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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주양 Aug 30. 2024

2. 마지막은 덤덤하게(하)

꽃이 피면 오세요(부제: 안녕, 나의 과거. 가끔 들를게)

 the last story 보현은 모자를 고쳐 쓰고는 대문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마리는 바짝 매달리는 카카를 야멸차게 떼어놓고 대문을 쾅! 닫았다. 깡깡깡 우우우우, 굳게 닫힌 대문 안에서 구슬피 우는 강아지를 모른척하고 보현의 뒤를 종종걸음으로 따라갔다.


2. 마지막은 덤덤하게(하)


“카카가 많이 기다렸어..”


 보현은 별말 없이 언덕을 내려간다. 마리보다 몇 걸음 빠른 속도로... 언젠가부터 그의 뒷모습을 보는 날이 많아졌다.


“많이 반성했어. 단거 그만 먹고 운동하라고 했는데 말 안 듣고. 젓가락질도 안 고치고..”


 갑자기 멈춰 선 보현이 차가운 눈빛으로 마리를 내려다본다. 심장이 쿵하고 떨어진다.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마리는 안절부절 발끝만 쳐다본다. 무슨 말이라도 해주면 좋겠는데.. 보현은 눈빛으로 불만을 쏟아내는 것 같다. 그게 마리를 미치게 만든다. 너에게 이젠 말도 아까워... 그런 비참함을 안겨주는 보현의 나쁜 버릇. 얕은 한숨만 내뱉고 발길을 돌린 그가 다시 언덕을 내려간다. 오직 자신의 속도에 맞춘 걸음으로...


“요즘 회사에서 인정받고 있어. 정규직 될 것 같아.


 반응이 없어도 마리는 계속 조잘거리며 그의 뒤를 따른다. 그러다 갑자기 보현이 멈추면 그녀도 멈췄고. 그가 빨라지면 마리는 종종걸음 쳤다. 흡사 보현의 그림자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그에게 보내는 모든 것이 벽에 부딪쳐 산산조각이 나는 것 같지만 이대로 끝낼 수 없다. 너를 영원히 사랑하겠노라... 

무심한 그의 등에 대고 다짐해 본다. 그런 애끓는 말들을 혀 밑으로 숨기며 마포만두를 지나 닭 한 마리 집으로 들어가는 마리의 어깨가 잔뜩 굽어졌다.


“여기 칼국수 둘이요”


 마리가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 있을 때 보현이 입을 열었다.


“이젠 받아들여. 우리 끝났어.”


 그는 모자를 벗어 머리칼을 쓸어 넘기고는 다시 비스듬히 쓸 것이다. 그리고 곧장 코를 만지작거리겠지. 보현의 관한 건 십계명처럼 외우고 있다. 마리는 애써 딴 청을 부리며 꺼져가는 호흡을 붙들었다.


“상처 주고 싶지 않았는데 왜 이렇게까지 만드니...”

“나 월요일에 정규직 돼.”


 보현이 황당한 눈으로 마리를 쳐다본다.


“너에게 도움이 되는 여자가 될게.”


 보현은 이내 인상을 구기며 눈을 감았다.


“그만하자. 힘들다.”

“너 없으면 난 아무것도 아니야.”

“다른 사람 생겼다고!”


 보현의 음성이 메아리친다. 몇 번이나 반복해서 벽에 튕겨져 마리의 귀에 내리 박힌다. 앞치마를 가슴까지 둘러맨 아주머니가 태연한 얼굴로 겉절이와 칼국수를 테이블에 올렸다.


“좋아하는 사람 생겼어. 알고 있었잖아. 일부로 네 앞에 지갑 펼쳐놨어. 지갑 안에 세정이 사진 보라고..”


 세정이.....


“휴대폰도 뒤져봤잖아. 일부러 잠금 풀어놨어. 사진첩에 세정이 보라고.”


 세정이.....


 보현은 세정이라는 이름을 부를 때마다 음성이 다정해진다. 예전 그녀의 이름을 부를 때처럼 말이다.


“왜 요즘 잔소리 안 해? 젓가락질 똑바로 하라는 잔소리. 운동하라는 잔소리 왜 안 해?”


 보현은 대답 없이 칼국수를 접시에 덜어 마리 앞으로 내밀었다. 이렇게 다정한 몸짓인데 그는 거짓말을 하는 게 분명하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아픈 말들을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러나 마리를 향한 보현의 눈은 차갑고 아무것도 없다.


“올 신년 때 부장님 소개로 만났어. 한빛 초등학교, 교사. 동화작가 되는 게 꿈인 괜찮은 여자야. 처음에는 별 감흥이 없었어. 그래도 부장님 보기 좀 그래서 몇 번 만나고 그만두려 했어. 그런데 세정이가 많이 적극적이었어. 집에도 몇 번 찾아온 적 있고... 그러다 보니 정이 들었고... 지금은 같이 살고 있어.  9월에 결혼하기로 했어. 은수나 다른 사람 통해서 듣는 것보다 내가 직접 말해줘야 된다 생각해서. 찾아온 거야. 마리야... 이젠 받아들이자. 우리가 이렇게 된 건 누구의 탓도 아니고... 그냥 인연이 아니어서야..."


 삐이........ 이명소리가 울려 퍼진다. 마리는 한쪽 귀를 붙잡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도망치듯 식당을 빠져나왔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먹자골목을 지나 곧장 언덕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랐다. 중턱까지 올라왔을 때 뒤를 돌았다. 보현은 따라오지 않는다. 그의 말처럼 마리는 알고 있었다. 자신을 피해 몰래 받던 전화. 휴대폰 화면에 뜨던 여자의 이름. 지갑 속에 꽂혀 있던 낯선 그녀의 증명사진. 점점 멀어지던 그의 시선. 충분히 이별을 말해주고 있었다. 절대 내 것이라 착각하고 있던 것들이 다른 곳을 향해 흐르고 있었다. 회피하지 말고 냉정하게 받아들였다면 지금보단 덜 비참했을까? 그렇지만 보현아 그런 말로 어떻게 이별을 말하니... 손등 위로 꽃잎 같은 눈물이 내려앉는다. 그와 처음 만난 날도 꽃잎이 나비처럼 날아다녔는데.. 그때의 나는 드라마 속 주인공 같았는데.. 사랑 속에서 충만하게 피어나는 꽃 같았는데.. 


 모든 것이 어리석은 착각이었다. 비참하게 버려질 운명을 알리는 신호. 너도 나처럼 떨어질 거야... 알 수 없는 곳을 날아다니다가 사람들 발에 짓이겨 뭉개질 거야... 꽃잎은 그런 말을 하고 있었다. 눈앞이 안개로 자욱하다. 꽃잎이 희뿌옇게 날아다닌다. 언뜻 춤을 추는 것도 같다. 아른아른 흩날리는 것이 눈물인지 꽃잎인지 알 수가 없다. 하하 나 죽어야 되네?, 마리는 언덕 아래를 내려다보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한강의 수평선 위로 노을이 황홀하게 지고 있다. 이곳과 저곳이 다른 세계인 것처럼 느껴진다. 지옥에 갇혀 천국을 건너보는 것은 얼마나 괴로운 일인가... 그가 다른 여자와 결혼을 한단다. 더 명확한 경계선이 그어지겠구나. 그의 천국과 나의 지옥이. 신의 축복을 받은 그들은 마리를 초대하지 않는다. 마리의 공간에는 단 한 방울의 구원도 없다. 타는 갈증과 이를 가는 탄식뿐이다. 머리 위에 드리워진 저주가 날마다 쫓는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조용히 숨을 거두는 것.


[예상대로 저의 인생은 실패입니다. 죄송합니다. 부디 카카를 잘 키워주세요. 또 제 욕을 하시겠지만. 단 한 번만 불쌍히 여기시고. 카카를 구박하거나 때리지 마세요. 마지막으로 부탁드립니다.]


 그래, 유서는 이렇게 남기는 게 좋겠다. 이 정도면 부모님도 측은지심으로 카카를 돌봐 주겠지. 그리고 나를 사랑하지 않은 걸 후회하겠지.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나의 죽음 앞에 탄식하기를...  순간 마리의 등에 날개가 돋은 듯 자유를 느낀다. 이젠 회사에서 비굴하게 고개 숙이지 않아도 된다. 아침마다 지옥철을 타지 않아도 되고. 일요일 저녁때 월요일을 생각하며 한숨짓지 않아도 된다. 무엇보다 지독한 사랑을 끝내고 쉼을 얻을 수 있다. 그러고 보니 단 한 번도 자신의 마음을 쉬게 한 적이 없다는 걸 깨달은 마리의 얼굴에서 알 수 없는 웃음이 새어 나왔다.     



 집 근처에 다다르자 대문 앞에 두 세 사람이 웅성거리고 있는 게 보였다. 카카가 굳은 결의로 목청을 뽐낸 모양이다. 담 낮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동네. 옆집 할아버지 기침소리까지 안방에서 들리는 언덕 집. 그럴 때면 보현과 숨을 죽여 키득거리며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 썼던 기억이 바람처럼 스쳐간다. 여름이면 콩물에 국수를 말아 먹던 쪽마루. 배를 깔고 낮잠 자던 작은 평상. 너를 기다리던 집 앞 언덕 길. 같이 바라보던 한강의 윤슬. 그 많은 걸 가슴에 품고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는 없다. 모든 대화의 끝은 너였고... 생각이 꼬리를 물고 지구 한 바퀴를 돌아도 종착지는 늘 너였다. 온통 그로 물들어 본래의 색을 잃어버린 마리는 자신의 선택이 최선이라는 생각을 하며 집 앞으로 걸어갔다.


“죄송합니다. 저희 집 강아지가 많이 짖었죠?”

“아이고 새댁 왔네 왔어! 여여 이 집 강아지 아니여?”


 느린 몸을 들썩이며 요란하게 손짓하는 방울이 할머니 곁으로 다가서자. 옆으로 쓰러진 오토바이와 한쪽 다리를 붙들고 주저앉은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앞에 작은 강아지가 얌전히 누워있다. 무슨 잠을 길 한복판에서 미동도 없이 잘까.. 멀뚱하니 선 채로 생각했다. 그런데 왜 자꾸만 등줄기가 서늘해질까..


“새댁 강아지 맞아?”


 하얀 바탕에 등을 덮은 밤색 털. 앙증맞게 납작한 얼굴과 동그랗고 말간 눈.


“닮긴 했는데. 아니에요! 카카는 집에 있는걸요! 대문도 닫혀있는데 무슨 수로 나오겠어요?”


 마리는 펄쩍 뛰며 두 손을 허공에 내저었다. 비장한 얼굴로 주머니를 뒤져 열쇠를 꺼내 들었다. 보세요! 우리 집 문은 이렇게 굳게 닫혀있다고요! 여 보란 듯 구멍에 키를 꽃아 신경질적으로 비틀었다. 쾅! 온 힘을 다해 대문을 열어젖히고 카카의 이름을 크게 불렀다.


“카카야! 누나 왔어!"


 마리는 배에 힘을 꽉 주고 다시 한번 강아지의 이름을 불렀다. 녀석 혼자 두고 갔다고 단단히 토라진 모양이다. 잡초가 무성한 화단, 창고, 안방에 이불속까지 들추었다.


“여집 개가 맞다니께? 대문 아래로 나온 겨...쯧쯧”


 방울이 할머니가 미간을 찌푸리며 마당으로 들어섰다. 굽은 등이 불편한지 뒷짐을 지면서 집 안을 두리번거린다. 급기야 싱크대까지 들여다보는 마리를 향해 혀를 끌끌 차며 혼잣말처럼 말한다.


“작년에 우리 방울이도 대문 밑으로 기어 나가서는 일주일 만에 찾았자녀...”


 마리는 방울이 할머니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주저앉았다. 그러고는 고개를 좌우로 천천히 흔들었다. 아닌데.. 그럴 리가 없는데.. 이 와중에 아랫배에 가득 찬 소변이 밖으로 나오고 싶다 아우성이다. 마리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며 질끈 눈을 감았다.


“영감! 이 집 개 맞으니께. 거기 두라고. 주인 없는 개면 뒷마당에 묻어줄라 켔지. 에그 불쌍한 거.. 쯧쯧”


 마리는 아랫배를 움켜쥐고 벌떡 일어나 뛰쳐나갔다. 밖으로 나온 그녀를 보자 가만히 있던 오토바이 운전자가 곡소리를 낸다. 절실해 보이는 마리의 눈동자가 빙그르, 방울이 할머니를 향한다.


“할머니... 우리 카카도 집을 나간 거 같아요. 저 개는 아니에요.....”

“새댁 너무 충격을 받았나벼... 이 집 개 맞어 내가 한두 번 보남? 아니 영감탱이! 새댁 개라니께 왜 그려!”


 마리에게 다가와 등을 토닥이던 방울이 할머니가 별안간 소리를 빽! 질렀다. 유난히 저녁기침이 잦은 할아버지가 죽은 개를 봉투에 담으려 했기 때문이다. 그때 축 늘어진 몸으로 비닐속에 들어가는 개와 눈이 마주친 마리는 아악! 짧은 비명을 내지르고 풀썩 주저앉았다.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유난히 슬픈 눈... 저 죽은 개는 카카였다. 허망한 얼굴로 고개만 가로젓고 있는 마리 앞으로 [하나마트]라고 쓰여 있는 흰색 봉투가 놓인다. 봉투 사이로 하얗고 갈색의 부드러운 털이 비쳤다.


“운전자 양반도 그냥 돌아가. 골목길에서 누가 그렇게 씨게 운전을 하나? 그 짝 사납게 운전하는 거 한두 번 본 게 아니여!”

“재수가 없으려니까! 병원 갔다가 진단서 떼올 테니까 치료비는 줘요! 오토바이 수리 값은 안 받을 테니!”


 방금 전까지 다리를 붙들고 쓰러져 있던 남자는 벌떡 일어나더니 오토바이를 세워 타고는 부릉부릉 매캐한 연기만 남기고 언덕 아래로 사라졌다. 오토바이에 굉음과 방울이 할머니의 음성이 희미하게 맴돌다가 공중으로 흩어진다. 후드득, 빗방울이 떨어진다. 마리는 봉투 안에서 잠이 든 카카의 몸에 얼굴을 묻었다.


“우리 강아지 집 나간 줄 알고 얼마나 걱정했는지 몰라... 어느 집 담벼락 밑에서 울고 있을까 봐.. 비도 오고 날도 어두워지는데.. 카카야 고구마 사놓은 어쩌지? 닭고기도 사놨어... 너의 배가 불뚝 일어날 만큼 먹이고 유서를 쓰려고 했어...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담담하게 말이야. 그러고는 너를 깨끗이 씻기고 나는 가장 예쁜 옷으로 갈아입고는 새벽 동이 트기 전에 부모님 댁으로 가려고 했지... 드라마에서 봤던 것처럼 집 앞에 유서와 너를 두고 가려했어..  현관 앞에 묶여 있는 너는 따라오려고 기를 쓰고 울겠지? 그럼 다시 돌아가서 너를 한번 안아주고 실컷 얼굴을 비비고 입을 맞추려고 했어.. 그러고 나서 손잡이의 목줄을 단단히 묶으면서 지상에서 마지막 눈물을 흘리려고 했어... 그런데 카카야.. 안 그럴게. 그냥 너랑 살게.. 그러니까 좀 일어나면 안 될까? 아니면 고구마랑 닭고기만이라도 좀 먹고 가면 안 될까? 너 아무것도 안 먹었잖아.. 응? 배 주려서 먼 길을 어떻게 가려고 그래.. 응?"


 쏴아아 하늘에 구멍이 난 것처럼 비가 쏟아진다. 마리는 카카가 비에 젖을까 등을 구부려 품에 안았다. 착한 강아지가 먹어주지 않는 눈물은 차고 차올라 마리의 숨통을 조인다.


“누나 우는데 눈물 먹어줘야지. 응?”


 잠시 후, 방울이 할머니가 나와 억지로 마리를 집안으로 들여보냈다. 빗물이 마룻바닥으로 툭툭 떨어지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던 마리가 보일러를 켜고 곧장 욕실로 들어갔다. 샤워기 물을 틀어 온도를 맞추고 비닐 속에서 카카를 꺼내 입을 맞추고 또 맞췄다. 그리고 녀석의 귀에 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조심히 씻겼다. 눈물은 참을수록 강력해진다. 도저히 막을 수가 없다. 따뜻한 물도 뜨겁게 흐르는 눈물도 차갑게 굳어가는 녀석의 몸을 돌릴 수가 없듯이.. 욕실에서 나온 마리는 수건 위에 녀석을 눕혀놓고 조심조심 작은 몸을 깜쌌다. 카카의 배가 홀쭉하다. 마리는 크게 숨을 들이키고 깊게 내뱉는다. 진동하는 한숨 끝은 후회로 가득하다. 젖은 옷을 벗지도 않고 가스레인지 위에 냄비를 올린다. 검은색 봉투에서 고구마를 꺼내 끓어오르는 냄비에 넣었다. 고구마가 익는 동안 젖은 옷을 벗고 오렌지색 원피스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드라이기를 콘센트에 꽂아 이불 위에 누워있는 카카의 몸을 말렸다. 그간 신경써주지 못한 강아지의 눈가에 털이 뾰족하다. 서랍에서 쪽가위를 꺼내 삐죽 나온 털을 다듬었다. 우리 카카 왜 이렇게 예뻐? 눈도 예쁘고. 코도 예쁘고. 입도 예쁘네.. 마리는 흐뭇한 미소로 깊은 잠에 빠져든 카카를 바라보았다.



 새털처럼 가벼워진 카카를 안고 거리로 나와 걷고 또 걸었다. 이윽고 푸르스름한 동이 트기 시작했고 한쪽 슬리퍼가 덜그럭 거리더니 이내 끊어졌다. 그런 채로 다시 걸었다. 물집이 터진 발에서 피가 흐르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고수부지로 연결된 지하도로 따라갔다. 잔잔하게 일렁이는 강물이 보였고 잠시 걸음을 멈췄다. 굴곡진 바위에 걸터앉아 동쪽 지평선으로 떠오르는 완연한 태양을 올려다본다. 마리의 슬픔과는 상관없이 내리쬐는 태양이 뭉개진 눈을 매섭게 찌른다.


“저 강물은 끝이 있겠지. 그 끝에 다다르면 쉼을 얻을 수 있을까..”


 사실 아주 오래전에 깊은 바다 가운데 던져졌던 것 같다. 이미 영혼은 바다풀이 덮쳐 사라진 지 오래되었을 수 있겠다. 마리는 천천히 일어나 강물 속으로 발을 내딛는다. 시커먼 강물이 허리춤까지 차 오른다. 늘 초조하고 쫓기는 것만 같던 인생. 삶의 끝에서는 좀 담대하고 초연하기를 바랐는데. 걸음을 옮길 때마다 온몸은 덜덜 떨리고 뼛속까지 두려움이 엄습한다. 러나 이 걸음을 멈출 순 없다. 다음날 동이 트는 하늘을 바라볼 때의 암담함. 매일의 노력들. 그래봤자 달라지는 건 없는 막막한 현실. 그 일련의 과정들을 다시 겪고 싶지 않다. 마리는 카카의 몸을 꽉 끌어안는다. 마음이 차분해진다. 작은 강아지를 의지하며 점점 더 깊은 강물로 들어간다. 마지막까지 작은 몸 뒤에 숨어 날아오는 돌들을 막는다. 못되고 비겁하게.


 그때였다. 눈앞에서 분홍색 꽃잎이 너풀거리고 있다.  나비인 건가... 마지막 길, 배웅해 주듯 너울너울 춤을 추는 건가... 짝짝짝, 어디선가 박수소리도 들려온다. 세상은 그녀의 죽음을 환호하는 모양이다. 마리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눈을 감았다.     


“그래 퇴장해 줄게....”                       



반드시 다시 만나자.
오늘도, 꽃이 피면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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