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설티나인 Oct 01. 2022

두 달 동안 돈 한푼 안내고 10kg감량하기

인내는 쓰고 그 열매는 달다

자궁암 검진에 이상 소견이 보이니 빠른 시일 내에 내원하시기 바랍니다     

산부인과 병원에서 온 메시지였다.

 병원으로 전화를 거는데  다이얼을 꾹꾹 누르는 손이 조금 떨렸다.     

“네..... 큰일은 아니고요. 선생님께서 좀 더 자세히 보려면  조직검사를 받아야 할 것 같다고 하셔서요”     

“조직검사요? 왜요? 뭐가 잘 못 됐나요?”     

“아뇨. 혹시 모르니까 받아보시라고요..”     

심드렁한 간호사의 목소리와 달리 나는 잔뜩 굳은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암일 수도 있나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어요. 일단 빠른 시일 내에 날짜 잡아드릴까요?”     

약속 날짜를 잡고 나서 전화를 끊었는데 그 때부터 가슴이 벌렁벌렁 뛰었다.

암일 수도 있다고? 진짜 암이면 어떡하지? 아악! 막 3기 4기 그런 거 아닐까?

덜컥 겁이 났다.  

매일 인스턴트를 달고 살고 운동은 일주일 한 번 할까 말까한 비루한 몸뚱이가 결국 탈이 난걸까

예약은 이틀 후로 잡혔다.  그동안 잠도 제대로 자지 못 했고 밥도 안 넘어갔다.  신경이 날카로워져서 아이들에게 짜증도 냈다.      

형체가 없던  죽음이 실체가 되어  성큼 앞으로 다가 왔다. 철장을 나온 호랑이가 내게 덤벼들었다.     


“아이고 많이 걱정하셨구나. 일단 조직검사는 해봐야겠지만 이 정도로는 암1기도 안됩니다. 아마 만성염증 아닐까 싶은데 .. 어허 잠도 못 주무셨구나.”     

 나이 지긋한 담당 의사 선생님의 호탕한 목소리에  긴장감으로 목구멍에 침이 꼴딱 넘어갔던  나는 조금은 진정이 되었다.

민망한 자세와 약간의 따끔거림을 끝으로 싱겁게 조직 검사는 끝났고, 잠도 못 잔 날이 무색하게 만성염증 소견이 보인다는  다행스러운 결과가 나왔다.

내려앉은 심장은 제자리로 돌아 왔고,  눈물도 약간 찔끔거렸다.

죽음이라는 실체가 뒤통수를 후려치자 삶이 더 간절하고 조급해졌다.  

예쁘게 늙다가 아름답게 죽고 싶었다. 고도 비만으로 당뇨와 고혈압과 관절염에 시달리는 엄마처럼 늙고 싶지 않았다.     


 검사 결과를  통보 받은 그 다음 날부터 다이어트에 돌입했다.

 현실을 직시 하고 싶지 않아 먼지만 폴폴나게 모셔둔 체중계를 꺼냈다.

 62kg.....  참 많이도 찌웠네.

 160센티 겨우 될까말까 한  키에 온 살덩이가  배 주위로 포진해 있어 누워도 배가 출렁거렸다.

 남편이 굴러간다고 놀려도, 아이들이 같이 다니면 부끄럽다고 타박을 줘도 니들 때문에 스트레스 받아 폭식해서 그렇다고 오히려 짜증을 냈었다.

애들 남긴 밥 한 술, 남편 먹다 놔 둔 안주 한 줌..... 일하다 스트레스 받으면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좋다

고 치맥 한 잔 두 잔 ...  살이 찌니 아프고 아프니까 짜증나고 짜증나니 한 잔 하고....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목표 설정

2개월 동안 10kg 빼기      

한 달에 5kg 일주일에 1kg씩 빼서 2달 동안 10kg 빼기 .. 그 후  6개월 유지하기

 성격이 급해 적금도 일 년 짜리 밖에 못 넣는 나는 단기간에 감량해야 성공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남편은 내가 2달 동안 10kg 빼면 천만 원 주겠다고 코웃음을 쳤다.      

“진짜지? 나 살 빼면 진짜 천만 원 줘야 한다. 대출 받아서라도 줘라 응? 안 주면 진짜 가만 안 둔다. 응?”      

강력한 외부적 동기도 필요했다.

좋다! 나 살 빼면, 그동안 출렁거리는 몸과 기미가 덕지덕지 앉은 얼굴에 자신이 없어 30년 동안 안 나갔던 학 동창모임을 가야지... 간간히 나온다는 첫사랑 선배도 만나야지 ..

외적 동기도 확보했다.

운동 3할 식단 관리 7할 ... 다이어트 불변의 법칙을 그대로 따르기로 했다.

시작하기 전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스포츠센터 여러 곳이  문을 닫았고 그나마 까다로운 방역체계를 지키고자하는 곳은 백신을 맞지 못 한  내가 들어 갈 수 없었다.      

아 그래 어차피 잘 됐다.

옷 갈아입고 챙기는 것도 번거롭고, 수강료도 만만찮은데 혼자 해보지 뭐...

아이들한테는 인강 잘 나와 있는데 굳이 비싼 학원비내고 다녀야겠냐고 , 자기주도 공부가 그렇게 안 되냐고 야단을  부려 놓고 정작 나는 홈트로 운동할 생각을 안 했구나

재빨리 유튜브를 검색했다.

그 중에서 내게 맞는 영상을 2개 찾았다.

지루하고 고통스럽게 운동하는 걸 싫어하는 내 성향에 맞게 8곡 노래를 들으며 하는 유산소 운동 40분 짜리와 근력운동을 병행할 수 있는  복근운동 15분 짜리 영상 이렇게  2개를 찾았다.

지방은 40분 운동 후부터 태워진다니 무조건 40분 이상은 운동을 해야 했다.      

“자 힘드시죠 조금만 참으세요 이제 다 왔어요 내 몸은 하는 만큼 달라집니다. 10초 남았어요 파이팅!!!”     

 강사님이 힘내라고 외치는데 파이팅 소리조차 놀리는 것 같아 너무 듣기 싫었다.

10분도 못 하고 컥컥 숨을 몰아 쉬었다.  15분짜리라 가볍게 생각했는데 몇 년을 방치한 비계 덩어리 몸은

 15분도 버거워 끝까지 따라가지 못 하고 마지막 플랭크 자세에서 번번이 엎어지곤 했다.

8곡 유산소 운동은 3곡이 넘어가면서 오? 할 만한데 하다가 7곡쯤에 오면 거북이의 ‘빙고’를 간절히 기다리게 되었다.

8곡의 마지막이 거북이의 ‘빙고’노래였기 때문이다.      

아싸 또 왔다. 하나 둘 셋 ...나 비상하리라

사는게 힘들다고 하지만 쉽게만 살아가면 재미없어 빙고!.......

이 내 삶이 끝날 그 마지막 순간에 웃어 보리라  나 바라는대로     

마지막 빙고 노래가 나오면 나도 악에 받쳐 소리를 질렀다. 얼굴이 벌개지고 땀이 후두둑 후두둑 떨어졌다.     

나 웃어보리라 나 바라는대로 ...천만 원 받아서 옷 사 입고 동창 모임 가서 첫사랑을 만나리라 아샤      

 단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매일 두 달을 했더니 곡을 다 외워 버렸다.

오 이제 코요테 노래 나왔으니 2곡 남았다. 참자 참자 천만 원 첫사랑!!


한 달이 지나가니 슬슬 몸에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15분 마지막 플랭크 자세는 1분을 넘기지 못 하고 팔을 후들거리며 꼬꾸라졌는데 3분을 거뜬히 넘기고

 마지막 가장 힘들다는 변형자세까지 완벽히 따라 할 수 있었다. 11자 복근도 조금씩 생겨났다.     

“야야 봐봐 엄마 복근 생겼어.. 봐봐 ”     

아이들 앞에서 자랑스레 배를 보여주니      

“그거 복근 아니야 엄마가 힘 줘서 살이 파인거야 .. ”     

“뭐라는 거야?! 나 힘 안줬거든 이거 11자 복근이라고 !!!”     

“그래그래 그렇다고 하자.”


견디기 힘든 유혹도 많았다.     

‘아 하기 싫어 하루만 쉴까 1달 동안 5kg 뺐으면 나 진짜 대단하지 않나 하루만 쉬어도 되지 않나?’     

그러고는 폴짝 침대로 가 잠을 청하다가도  괜히 불안해서 밤 11시에 벌떡 일어나 다시 운동을 하고 자기도 했다.

한 번 안 하게 되면 와르르 무너질 것 같았다.

내 몸조차 내가 마음대로 못 하면 그 다음 하고 싶은 것들은 꿈도 꾸지 못 할 것 같았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니 운동은 스트레스로 다가오지 않게 되었고 몸에 체력이 생겨 가뿐한 느낌이었다.      

문제는 음식이었다.

운동으로 칼로리를 태우는 건 한계가 있었다.

하루 500칼로리를 안 넘게 했다.

밥 한공기가 200칼로리 정도니 하루 종일 밥 한 공기를 나눠 먹었다.

못 견디게 배고플 때는 한우를 사서 고기 한 점에 상추를 몇 개를 올려서 우적우적 씹었다.

아이들이 엄마가 다이어트 한다고 우리도 굶기느냐고 볼멘소리를 해서 미안한 마음에 치킨을 시켜줬다.

치킨의 달짝지근한 냄새에 미칠 것 같았다. 딱 한 조각만 먹었으면 아니 한입만.......     

“엄마 한 조각만 먹어... 그렇게 안 먹으면 나중에 요요와. 먹으면서 빼야 해 .한 개만 먹어 응?”     

“사탄아 물렀거라 사탄아 물렀거라..”      

중얼중얼 대며 방으로 들어갔다.      

나도 내가 이리 독 한 줄 몰랐다.

한 번은  유혹에 넘어가 저녁에 고기에 밥 한 그릇을 먹고는 그 다음 날 하루 종일 자괴감에 빠진 적이 있었다.

 유혹에 넘어가면 몇 초만 행복했고 몇 시간이 불행했다.  

배고프면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래도 배가 고프면 일찍 자 버렸다.

너무 배가 고파 새벽에 벌떡벌떡 깨기도 했다. 빨리 아침이 되길 빌었다.

이 순간만 지나면 아침이 되어도 생각보다 배가 고프지 않다는 걸 경험으로 체득했다.

영양소에 균열이 올까 봐 내 생애 가장 열심히 영양제도 꼬박꼬박 챙겨 먹었다.

 두 달 동안 친구들은 일절 만나지 않았다. 점심 약속이나 술 약속을 하는 순간 다이어트는 물 건너간다.      


한 달 동안 5kg을 감량했을 때      

내게 첫 번째 상을 주었다.       

사장님!!!!!   카페 모카 주세요. 생크림 잔뜩 올려 주세요!!!!!!!!.”     

한 모금을 아껴서 쪼오옥 빠는데 나도 모르게 야릇한 신음소리를 내며 눈을 감았다.

아아 이것이 천국이구나   

650칼로리의 생크림 잔뜩 올린 모카커피를 마시고 그날 나는 아무것도 먹지 못 했다.

두 달 후 몸무게는 50kg...... 10kg 이상을 감량했다.

  내 인생 통틀어 가장 가벼운 몸이었다.

늙어 그렇게 살 빼면 몸이 축난다는 주변의 우려가 무색하게 오히려 체력이 좋아졌다.

매일 하는 1시간 운동과 다이어트로 인해 멀리하게 된 기름진 인스턴트를 끊어내자 몸은 빠르게 건강을 회복하고 있었다.      

 두 번 째 상을 주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10만 원 짜리 속옷을 샀다.  남편이 좋아했다.

목이 늘어난 넉넉한 티셔츠를 과감하게 버렸다. 놔두면 또 아깝다고 입을 것 같았다.

 흰 셔츠를 사서 바지 속에 넣어 입었다.

아 여자들의 로망!  바지에 셔츠를 넣어 과감하게 허리를 드러내는 것 그걸 내가 하고 있었다!!!!


9월 가을 6개월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었고 심지어는1kg이 더 빠졌다.

 살을 빼는 두 달 동안은 500칼로리 이하로 먹었지만  그 다음부터는 조금씩 양을 늘려 영양을 맞췄고 치킨도 한 조각 두 조각씩 먹었는데도 몸은 오히려 빠지고 있었다. 임계점을 넘어서니 몸이 알아서 밸런스를 맞춰 주고 있었다.      

49킬로 입성!

세 번째 마지막 상을 주었다.      

생전 가지 않았던 피부과에 가서 5회에 걸쳐 검버섯을 제거 했다.

그 사이 머리카락은 자라서 커트에서 부드러운  단발이 되었다.

.


.     

“헐 사람이 이렇게 변하나?”     

 “엄마야 엄마야 바로 옆을 지나쳤는데도 모르고 지나갔다”     

“어머 이제야 20대 때 니 얼굴 나온다”     

“원래 코가 이렇게 높았어요?”     

살을 빼고 조금의 변화를 줬는데 사람들의 반응은 정말 폭발적이었다. 주변 친구들이야 그렇다쳐도 동네 야쿠르트 아줌마도 놀라워했고 생전 인사도 없던 무뚝뚝한 김밥집 사장님도 비법이 뭐냐고 관심을 보였다.

아!!! 이 맛에 다이어트를 하는구나


남편에게 천 만원을 요구했다. 남편은 신혼 때도 하지 않던 백허그를 하며 내 사랑을 전부 주겠다고 했다.

 꺼지라고 했다.     

 세 달 후

 흰 와이셔츠를 바지 속에 넣고  머리카락을 나풀거리며 30년 만에 대학 동창들을 만나러 대구로 향했다.

(그래서 첫사랑을 만났냐고? 얘기가 길다 다음 편에.....)     

오늘도 저녁을 먹지 않았다. 잘 참았다.       


이전 02화 사랑은 노동과 인내올시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