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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주양 Aug 29. 2024

프롤로그

꽃이 피면 오세요, (부제: 안녕 나의 과거. 가끔 들를게)


프롤로그


 안녕? 나는 산 전체가 복숭아나무로 가득한 시절부터 이곳에 있었어.  봄이면 달큰한 향기가 바람 속에 스며들고 온 마을은 복사꽃으로 물들었지. 언덕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노라면, 강물을 뒤덮은 꽃잎들이 춤을 추는 것 같았어. 나도 모르게 출렁출렁 어깨를 흔들었지 뭐야?


 지금은 복숭아나무 대신 아파트 숲이 생겨났고 기다란 빌딩들이 줄 지어 심겨있어. 볼 때마다 얼마나 갑갑하고 한탄스러운지 몰라. 장터에 가득했던 산해진미. 것 또한 지금은 사라진 낭만 중에 하나지. 콩고물이 잔뜩 묻은 인절미, 구름보다 폭신한 손 두부, 갓 잡아 신선한 고등어. 지금은 인절미도 두부도 고등어도 그때 그 맛이 아니야.


하아.. 옛날이 그립구먼.


 아 참 내 정신 좀 봐! 가장 중요한 자기소개를 안 했네? 이 귀하신 몸은 말이야. 언덕마을 제일 꼭대기에서 으리으리한 주막을 하고 있다네. 


 지금은 파리만 날리고 있지만 예전에는 그야말로 문전성시였다고!


 과거시험을 보러 가던 양반들도. 보따리장수들도. 우리 주막을 거치지 않고는 못 배겼지. 굴뚝에는 연기가 꺼질 날이 없었고. 방마다 아랫목을 차지하려는 사람들로 난리였어. 지친 나그네들의 핫플레이스였다고! 그뿐인 줄 알아?


 때는 1407년, 굵은 눈발이 휘날리던 추운 겨울이었지.. 통통하게 잘생긴 사내아이가 주막을 찾아왔어. 소년은 국밥을 곱빼기로 먹으면서 말했지.


“사람을 살리는 글을 만들겠노라..”


 소년은 턱수염이 거뭇한 어른이 되어서도 종종 주막을 들렀어. 소년이 오는 날은 가마솥에 밥을 평소보다 두 배를 지어야 했지. 그래도 밥값을 늘 곱절로 내고 가니, 우리야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었어. 그 양반이 화통한 데가 있거든... 어쨌든! 뱃고랑이 참으로 컸던 그 소년을 인간들이 뭐라 부르는 줄 알아?


세 종 대 왕!


 어때? 깜짝 놀랐지? 뭐? 뻥치지 말라고? 허! 참... 지금 내가 말하는 건 빙산에 일각이야! 우리 주막에 비밀이 하나 있거든? 그건 말이야.... 마음이 가장 많이 머물러 있는 시간으로 보내주는 타임머신 같은 게 있어..


“복실아!”

“왜! 주막 홍보하는데!”

“밥 안 먹어?”


 마지막으로 한마디 더 할게.


 복사골이 도화동이 되었다고 해서!

나무 대신 아파트 숲으로 가득하다 해서!

간판이 낡아서 글자 하나 지워졌다 해서!

복사골 주막이 사골 주막이 되었다 해서!

손님 하나 없이 파리만 날리고 있다 해서!      


 주막에 능력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옹...


 그러니 인간들 보아라!


 허기지냥?

지치고 고단하냥?

행복을 찾고 싶으냥?

아니면 돌아가고 싶은 과거가 있냐 말이당!

그러면 와라!

사골 주막.

아니! 복사골 주막으로!      


“밥상 치운다!”

“무엄하다옹! 카르릉”     



당신의 상처를 안아주고 싶습니다.


오늘도, 꽃이 피면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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