송이처럼 까칠해진 낯선 녀석이 내 앞에 서 있었다.


어떤 엄마는 사춘기가 온 아이들과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서 화가 치밀어 오르면 밖에 나가서 무작정 걸었다고 한다. 아이에게 버럭 소리를 지르는 것보다 잠깐 떨어져서 서로의 시간을 갖는 방법이 좋다고 생각했다. 한때 나도 그렇게 했다. 하지만 매번 그렇지는 않았다. 참다가 화산처럼 폭발했고 그럴때면 내 속에 차 있던 것들이 두꺼비처럼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부모인 내가 이것밖에 안되나, 아이와 똑같은 내가 어른인가?’ 하면서 자책도 많이 했다. 부모에게 좋은 글귀를 써서 눈에 잘 보이는 곳에 붙여두었지만 그때뿐이었다. 아이에게 들려줘야 할 좋은 말들, 예쁜 말들을 읽고 또 읽으며 마음을 다잡았다.


오늘도 나는 아이에게 화를 내고 말았다. 아이의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을 보면서 ‘꾹 참아볼 걸!’ 하고 뒤늦은 후회를 해본다. 그런 모습을 보니 가슴이 찢어지듯 아파온다. 부모라는 무게감이 어깨를 짓누르는 날이다. 마음도 충전이 필요하다면 건강하게 충전해서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부모도 실수를 통해 성장한다는 걸 아이들을 키우며 배워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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