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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주양 Aug 30. 2024

2. 마지막은 덤덤하게(상)

꽃이 피면 오세요, (부제: 안녕 나의 과거. 가끔 들를게)

 the last story   올해 봄은 꽃이 채 피기도 전에 저물었고 갑자기 추워졌다가 한 여름처럼 후덥지근하다. 그와 함께 하지 못한 봄날이 아쉽게 흘러간다. 보현아, 사랑해... 마리는 희미한 말을 허공에 내뱉는다. 듣는 이 없이 흩어질 것을 뻔히 알면서...    


2. 마지막은 덤덤하게(상)


 [사지 마세요 입양하세요.]


 ‘마당 있는 집이면 좋은데.. 안 돼! 밖에서 키우면 어떡해? 녀석이 이불속을 얼마나 좋아하는데..’


 반려견 입양 사이트에는 키우겠다는 글보다는 키우라는 공고가 더 많다.


[배변훈련 완벽합니다. 순하고 친절합니다. 카카를 입양하시는 분께는 소정의 돈을 드리겠..]


 입양글을 올리다 말고 바닥에 늘어놓은 통장들에 눈을 돌린다. 입사하고 만든 적금통장. 결혼자금으로 쓰려고 했는데. 심플한 드레스와 고급스러운 턱시도. 누가 봐도 꿀리지 않는 예식장 저렴한 식대까지 다 알아봤는데...


 푹신한 이불 위에서 대자로 누워 코를 고는 카카를 안타깝게 바라보다 눈시울을 붉힌다. 이내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린다. 요즘은 누가 건들기만 해도 봄의 꽃망울처럼 톡, 터져버린다. 울음을 참으려 숨을 멈춰보지만 오히려 역류하는 하수처럼 솟구칠 뿐이다. 


 어느새 카카가 무릎 위로 올라와 뺨을 핥는다. 마리의 흐느낌이 거세질수록 녀석의 입은 분주해진다. 착한 강아지는 마리의 슬픔을 열심히 먹어준다.


“너를 어쩌니..”


 카카... 마리의 오빠 정욱이 엄마에게 선물한 수컷 시츄 강아지다. 어떤 사정으로 몇 달 전부터 마리와 살고 있다. 제 작년 마리의 오빠가 결혼을 했고 작년 여름 조카가 태어났다. 배꽃처럼 예쁜 아기는 카카만 보면 기절할 듯 울어댔다. 그래서 정욱의 식구들이 오면 카카는 베란다로 쫓겨나기 일쑤였다.


 조카가 태어나기 전 사랑을 독차지했던 카카는 유독 정욱을 잘 따랐는데, 그래서인지 새언니와 조카만 보면 짖었다. 새언니와 아기가 등장하고 정욱이 집으로 돌아오지 않으니. 으르렁거림으로 서운함을 표현하는지도 모른다.


 그런 카카를 자식보다 사랑할 수 없었던 정욱은 카카가 이빨을 드러낼 때마다 손찌검을 했고, 마리의 아버지 기섭은 카카에 목덜미를 잡고 베란다로 집어던졌다. 사랑받고 싶은 강아지는 깨갱, 거리며 베란다 구석으로 몸을 숨긴다. 파티션 사이로 얼굴을 감추는 마리처럼 말이다. 자신의 모습과 오버랩 돼서 인지, 유독 그날은 참기 어려웠다. 마리는 기섭을 향해 소리를 높였다.


“왜 집어던져요?”

“사람보다 개가 중하냐? 애 물면 어쩔 거야?”


 성난 기섭의 눈썹이 부메랑처럼 휘어진다. 익히 알고 있는 성미로 보아 곧 마리를 향해 날아와 서슬 퍼렇게 꽂힐 것이다.


“저게 지 애비를 아주 잡아먹으려고 하네?”


 으앙, 조카가 울기 시작했고 어쩔 줄 몰라하는 새언니 옆에서 오빠가 위협적인 얼굴로 마리를 노려본다. 밥상을 차리던 마리의 엄마 영자는 평소와 같이 무심한 눈빛으로 흘긋 보더니, 나 몰라라 몸을 돌린다. 마리는 콧방귀를 한번 뀌고는 베란다로 들어가 카카를 안고 나왔다.


“개새끼는 왜 들고 나와!”

“집에 데려갈 거야!”


 새언니 원영이 마리의 팔을 붙들고 울먹였다.


“아가씨 지우는 방에 두면 되니까. 이러지 마요.”

“언니 미안해요. 나중에 연락드릴게요.”

“그럼 밥 먹고 같이 가요. 집까지 데려다 줄게요. 나를 봐서라도 밥 먹고 같이 가요. 맛있는 커피 사줄게요. 아가씨 없으면 나 불안해하는 거 알잖아요. 내가 아가씨를 얼마나 믿고 의지하는데요, 오빠는 집에 가면서 혼내줄게요"


 마리는 새언니의 만류에 괜히 울컥해진다. 덩달아 새언니의 눈 밑도 빨갛게 달아오른다. 이 집구석에서 처음 받는 공감이라는 낯선 감정... 원영의 위로에 전봇대처럼 굳게 박힌 몸이 느슨해진다. 마음을 돌리려던 차, 굶주린 악어떼들이 검은 입을 크게 벌린다.


“잘난 거 없으면 시집이라도 가던가. 엄마 저거 노처녀 히스테리 아닌가?”

“노처녀지.. 선도 안 들어와.”

“계집애가 고분고분하길 해? 부모를 개똥으로 아는 년을 어떤 바보가 데려가!”


 빠져나갈 구멍 없이 각 꼭짓점을 지키고 있는 핏줄들. 마리를 삼각형 중앙에 빠뜨려서 자아를 짓밟고 뭉개버리곤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만드는 버뮤다 삼각지대. 그녀를 제외한 식구들은 합이 잘 맞는 공동체다. 천덕꾸러기에 미운오리새끼 이마리는 삼총사를 노려보며 다짐했다. 당신들이 저지른 만행을 잊지 않겠노라고... 언젠가는 똑같이 되갚아주겠노라고.



 1998년 용산 국제빌딩 앞에서 식당을 했던 마리의 부모님에게는 늘 음식과 땀으로 찌든 냄새가 났다. 마리는 그 냄새를 맡으면 괜스레 서글퍼졌다.


 집안에서 쌈닭 밉상 눈엣가시 었지만. 공부 잘하고 입속에 혀처럼 구는 오빠와 늘 비교대상이었지만.  

그래서 늘 억울하고 서러웠지만. 마음 한편에는 고단한 부모님이 불쌍하고 안쓰러웠다. 그래서 가장 잘할 수 있는 일로 사랑을 표현했는데, 그건 청소였다.


 화장실도 없이 손바닥만 한 부엌이 딸린 방 한 칸짜리 초라한 집이라도 열심히 쓸고 닦았다. 쪽 창문에 손수건을 달고 낡은 벽지에 그림을 그려 곰팡이를 가렸다.


 아이고 우리 딸 최고네!, 부모님의 칭찬을 기대하며 열심히 치우고 꾸몄다. 그러나 그런 환상을 와장창 깨버리는 빌런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마리의 혈육, 이종원이었다.


 차곡차곡 개어놓은 이불 넘어뜨리기. 여기저기 코 푼 휴지를 던져놓기. 방금 닦아 놓은 방에 신발 신고 들어오기. 그럼에도 마리는 치미는 부아를 참아내고 다시 치웠다. 고단한 엄마가 활짝 웃기를 바라며... 


 그러나 정욱은 부모님이 집에 들어오는 시간에 땡! 하고 맞춰 어질렀다. 손쓸 수도 없게 여기저기 옷을 벗어놓고. 발 디딜 틈도 없이 과자봉지와 부스러기, 책과 노트, 코 푼 휴지와 수건을 전시해 놨다. 참다못한 마리는.


“미친놈아! 다 치워놨는데 무슨 짓이야!”


 정욱은 반쯤 돌은 눈으로 마리에게 달려들었다.


“야 너 지금 뭐라고 했어. 다시 말해봐!”


 어린 마리의 머리채를 잡고. 눈도 뜨지 못할 만큼 싸대기를 날렸다. 일초에 한 대씩 오 분 간격으로 얼굴을 가격하고 주저앉으면 발로 밟았다. 마리가 얼굴을 가리자 머리채를 들어 올려 왼쪽 눈을 내리쳤다. 별이 번쩍, 풀썩, 드러눕는다. 잠시 후 쏴아 차가운 물이 코와 입으로 들어온다. 콧등이 시큰하다.


“씨팔년. 썅년. 병신 같은 년. 개 같은 년. 나가 뒤져! 개 같은 년아! 쓰레기 같은 년아!”


 쿨럭쿨럭 기침을 하며 구석으로 몸을 숨기는 마리를 쫓아와 욕을 날리는 정욱은 이미 폭력의 맛을 알아버린 잔인한 어른의 모습이었다.


“어머! 무슨 일이야? 이종원! 뭐 하는 거야?”


 마침내 기다리고 기다리던 구원자가 등장했고. 정욱은 사나운 주먹질을 멈췄다. 마리는 부모님을 향해 코피와 콧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애원하듯 들어 올린다.


“엄마앙~ 이마리가 나 숙제하는데 갑자기 휴지 집어던지면서 미친놈이라고 했어! 쟤가 나 오빠라고 안 하고 만날 반말하고 욕한단 말이야.”


“이마리! 또 오빠한테 욕하고 반말했어?”


“어릴 때부터 버릇을 잘못 들였어. 이젠 글렀어. 저 승질머리 어떻게 고칠 거야. 저번에도 말이야. 비염 때문에 코피 나는 거니까 코에 소금 넣고 있으라니까. 안 들어 처먹어! 부모를 개똥으로 아니까!”


“으이구, 이종원! 네가 물러 터졌으니까. 동생이 우습게 알지! 앞으로 반말하고 욕하면 죽지 않을 만큼만 때려! 저거 버릇 고쳐야지!”


“엄마 배고파..”

“엄마가 김치찌개 끓여놨잖아 안 먹었어?”

“고기가 없잖아!”

“삼겹살 구워줘?”

“응! 많이 많이!”


 정욱은 찰흙처럼 뭉개진 마리를 툭, 치면서 엄마의 허리를 와락 껴안았다. 폭포처럼 흐르던 코피가 뚝 그치고 서러운 눈물이 터져 나왔다.


“뭘 잘했다고, 울어?”


 그날 모두가 잠든 새벽녘, 마리는 조용히 일어나 부엌으로 나가 식칼로 자신의 목을 겨눴다. 그러나 죽는 건 쉽지 않았다. 어린 마리에게 스스로를 죽일 수 있는 독기는 없었다. 죽기로 결심한 마리의 나이는 고작 열 살이었다.


 처음 죽음을 결심한 그날 이후 마리는 집에서 입을 다물었다. 변태 아저씨에게 끌려가 성추행을 당했어도. 담임이 산수 문제를 못 푼다고 칠판 앞에서 옷을 벗기고 뺨을 때렸어도. 잘 사는 애들이 가져온 헌 옷을 반전체가 다보는 앞에서 소녀가장 순이와 마리에게 선심 쓰듯 나눠줬어도. 절대 말하지 않았다.


“새언니 이 집에서 저는 외딴섬이에요, 저들은 허락도 없이 쳐들어와 나무를 베고 집을 지어요. 억울해서 지르는 비명을 지랄이라고 불러요. 다시는 저 사람들 안 보고 살려고요.”


“뭐? 저들? 저 사람들? 저 싸가지 없는 년이!”


 노발대발, 조롱, 무관심과 동정심 각기 다른 감정들이 뒤섞인 그곳에서 카카를 안고 호기롭게 탈출했다. 택시비를 들고 마중 나온 보현은 그런 마리를 다행히 이해해 줬고, 두려움에 휩싸인 카카를 두 팔 벌려 반겨줬다. 마리는 카카에게 최선을 다하기로 마음먹었다.


 보란 듯이 잘 키워야지!  매일 아침저녁 두 번의 산책을 시켰고. 비싼 사료와 간식을 사주었다. 그렇지만 카카는 도무지 기운을 내지 않았다. 인기척만 들려도 토끼처럼 귀를 쫑긋거리며 뛰쳐나가 대문 아래에 코를 박고 울었다. 한 달이 넘도록 그랬다. 그러나 가족들 중 그 누구도 슬픈 강아지의 안부를 묻지 않았다.


“바보야! 그런 인간들 잊어! 이젠 보현이 형이랑 누나가 보호자야. 많이 사랑해 줄게. 믿어라 좀..”


 마리 눈을 빤히 올려다본 카카는 말을 알아들었지, 더 이상 대문 앞에 앉아 있지 않았다. 밥도 잘 먹고 산책 시간이 되면 기가 막히게 보현과 마리를 깨웠다. 카카는 그녀를 믿고 다시 사람에게 뿌리를 내렸다.


“카카야 나는 약속을 지킬 수가 없어..”


 또다시 버림받을지도 모르는 작은 강아지는 해맑은 눈으로 그녀의 눈물을 받아먹는다.


“나를 미워해. 용서하지 마.”


 카카는 머리를 갸우뚱거리며 마리를 바라본다.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아들으려 노력하는 것처럼 마리에 눈을 똑바로 응시한다.


 미워하는 방법을 모르는 작은 강아지는 절대 알아듣지 못할 미움. 용서라는 단어. 애초부터 미워하질 못하는데 용서할 게 있겠는가. 사람에 대한 사랑을 지켜내는 바보 같은 생명체.


“미안해.”


 그때였다. 문밖에서 덜컹이는 소리가 들려온다. 카카는 동그랗게 말았던 몸을 풀고 미어캣처럼 몸을 세웠다. 보현이 떠난 후 카카는 다시 대문 지킴이가 되려 한다. 사실 얼마 전까지 마리도 그랬다. 철컹 소리만 들려도 가슴을 철렁이며 맨발로 뛰쳐나갔다.


“바람소리야..”


 실망감을 애써 누르며 카카를 안아 포동한 엉덩이를 토닥여 진정시켰다.


“집에 있니..”


 카카가 우렁차게 짖으며 높은 문턱을 넘어 좁은 마루를 가로질러 마당으로 뛰어내렸다. 그런 녀석을 멀뚱히 바라보고 있을 때, 사무치게 그리운 목소리가 선명하게 전해졌다.


'바람소리가 아니었어...'


 카카가 열어놓고 간 문 틈 사이로 보현의 실루엣이 어른거린다. 그가 나의 보현이.. 마당 한가운데 서 있었다. 꿈인지 현실인지, 어리둥절한 얼굴로 마당으로 발을 내딛는다. 당장 달려가 안겨야 하는데 도무지 걸음이 떨어지질 않는다. 한동안 그렇게 서 있었다.


 대신 보현의 발밑에서 카카가 낑낑거리며 안아 달라 보챈다. 그는 쳐다만 볼뿐 손을 내밀어 쓰다듬지도 팔을 뻗어 안아주지도 않는다. 약이 오른 녀석이 보현을 향해 짖기 시작한다.


 그래도 보현의 손은 꿈쩍하지 않는다. 그의 눈동자가 얼음처럼 미끄러진다. 사랑을 구궐 하는 카카에게서 마당에 널어놓은 티셔츠로 깨진 장독대로 그리고 말없이 서 있는 마리에게로. 그의 시선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마리에게 머물러 옮겨지질 않았다. 그의 시선은 오롯이 마리의 것이었다.


 보현의 시선은 마리의 에너지였다. 싫은 일을 하게 하는 힘. 귀찮아도 성실하게 가꾸게 하는 힘. 좀 더 사랑받기 합당한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는 힘. 마리는 부단히 애를 썼다. 보현에게 사랑받기 위해. 옷을 하나 골라도 보현이 좋아할지를 먼저 생각했다. 그런 마리의 노력은 그녀를 초조하게 만들었고 호젓하게 만들었다. 사랑받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은 점점 괴로워진다.


“잘 지냈어?”


 보현이 먼저 입을 열었다. 마리는 애써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보현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검게 그을린 피부. 깊은 눈매. 웃을 때마다 드러나는 가지런한 치아. 보고 있어도 보고 싶다는 말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고 있는 건 마리 자신일 것이다.


“밥 먹자.”


 밥을 먹자고? 희미한 기대를 품으며 생각했다. 심기일전할 일이 있을 때 외식을 하자고 했던 보현. 다시 잘해보자는 말일 수 있다. 매가리 없 마리의 눈이 반짝이기 시작한다.


“뭐 먹고 싶은 거 있니..

보현이는 뭐 먹고 싶은데?”


 마리가 되묻자, 보현은 차갑게 입을 다문다. 화를 참을 때 나오는 특유의 표정. 마리는 긴장한 표정을 지으며 신발끝으로 바닥을 톡톡 치다가 상체를 좌우로 조금씩 흔들었다.  후우,  보현의 짧은 한숨소리가 심장에 날카롭게 꽂힌다. 보현은 캡모자 벗어 내려온 앞머리를 쓸어 넘긴다.


 그의 마음에 들기 위해 애를 쓸수록 맞지 않는 퍼즐조각 같다. 마리는 거북이처럼 목을 쭈욱 빼고 손가락만 꼼지락거리다가 정답을 알아낸 학생처럼 크게 외쳤다.


“닭 한 마리 칼국수! 네가 좋아하잖아. 거기 가자!”


 보현은 모자를 고쳐 쓰고는 대문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마리는 바짝 매달리는 카카를 야멸차게 떼어놓고 대문을 쾅! 닫았다. 깡깡깡 우우우우, 굳게 닫힌 대문 안에서 구슬피 우는 강아지를 모른척하고 보현의 뒤를 종종걸음으로 따라갔다.



내가 사라질 만큼 사랑한 적 있나요.
오늘도, 꽃이 피면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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