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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주양 Aug 29. 2024

1. 너무 지독해 내 사랑은(상)

꽃이 피면 오세요, (부제: 안녕 나의 과거. 가끔 들를게)

1. 너무 지독해 내 사랑은(상)


 벚꽃이 필 무렵 꽃샘추위가 찾아왔고 봄의 찬란함을 앗아갔다. 사람들 발에 짓이겨진 꽃잎. 가시만 남은 채 발가벗겨진 계절. 밝은 옷차림에 여자들이 실망한 얼굴로 빈 가지를 올려다본다. 황량한 봄 앞에 그녀들은 실망했지만 마리는 위로를 받는다. 활짝 피기도 전에 떨어진 꽃잎이 자신 같아서. 짓이겨지고 뭉개진 게 본인 하나만은 아니라서. 피어날 힘도 없이 갇혀버린 꽃 몽우리를 만지며 웅얼거렸다. 피지 말고 죽어라...


 하늘거리고 화사한 옷감들로 몸을 휘감은 사람들이 스쳐 지나간다. 옅은 숨을 내뱉자 씁쓸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보풀이 일어난 카디건 소매 끝을 손가락으로 쥐어뜯으며 공원 중앙에 세워진 시계탑을 올려다본다.


‘8시 30분?’


 사무실에 도착했어야 할 시간이다. 거친 들숨과 날숨을 차례로 뱉어내며 고층빌딩 사이로 달음질쳤다. 빼곡한 빌딩 숲 사이에서 봄 햇살을 한 줌이라도 더 받으려는 사람들이 건물처럼 서있다.


‘왜 여유 있고 난리야?’


 미간을 있는 대로 찌푸린 그녀가 엄한데 화풀이를 하고. 회전문을 지나 로비를 통과해 빈틈없는 만원 엘리베이터에 끼어든다. 삐익 경고음이 울렸고. 무표정한 사람들이 일제히 한 곳을 향했다. 고동치는 심장을 부여잡으며 날 선 눈초리를 애써 모른 척해보지만. 소심 끝판왕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시선이다. 작은 상자에 갇혀 잔뜩 성이 난 사람들은 야유를 날리기 시작한다.


“짜증 나. 뭐야!”

“내려요!”

“양심이 없네.”


 죄송합니다... 마리는 턱 끝을 목에 붙인 채 꽁지 빠지게 도망친다. 진짜 범인 윤지성은 넥타이를 고쳐 매며 승리의 미소를 짓고 있다. 마리 뒤에 모기처럼 붙어 있다가 뒤따라 탄 야비한 윤 과장. 생존에 있어 방법은 중요하지 않다. 밖으로 밀려나서, 범인은 저 사람입니다! 펄쩍 뛰며 진실 고해봐도. 선 안에 사람들은 관심이 없다. 누굴 원망하리오. 끝까지 버티지 못한 자신을 탓할 수밖에... 낙오자는 가방 끈을 짧게 쥐어 잡고 비상구로 몸을 돌린다. 양손으로 철문을 힘껏 밀어 제치자 두꺼운 쇠문이 흔들바위처럼 움직거리다가 겨우 반쯤 입을 벌린다. 마리는 비스듬히 몸을 틀어 문 안으로 다이빙하며 숨도 쉬지 않고 다다닥, 빠르게 계단을 오른다. 조금이라도 속도를 늦추면 더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지겹다는 말을 속으로 수천번을 되뇌었다. 숨이 차올라 목구멍이 타들어가고 심장은 수천 갈래로 찢기는 통증이 밀려온다. 마음은 급한데 몸은 따라주질 않는다. 마치 꿈속에서 허우적대는 것만 같다. 헉 헉 헉, 우욱.. 헛구역질과 쓴 물 그리고 콧물과 눈물. 사단 콤보를 꿀꺽 삼켜내자 인상이 저절로 구겨진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한다. 이마에 맺힌 땀방울이 눈 속으로 침투한다. 두 개의 액체가 힘을 합쳐 볼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린다. 한숨을 폭 내쉬고는 다시 계단으로 발을 옮긴다. 칠 층을 지나 팔 층에 다다랐을 땐 8시 36분. 십 층을 지날 때는 8시 37분. 코를 훌쩍이면서 다시 휴대폰을 확인한다. 머리는 속력을 높이라 하고 마음은 불안하니 시간을 보라 한다. 그 둘은 늘 따로 놀아 불협화음을 일으킨다.


‘다 왔어. 진정해. 후욱 후욱.’


 헝클어진 머리칼을 정리하면서 비상구의 두꺼운 철문을 한쪽 어깨로 밀쳐 낸다. 축축한 손으로 땀을 닦으며 의연한 척 영업팀을 지나간다. 휴게실 쪽을 흘깃 쳐다본 후에 고객 상담실 문패가 보이는 방향으로 종종걸음 쳤다. 좀 전에 휴게실안에 사람들이 꽤 몰려있는 것을 살짝 엿보았다. 선배들이 사무실이 아닌 그곳에 메뚜기 떼처럼 몰려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상담실의 손잡이를 천천히 비틀었다.


‘제발 아무도 없어라’


 반쯤 열린 문 앞에서 엉거주춤한 자세로 웅얼거렸.


“안 들어가요?”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서은진이 퉁명스러운 얼굴로 빤히 내려다보고 있다. 눈을 휘둥그렇게 뜬 마리가 죄인처럼 몸을 굽히자, 턱을 한껏 치켜든 서은진이 비키라는 손짓을 한다.


“언니들 안녕!”


 서은진 특유의 명랑한 인사. 어쩜 저렇게 구김살 하나 없을까. 내심 부러워하며 잔뜩 몸을 웅크리고

뒤따라 들어갔다.


“은진이~내 사람~아침 안 먹었지?”


 크로스백을 벗어 기둥 옷걸이에 사뿐히 걸고 있는 서은진이 정지혜를 향해 눈을 찡긋거린다. 마리는 눈치를 살피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인사를 건넨다.


“조 좋은 아침입니다...”


 그러자 정지혜의 왼팔 박영주가 마리를 흘긋 보더니 입 꼬리를 한쪽으로 올리며 빈정거린다.


“지혜야 좋은 아침이란다...”


 웃으면서 서은진에게 샌드위치를 건네던 정지혜가 차갑게 안색을 바꾸며 마리를 노려본다.


“좋은 아침이겠어요? 시계 보세요! 몇 시예요?”

“정말 죄송합니다. 다시는..”

“시계 보라고요!”


 잔뜩 날이 선 정지혜 앞에서 차렷 자세로 서 있는 마리가 눈알만 굴려 창고 출입문 위에 걸린 디지털시계를 올려 보았다.


“몇 시예요?”

“죄송합니다....”

“아니! 왜 말을 두 번하게 해? 몇 시냐고!”

“8시 40분입니다!”


 마비증상이 손끝에서 팔을 타고 저릿하게 올라온다. 뒷목이 뻣뻣해진다. 자칫하면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아 허리에 힘을 꽉 주었다.


“그런데?”

“네?”

“아이씨, 또 두 번 말 시키네?”

“지각해서 죄송합니다!”


 말리는 시누이 박영주가 한술 거든다.


“얼차려 좀 시켜?”


 이리떼들이 키득거린다. 수치심에 눈을 질끈 감은 마리는 바람 앞에 촛불처럼 흔들린다. 정지혜, 일명 정친년(정지혜 미친년). 오늘따라 입술에 칠한 붉은 립스틱이 더 시뻘겋다. 사슴 한 마리는 너끈히 잡아먹겠다.


“지각할 거냐고 묻잖아!”

“아 아니요! 죄송합니다.”


 싫다. 정말 싫다. 무엇보다 무서운 주인 앞에 꼬리를 감춘, 개 같은 자신이 제일 싫다.


“지혜언니 나도 지각인데..”


서은진이 샌드위치를 한입 베어 물고는 손가락으로 브이자를 그렸다.


“우리 베이비는 결혼 준비로 바쁘잖아.”


 서은진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던 정지혜가 머그컵을 책상에 탁, 내려놓고 마리를 곁눈질했다.


“마리 님.. 정규직 안 하고 싶은가 봐?”

“저러다 또 울겠는데?”


 박영주가 파운데이션을 찍어 바르며 이죽거리는 정지혜를 거든다. 거만한 눈을 내리깔고 자신을 쏘아보는 정지혜 눈의 혐오가 그득하다. 순간 마리의 주책눈물이 부릉부릉, 시동을 건다.


‘안 돼! 여기서 울면 개망신이다.’


 입술을 꽉 깨물자 피 비린내가 역하게 퍼진다.


“업무 준비해요!”


 정지혜가 늘씬하게 뻗은 다리를 한쪽으로 꼬며 선심 쓰듯 말했다. 마리는 임금에게 하사라도 받은 듯, 연신 고개를 조아린다. 그 모양이 우스웠는지 서은진이 풉, 웃음을 터뜨렸다.


“마리님 은근히 웃기지 않아?”


 마리는 비굴한 모양으로 비실비실 자리를 찾아 들어간다. 여기서 광대처럼 한번 넘어져줄까? 정지혜의 혐오보다는 서은진의 조소가 낫겠다 싶은 그녀는 서랍을 열어 가방을 욱여넣고는 책상 쪽으로 의자를 바짝 끌어당긴다. 책상에 명치가 맞닿아 숨쉬기 힘들지만 마음은 편해진다. 사무실 책상, 양 옆으로 높은 가벽이 설치되어 있다. 회사에서 유일하게 마음에 드는 부분이다. 가끔은 파티션을 들고 다니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아무 때나 숨을 수 있는 달팽이나 거북이는 얼마나 좋을까. 마리는 잔뜩 어깨를 웅크린 채 컴퓨터 전원을 켠다.

 

[괜찮아?]


 아르바이트생 미영이 전송한 메신저가 깜빡인다. 미영은 고등학교 친구이다. 작년 12월 파트장은 이벤트 기간에 고객 상담 홈페이지를 관리할 단기 계약직을 구했고, 마리는 자신 있게 미영을 추천했다. 미영은 몸담고 있던 직장에 권태를 느껴 가을에 사표를 던지고 카페나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구하고 있었다. 그런 미영에게 아르미보 상담실은 안성맞춤이었다. 무엇보다 똑똑하고 예쁜 미영이 옆에 있으면 본인의 위상이 좀 높아지지 않을까. 얄팍한 속내와 검은 기대가 마리에게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친구라는 이유로 정지혜와 그 무리들은 미영의 인사도 받지 않았고, 한동안 마리와 싸잡아 투명인간 취급을 했다. 그러나 뭐 저런 애를 데리고 왔냐. 친구 간에 끼리끼리 못났다. 그런 구박은 면하고 있다. 그건 틈을 보이지 않는 똘똘한 미영 덕분이다. 그녀를 보면 마리의 어깨가 치솟는다. 다만 자신의 안위 때문에 베스트프랜을 지옥구덩이로 끌어들인 것은 두고두고 미안한 일이다. 사무실에서 미영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죄책감이 밀려든다. 친구의 마음을 이해하는 미영은 눈을 질끈 감으며 괜찮다는 사인을 보낸다.


[사막 같은 일터에서 오아시스 같은 존재]


 그런 답신을 미영에게 보내고 있을 때, 파트장의 메시지가 요란하게 깜빡인다.


[클레임 명단 케이스별로 나눠서 보내요. 날짜별로 건별로 케이스별로 나눠요! 암튼 보기 깔끔하게! 메일로.]


 마리는 파트장이 보낸 메시지를 뚫어지게 응시한다. 모니터의 구멍이 날 만큼 보는데 도통 이해되질 않는다.


[아니 일주일 명단 말고 한 달 치, 취합해 주세요.]

[아니다! 일주일로. 오케이?]

[메일로 보내지 말고 메신저로 보내요. 그리고 영주님한테는 메일로 보내고!]


 파트장이 연달아 던지는 폭탄을 노려던 마리는 깊게 숨을 들이마신다. 눈 밑이 파르르 떨려온다. 능력 없이 열정만 과다한 파트장. 일 잘하고 싹수없는 정지혜. 모르고 괴롭히는 자와 알고 괴롭히는 자의 차이 일뿐, 마리를 고달프게 만드는 건 똑같이 쌍벽을 이룬다. 날마다 숨통을 조이고 마리의 근본은 스올처럼 깊은 밑바닥에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는 굴지의 대기업 아르미보. 취준생(취업준비생)들의 꿈의 회사. 복지도 좋고 연봉이나 보너스도 높은 편이다. 다만 그런 복지와 혜택들은 마리와 같은 계약직에게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다른 부서는 계약직 안 뽑는다며?”

“인턴은 있지.”

“우리도 인턴을 넣어주지, 왜 자꾸 계약직을 뽑는 거래?”

“우린 부서가 아니야, 영업팀 셋방살이하는 파트야 파트!”

“기분 나빠.”


 잔뜩 인상을 구긴 정지혜가 마리를 흘겨본다. 고객 상담실이 천대받는 것은 모두 마리 때문이라는 듯.


“고객들 뒤치다꺼리만 하는 업무라 이거지.. 그러니까 계약직으로 돌려도 된다는 거 아니겠어?”

“뒤치다꺼리가 얼마나 힘든 건데.. 칫”


 최종 면접 날, 파트장이 말했다. 일 년마다 정규직 심사가 있으니 열심히 하라고. 다음 주가 그 일 년째 되는 날이다. 정규직이 되면 지금처럼 비닐 케이스에 넣은 종이명찰이 아닌 플라스틱 사원증이 나온다. 그건 프리페스 같은 거다. 계열사 매장에서 직원할인을 받을 수 있고. 점심시간에 식권을 내지 않아도 밥을 먹을 수 있다. 마리는 그 플라스틱을 간절히 원한다. 연두색 플라스틱이 손에 들어오는 날, 보현에게 제일 먼저 안겨줄 것이다. 높아진 등급을 에게 당당하게 알릴 것이다.


‘기다려라! 정보현.’



못다 한 사랑의 이야기를 품고 있을 그대에게.
오늘도, 꽃이 피면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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