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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티나인 Oct 01. 2022

수영도 못 하면서 프리다이빙이라굽쇼?

프리다이빙 도전기 1탄


“ 초등학교 3,4학년 때였나? 혼자서 바다 속에 들어 간 적이 있는데 그 바다 속이 너무 조용하고 깊어서 어린 마음에 무섭더라. 그런데 무서우면서도 그 짙은 초록색의 바다가 나를 화악 감싸주는 그 느낌이 너무너무 좋았어.”     

통영에 작은 섬 욕지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친구가 꿈꾸듯 말했다.

뜬금없는 얘기라 멀뚱히 쳐다보고 있으니, 내 손을 잡고 하는 말이      

“그래서 꼭 그 느낌을 한 번 더 맛보고 싶었는데 동네에 플랜카드가 떡 하니 붙어 있더라. 이거다 싶더라고..  혼자 가기는 좀 그런데 같이 상담 한 번 가보지 않을래?”     

프리다이빙? 그게 뭔데? 막 위에서 다이빙 하면서 떨어지는 건가?

초록창에 검색해보니 산소통 없이  자가 호흡으로 물속을 유영하는 거란다.

새파랗다 못해 짙은 흑색에 가까운 심해 속에서 긴 오리발을 찬 사람들이 인어처럼 돌아다니고 있었다.      

와 멋있다. 물공포증에 폐쇄공포증까지 있는 나는 물속을 자유롭게 드나드는 그들이 신기하고 부러웠다.     

불현듯..

영화 그랑블루가 생각났다. 워낙 오래 전에 본 영화라 내용은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는데 두 남자가 턱시도를 입고 수영장으로 들어가 샴페인을 마시는 장면이 인상적이라 오랫동안 각인처럼 남았었다.

아 그게 프리다이빙이었구나     


친구따라 강남가서 상담만 받으려고 했던 나는 센터에 걸려 있는 단 하나의 사진을 보고 거금을 결재해버렸다.

온통 초록색 바다인 몰디브에서 8미터를 내려가 고래와 나란히 누워 팔을 벌리고 하늘을 보고 있는 어느 남자의 사진에 눈을 떼지 못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올해 몰디브에 가서 찍은 강사님의 사진이었다.)     

나도 죽기 전에 한 번만 고래랑 만나봤으면.....


한 번씩 저돌적인 성격 때문에 주위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내가 또 사고를 치고 있었다.

 수영도 못 하는 내가  프리다이빙에 도전하게 된 사연은 대강 이러하였다.      



‘네 시작은 미약했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성경 욥기의 이 문구를 반대로 돌리면 내 프리다이빙의 도전기라 할 만하다.      

‘네 시작은 창대하였으나 그 끝은 개발싸개만 못한 ... 내 돈내고 무슨 개고생을 이리도..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데 늙어 돈 내고 하는 나는..’     

첫 날 3시간의 이론 수업은 뭐 그런대로 괜찮았다. 이론이었으니....     

“자, 다음 주 수영장 가시기 전에 집에서 숨 참기 연습 꼭 반복해서 해오시구요.. 준비호흡 이완호흡 최종호흡 회복호흡 잊지 마시고 이퀄라이징 연습 꼭 해오시고.. 담주 뵙겠습니다 파이팅”     

대표님의 파이팅 손짓에 눈웃음으로 대답해주고 일주일 내내 복식 호흡연습과 이퀄라이징 연습을 했다.     

처음에는 1분간 숨 참기 그 다음엔 2분간 숨 참기 연습을 했다.

요가매트를 펴고 명상음악을 틀어 놓고 분위기를 잡고 시작했다.

산소통을 매고 심해로 들어가는 스쿠버와 다르게 프리다이빙은 말 그대로 자가 호흡으로 심해로 들어가는

거라 얼마나 숨을 오래 참는가가 관건이었다.( 이 때는 이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숨 참기고 뭐건 간에 이퀄이 안 되니 아무것도 못하겠더라 이론과 실전은 이렇게 다르다)     

그런데 숨을 참는다고  의식을 해서 그런지 2분을 넘기지 못하고 숨을 자꾸 뱉었다. 강사님은 참을 수 있는

데 우리 몸이 산소가 부족한 걸 겁내서 숨을 뱉는거라 하셨다. 마인드 컨트롤을 하면 얼마든지 3분은 참을

수 있다고 하셨다. 그래 참아보자 참아보자 ..... 는 개뿔 ...

1분 30초만 되면 딸꾹질이 나면서 숨을 쉬지 못하는 공포에 더 가슴이 꽉 막혀 헐떡였다.

아 .. 몰라몰라 조물주가 콧구멍 두 개 뚫어주고 입구멍도 뚫어줬는데 그걸 왜 자꾸 막고 숨을 쉬지 말라는 거야?

난 왜 이 짓을 하는 거지? 이퀄은 또 왜 이렇게 안 되는 거야? 코만 잡고 가볍게 킁 거리라는데 왜 귓구멍

이 안 뚫리는 거냐고!!! (수압이 심한 심해로 내려가면 귀가 먹먹해지는데 그때 귀를 뚫어주지 않으면 고막이 터질 수 있다)

일주일 내내 친구를 욕하고 대표님을 욕하고 팔랑귀인 나를 자책하며 기대나 설렘은 쥐뿔도 없이 오직 걱정

과 공포만으로 토요일을 맞았다.     


포항에는 수심 5미터가 되는 곳이 없어서 센터차를 이용해 울진으로 한 시간 30분을 달려 울진 해양 레포츠 센터에 도착했다.

멀미를 할까 걱정했는데 차를 몰아주는 강사님이 내가 반한 사진 속의 강사님이라 몰디브에서 있었던 일을 재미있게 얘기해주셔서 지루한 줄 몰랐다.      

“여자분들은 슈트입고 스노쿨링 착용하시고 팀별로 모여주세요..”     

탈의실에 들어가서 슈트를 입고 나니 와 이건 무슨 아이언맨이다. (내 슈트는 검은색이라 좀 덜했는데 강사분들은 번쩍이는 은색이라 진짜 아이언맨이었다)

모든 게 처음이라 신기하기도 하고 설레기도 했다.

오 ..슈트를 이렇게 줄로 당기면 지퍼가 닫히는구나 이게 스노쿨링이라는거구나

그래 그래 생각보다 괜찮네. 1시간 30분을 차로 오며 멀미도 하지 않았고, 아이언맨 슈트도 입어보고 사람들도 친절하고 ...

그래 코딱지만한 용기가 이리 즐거운 세상을 만드는구나....... 역시 나란 여자는 멋있어..어깨를 혼자 톡톡 두드리며 칭찬해주었다.     


그런데 이게 뭐지? 나 왜 이렇게 못 하지?
 보다 못한 대표님이      

“회원님 회원님께서는 여기서 조금 더 연습하시고 .... 음.. 왜 스노쿨링이 안되지? 그냥 숨 쉬면 되는건데.. 그래도 잘 하고 계십니다. 파이팅!!! 전 다른 분들 좀 봐드릴게요. 잘 되시면 이 부표로 오세요.”     

4인 1조로 연습을 하는데 자꾸 뒤쳐지는 나 때문에 다른 분들이 본의 아니게 기다리게 되는 상황이 되며 대표님은 나를 놔두고 다른 분들을 지도하러 가셨다.

아니 !!! 수영 못 해도 된다며?? 근데 첫날부터 오리발을 차고 스노쿨링을 입에 물고 5미터 수심을 한 바퀴 돌라굽쇼?

대표님은 내가 답답한가보다.

수영 못해도 오리발이 알아서 저어줘, 호흡 못해도 스노쿨링이 알아서 호흡해줘,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아니.. 입에 깔대기같은 걸 물고 어떻게 숨을 쉬라는 거야? 230mm 내 발에 그 긴 오리발을 붙여 뒤뚱거리게 해 놓고 이걸 신고 5미터의 수영장을 유영하라니요?

대표님은 내가 속으로 욕해서 배터지게 생겼고 나는 물을 너무 먹어 배터지게 생겼다.     

 점점 뒤쳐지는 내가 안쓰러운지 강사님들이 돌아가며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셨고, 물공포증에 뻣뻣하게 굳었던 내 몸도 서서히, 아주 조금씩 물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작은 기적이었다.

처음 해 본 스노쿨링도 요령이 생기자 덜 답답했고  힘이 부족한 내 발차기를 오리발이 도와줬다.

무서워서 쳐다도 보기 싫었던 5m의 수영장 깊이도 눈에 들어오자 그 밑에서 스쿠버 장비를 착용하고 연습하는 스쿠버들도 눈에 익었다.  날렵한 유선형의 물고기들 같았다.

팀을 나눠 하는 프리다이빙 연습생들 중 잘하는 팀들이 연습하는 것도 시야에 담았다.

남자 4명이 오리발을 차고 덕 다이빙을 하며 세차게 밑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오리발이 물을 힘차게 가로지르자 사방으로 물이 튀며 파도를 만들었고 오리발은 그대로 아름다운 인어의 꼬리가 되었다.

넋을 잃고 그 모습을 보며 아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저걸 할 수 있을까 부럽고 부러웠다.

열등반에서도 더 열등해서 무리에 뒤쳐진 나는 조금 시무룩해졌다.     

‘야 정신차려 너 50 넘었어 쟤들은 20대야 네가 걔들 따라가려면  찢어져..      

네가 대회에 나갈 것도 아니고 , 자격증이야 이번에 못 따면 내년에 따면 되는 거고, 또 굳이 안 따도 되는거고, 그걸로 밥 먹고 살 것도 아니고 몰디브는 아직은 가라앉지 않을 것이니 내년에 고래 못 보며 내후년에 고래 보지 뭐 .... 고래야 기다려라.. 언니가 곧 간다. 내년 .. 아니 내후년에 꼭 보자 ..’     

몸에 힘을 빼자 속도가 조금 더 나갔다.

집에서 2분을 못 넘기던 숨참기는 3분을 넘기며 강사님을 놀라게 해서 체면을 겨우 유지했다.

문제는 이퀄라이징이었는데 1미터의 수압이 비행기 기압의 몇 배나 된다는 강사님의 설명이 과장이 아니었다.

2미터 정도 내려가서 코를 한 번 킁하고 풀어 귀를 뚫어줘야 귀가 수압을 견디며 고막이 터지지 않는다.

 무리하게 이퀄이 안 된 상태에서 더 깊이 내려갔다가 중이염이 생기거나 귀에서 피가 나거나 고막이 터졌다는 전설같은 이야기를 여기저기서 들은 터라 3미터 내려 갔을 때 찢어질 것 같은 아픔에 무리하지 않고 다시 위로 올라오기를 반복했다.

아 산넘어 산이구나 ... 숨 참기에서 유지됐던 체면이 이퀄로 다시 바닥을 기고 있었다.      


3시간의 강습을 마치고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손이 후들거려 밥알이 자꾸 흘러내렸다.

강사님들과 연습생들이 자신들도 그랬다며 손을 떠는 나를 부끄럽지 않게 해 줬다.

나를 이 고행의 길로 인도한 친구는 첫 날부터 사정이 있어 오지 못하고 어땠는지 계속 문자를 보내고 있는데 답해줄 힘도 없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내내 머리를 창문에 박으며 떠지지 않는 눈을 부라리기를 몇 번 결국 도착내내 일어나지 못했다.

3시쯤 도착한 센터에 인사를 남기고 돌아서는데 시체처럼 늘어진 내가 불안 해 보였는지 다음에도 꼭 다시 오라는 대표님의 말을 건성으로 받아주며 집으로 돌아왔다.     

수영도 못 하는 엄마가 어떻게 됐을지 궁금해하던 아이들은 엄마의 생환을 기뻐하며 꼬치꼬치 캐물었지만

진이 빠져버린 나는  그대로 침대에 고꾸라졌다. 온몸은 죽겠다고 비명을 지르는데 난 피식피식 웃음이 났다.

몰디브 고래 그랑블루      


오늘도 잘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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